| 연재칼럼 | 지난칼럼 |
골프장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 중에서, 가장 오묘한 긴장감을 주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리막 퍼팅이다. 언뜻 보면 쉬워 보인다. 힘을 주지 않아도 공은 자연스레 굴러가고, 짧은 거리라면 더더욱 단순한 과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골퍼라면 누구나 안다. 내리막 퍼팅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렇다. 쉬워 보이는 선택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어느 가을 아침, 이른 시간 티타임을 잡고 조용한 페어웨이를 걸었다.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그린에 올라섰을 때, 짧고 완만한 내리막 퍼팅이 남아 있었다. ‘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별다른 고민 없이 스트로크를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공은 홀을 지나 너무 멀리 굴러가 버렸다. 다시 그 짧은 거리로 되돌아가는 데에는 두 배의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보기로 홀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때 알았다. 쉬워 보이는 상황일수록, 더 많은 주의와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 내리막 퍼팅은 단순히 거리만이 아니라, 경사, 속도, 바람, 습도까지 계산해야 하는 섬세한 영역이었다.
우리 삶에서도 때로는 ‘이 길이 더 쉬워 보이니까’라는 이유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어렵고 험난한 길보다, 편안하고 수월한 길을 택하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쉬운 길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 급하게 결정한 직장 선택이 오히려 후회로 남을 때.
-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닫았지만,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낳았을 때.
- 안정적인 길만 고집하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놓쳐버렸을 때.
이처럼 인생의 내리막 퍼팅에도 ‘함정’이 존재한다. 그 함정은 성급한 판단, 지나친 자신감, 혹은 무심코 지나친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내리막 퍼팅을 할 때 우리는 더 낮은 자세로 그린을 읽는다.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고, 공이 가는 길을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쉬워 보이는 길일수록, 더 천천히 그리고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 ‘쉬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지 말 것.
-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더 안전하고 현명할 수 있음.
- 모든 결정에는 그만한 무게가 따르기에, 가볍게 여겨선 안 됨.
인생은 마치 끝없는 그린 위에서 계속되는 퍼팅의 연속이다. 때론 오르막, 때론 내리막이지만, 그 모든 순간마다 우리는 판단하고 결정하며 나아간다. 내리막 퍼팅은 우리에게 말한다. 쉬운 길이 보일 때일수록, 멈춰서 더 천천히 바라보라고.
인생도 골프도,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신중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치는 한 번의 퍼팅이 다음 홀을 어떻게 맞이할지를 결정짓는다. 오늘 당신이 마주한 내리막 퍼팅 앞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정말 이것이 가장 쉬운 길일까, 아니면 가장 어려운 함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