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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Hamilton)은 뉴질랜드 북섬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로, 와이카토 강(Te Awa o Waikato)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 지역은 마오리 부족 중 타이누이(Tainui) 부족의 중요한 거점이자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대표적인 설화는 와이카토 강을 따라 내려온 정령의 여정과 사랑 이야기, 그리고 강과 땅이 맺은 영혼의 약속에 관한 전설이 있다.
해밀턴 지역의 마오리 전설
Te Awa o Waikato – “와이카토 강의 숨결”
타이누이의 강
오래전, 지금의 해밀턴(Hamilton) 일대는 온통 숲과 강으로 덮인 신성한 영토였다.
그 중심에는 와이카토 강(Te Awa o Waikato)이 흐르고 있었고, 마오리 부족은 이 강을 “조상의 숨결이 흐르는 길”이라 부르며 숭배했다.
강은 생명을 주는 존재였으며, 바람, 비, 시간의 흐름조차 강을 거슬러 다녀갔다.
♀ 정령의 여인 라우히아
그 옛날, 와이카토 강에는 라우히아(Rauhia)라는 이름의 물의 정령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달빛 아래 강물 위를 걸었고, 새벽이면 물고기들과 노래를 부르며 어린이들에게 꿈을 선물했다.
라우히아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들에게 행운과 풍요를 내려주는 보호자이자 안내자였다.
나무와의 약속
그러던 어느 날, 라우히아는 해밀턴 동쪽의 숲가에서 한 외로운 카우리 나무와 친구가 되었다.
이 나무는 인간이 버린 벌목터에서 홀로 살아남은 마지막 생명체였다.
라우히아는 나무에게 매일 강물을 가져다 주었고, 둘은 바람과 비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무는 말한다.
“언젠가 인간들이 나를 베러 올 거야. 그때, 내 영혼을 강에 흘려보내 줘.”
라우히아는 약속한다.
“나는 너의 눈물이 될게. 너는 나의 기억이 되어 줘.”
인간의 욕심
세월이 흐르고, 외부 부족이 해밀턴 땅에 들어왔다.
그들은 마을을 짓고, 목재를 얻기 위해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라우히아는 수차례 그들에게 꿈을 통해 경고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그저 악몽이라며 무시했다.
결국, 그녀의 친구였던 카우리 나무는 커다란 도끼질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날 강물은 거세게 일렁였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였으며, 와이카토 강엔 희미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령의 저주
그 후 며칠간 강에서는 고기를 낚을 수 없었고, 배가 뒤집히고, 병든 자들이 꿈속에서 라우히아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나무의 눈물. 너희가 자른 것은 목재가 아니라, 대지의 숨결이다.”
마오리 원로들은 강가에 돌탑을 쌓고 비를 맞으며 정령의 분노를 달래는 의식을 올렸다.
그제서야 바람이 멎고, 강물은 다시 고요해졌다.
현재의 해밀턴
오늘날 해밀턴 시를 관통하는 와이카토 강은 수많은 다리와 공원을 품고 있지만, 그중 일부 강변 숲은 신성 구역으로 지정되어 마오리 부족 외에는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그곳에는 아직도 혼자 서 있는 오래된 카우리 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밤이면 나뭇가지가 강 쪽으로 휘어져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현지 가이드는 말한다.
“그건 라우히아와의 약속이야. 둘은 아직도 서로를 기억하고 있어.”
전설이 남긴 것
이 이야기는 단순한 자연 보호의 의미를 넘어, 사라진 것들과의 대화, 그리고 지켜야 할 생명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라우히아는 오늘도 와이카토 강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발자국을 듣고,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으며 조용히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