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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내가 말썽을 피울 때 어머님은 “밥 주고 숟가락 뺏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숟가락을 뺏지도 않으셨고 회초리를 맞는 것보다는 나아서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까? 숟가락이 없으면 무얼로 먹지? 손으로 먹어야 할 것이다. 갓 지은 뜨끈뜨끈한 밥은 뜨거워서 못 먹는다. 국은 또 어떻고?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아시나요?” 한 유튜브 영상에서 본 주제다. “개 밥 vs 사람 밥”이라는 주제로, “이 속담은 도대체 누가 밥을 먹고 누가 건드리는 건지요?” 하고 묻는다. 개가 밥을 먹는다면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식사 중일 땐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 되고, 개를 ‘건드리는 주체’로 본다면 “그, 사람 아닌 개조차 밥 먹는 사람은 안 건드린다”는 뜻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당연히 ‘사람이 먹지’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했는데, 이 질문을 보니 따질 일이 생기겠다. 우리말이지만 잘 모르거나 모르고 쓰는 것이 많다.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두드려 모양을 잡으려면 모루가 있어야 한다. 도끼로 장작을 팰 때는 바탕이 필요하다. 바탕을 도마라 하면 식칼로 무 자르는 느낌에 도끼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벌겋게 달구어진 쇳덩이를 얹어놓고 망치로 내려쳐서 모양을 잡으려면 뭉툭하나 단단한 쇳덩이, 모루가 필요하다. 대장간이 사라진 지 오래됐으니 몇이나 모루를 보았을까? 칼이나 낫을 갈아 날을 벼리는 숫돌이 있었다. 그러면 암 돌도 있을까? 숫돌은 지석(砥石)이라고 부드럽게 갈아서 날을 세우는 돌이지 수컷의 뜻은 없다. 그러니 대응하는 암 돌은 없다. 칼날을 벼리는 것은 시퍼렇게 날을 세우는 것이고, 어떤 일을 이루려고 마음속으로 준비하며 때를 엿보는 것은 기회를 벼르는 것이다.
예전엔 닷새마다 장이 섰다. 1일과 6일, 2일과 7일 ··· 또 5일과 10일. 이렇게 멀지 않은 곳에 돌아가며 장이 섰다. 친구 따라 장에 간다고 하면 하릴없는 사람이 주관 없이 하는 일이고, 장에 ‘쌀 팔러 간다’고 하면 쌀을 사러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른 물건을 사려고 쌀을 내어다 팔아야 한다면 무어라 할까? 어쨌건, 말은 통용하던 대로 쓰는 것이다. 강원도 평창·영월·제천의 5일장을 잇는 전통 장터길을 ‘장돌뱅이 길’이라 한다. 장돌뱅이의 삶을 문화자산으로 재조명하며, 향토적 정서와 지역 경제를 연결하려는 것으로 복원했는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허생원이 희끄무레한 달빛 아래 나귀를 몰고 걸었던 그 길이다. 장돌뱅이가 무엇일까? 이 장, 저 장을 돌며 물건들을 옮겨다 파는 뜨내기 상인이다. 이 보부상(褓負商)들은 봇짐과 등짐을 날랐는데, 봇짐은 보자기에 싼 것을 손에 들거나 어깨에 둘러메는 것이고, 등짐은 지게나 멜빵으로 등에 지고 다니는 것이다. 먼 길을 떠날 때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는 작은 짐은 ‘개나리봇짐’이 아니라 ‘괴나리봇짐’이고, 어떤 사투리로는 단봇짐이 있다. 나귀 등에 봇짐을 싣고 다닌 허생원은 성공한 장돌뱅이다.
국립국어원은 “앞의 속담에서 ‘개’는 밥을 먹는 주체로 이해해야 한다”며 “비록 하찮은 짐승일지라도 밥을 먹을 때에는 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음식을 먹고 있을 때는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때리거나 꾸짖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밝혔다. 명쾌하다. 그런데 개밥에 도토리는 뭐지? 제 앞가림을 잘 못 하거나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나서는 사람이 도토리라 한다. 이유는 차치(且置)하고,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도토리다. 사람들이 도토리 키재기이겠지만, 어감으로 보아 도토리가 나쁘거나 잘못인 것으로 보인다. ‘차치하고’는 또 무슨 뜻일까? ‘차치물론’을 줄여 쓴 것인데,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나 상황의 한 부분을 부각해 설명하려고 거기에 각광(脚光)을 비추는 것이다.
말에도, 법에도 의도와 취지가 있다. 말은 글이 표현하지 못하는 억양이 있다. 글은 적확하지만 감정을 다 표시하기에는 문장부호가 너무 적다. 쉼표와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점 몇 개를 잇달아 찍는 말없음표, 간혹 남의 말을 끌어왔다는 따옴표 정도다. 논문에서는 남의 글을 끌어쓰면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용한 셈이 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표절(剽竊)이다. 표절의 ‘절(竊)’은 훔친다는 절도의 뜻이다. 제자의 논문을 제 것인 양 날로 먹고, 쪼개기를 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염치와 체면을 생각하여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또 벼룩의 간을 내어 먹는 사람도 있나 보다. 벼룩보호법이 필요하려나?
* 출처 : FRANCEZ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