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진 자리엔 새순이 돋는다 - 시험이 두려운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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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진 자리엔 새순이 돋는다 - 시험이 두려운 그대에게

0 개 578 김준

세면장 한켠에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자랍니다.  


이 나무는 작고 작아서 ‘그루’라는 표현이 무색하고 이 나무는 홀로 외로워서 ‘그루’라는 셈의 단위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노랗고 녹색인 송편모양 잎들을 자잘히 달고서 나무는 세면대와 샤워부스에서 번져나오는 습기를 삼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나무인데 그 정도의 수분이 충분할 리는 없겠지요. 적어도 며칠에 한번씩은 물을 부어주어야 합니다. 나무는 마음도 어질고 넉넉해서 간혹 물주기를 잊어도 큰 티 내지않고 그저 제 모습을 유지한체 꿋꿋이 버텨냅습니다. 그 인내가 미더워서였는지 아니면 얼마나 버틸수 있는지 알아보고싶은 고약한 심보였는지 거의 한달동안 물주기를 잊었더랍니다. 터져나는 일거리에 바쁘기도 했었고 온갖 가정사에 정신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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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문득 돌아본 화분 언저리에 그 노랗고 녹색인 자잘한 잎들이 우수수 떨구어져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일이지? 살짝 놀라 화분을 들여다보니 세상에.. 그 동안 물주기를 잊은 탓에 흙이 쩌억 쩌억 갈라질 정도로 메말라 있지 않겠어요? 서둘러 양치컵 한가득 물을 채워 부어주었더니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재차 부어주고 나서야 화분 바닥에 살짝 물기가 비치더군요. 


얼마나 목이 말랐을꼬.. 


공기.. 말 그대로 비어있어 아무것도 잡을게 없는 허공을 헤집으며 간간히 떠 다니는 물기를 잡아 삼켜 연명했을 지난 한달여를 생각하니 안쓰러웠습니다. 사람이 모질어서 그런지 미안하다 잘못했다 사과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며칠 쏟아지던 폭우를 창 밖으로 견뎌내며 얼마나 분했을까..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많이 미안했습니다. 목이 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코 앞으로, 철철 흘러 넘치는 유리창너머 흐드러진 빗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할수만 있었다면 메마른 가지를 뻣고 또 뻣어 어떻게든 빗물을 빨지 않았을까요..  


물을 부어주고나니 마음이 쓰였습니다. 아니 의당 가져야 할 관심을 회복했다고 하겠습니다. 양치하며 한번, 샤워 마치고 한번. 하루에도 몇 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도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겠지요. 잎은 여전히 노리끼리 했고 물기 하나없이 부들거렸으며 매일같이 떨어지는 이파리도 여전했고 머리카락보다 조금 더 굵은 가지는 손가락만 스쳐도 또독또독 부러져 나갔습니다. 이러다간 결국 죽는게 아닐까? 아무리 말 못하는 식물이라지만 얼마나 많이 아팠으면 이렇게 회복을 못하는걸까? 보약이라도 사다가 부어줘야 하나... 잔뜩 찌푸린 얼굴로 굽어보기를 근 2주, 드디어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비닐조각같이 말라붙은 잎들을 떨구고는 있지만, 여전히 메마른 가지들이 부러져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 살아있는 가지 끝으로.. 정말... 참깨알 반토막보다도 더 작은 새 이파리들이 돋는 겁니다. 이파리들은 작고 작아서 첨엔 뭐가 묻은줄 알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작은 점이 하루 자고나면 좀 더 길어져있고 또 하루 지나면 더 길어져있고 하더니만 며칠후엔 돌돌 말려있던 몸을 쭈욱 펼치며 어엿한 이파리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작고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새로 돋아난 잎들은 살아있음의 증거요 살아갈 의지가 있음의 천명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새 잎이 이쁘다해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첨에 뭣도 모르고 살짝 만져봤더니 글쎄 작은 참깨알이 톡 부러져 떨어지는게 아니겠어요? 이래서야 바람만 불어도 휘익 날아갈거 같아서 그 후로는 창문도 잘 안 열었답니다. 



이제 새 잎들이 돋은지 2주쯤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나무가 홀로 겪던 기근을 알아차린지 한달쯤 지난거지요. 나무는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을 얼추 회복한 듯 합니다. 맘 한구석에 쓰리게 곪은 상처가 남아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 심리학자가 아닌 저로서는 도무지 그 속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꽤 건강해 보이고 잎들도 여전히 노랗고 푸른것이 이젠 되살아났구나 싶은거지요.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전체적으로 나무가 살짝 더 커졌습니다. 이상하게도 가지 끝에서만 잎이 돋는 바람에 중간 밑으론 휑하면서 윗부분에만 잎이 있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말라 죽을뻔한 지경에서 되살아났는데 말이죠. ^^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잎이 진 자리에서도 예의 그 녹색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좀 있으면 이전보다 더 크고 건강한 나무로 자랄거 같아 안심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도하다보면 단 한 명도 쉽고 무난한 아이가 없습니다. 성품이나 자세가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지적으로 성장하고 학업적으로 완성도를 갖추어 나가는 과정이 그렇다는거지요. 10대 초반까지 우등생이었다가 시니어 레벨로 올라오면서 나락을 찍는 아이도 있고, 외국에서 살다가 늦은 나이에 이민을 오게되서 잘하는 것은 오로지 영어밖에 없는 아이도 있고, 섣부르게 찾아온 사춘기 때문에 부모님 속까지 박박 썩이다가  뒤늦게 학업의 길로 들어섰지만 바탕이 없어 괴로운 아이도 있습니다. 한 해의 성적을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학년초엔 의욕이 활활 불타올라서 우등생의 반열에 올라보겠다며 밤새워 공부하더니만.. 한 텀이 지난후엔 지쳐서 ‘여기까지가 끝있가보오~ ’를 읊조리는 아이도 있고, SNS 며.. 새 친구며.. 사회생활이 너무 바빠서 공부를 소홀히 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작스레 책상앞에 들러붙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 중에 세상 풍파 겪지 않은 분이 없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매년, 매학기 자신만의 풍파를 겪으며 생존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생존의 턱걸이는 매년 이 즈음, 시험기간의 목전에서 가장 가혹해집니다. 


온갖 방법론이 난무합니다. 온갖 자료들이 넘쳐나고 온갖 조언들이 흥왕합니다. 마치 공기속에 떠다니는 의미없는 미세 물방울처럼 한 귀로 들어왔다가 한 귀로 흘러나가는, 단 며칠 시도해 보고선 되돌아 보지도 않게 될 정보와 경험담들이 넘치고 넘쳐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이 책이 좋으니 꼭 참고해야 한다. 

시험공부 별거 없다 기출문제 답지만 외워도 문제없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단기대비반을 수강해라.

꼭꼭 찝어내는 쪽집게 선생이 있다더라.  등등...

  

아이들은 양 팔을 허우적거리며 공기속에 둥둥 떠다니는 정보와 지식과 방법을 잡으려 애 쓰지만, 그리고 실제로 몇 가지를 잡아채서 마른목을 축여보려 하지만, 매번 결과는 신통치가 않습니다. 하루하루 시험은 다가오고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 뭐 하나 제대로 된 방법은 없는거 같고.. 내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옆에 친구는 너무나 여유롭게 문제풀어가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고..



창밖으로 흐르는 빗물에 목마름이 더하던 나의 어린 나무처럼 나의 어린 아이들은 ‘잘되는 그들과 안되는 나’의 부조화 속에서 스스로 움츠러들고 스스로 고립됩니다. 급기야는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며 지금 당장의 곤란함이 외부에서 연유했을 것이라 억측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하려니 기존 바탕이 없고, 포기를 하려니 그 동안의 노력이 아까워 이도 저도 못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은 잔인한 10월, 시험의 목전에서 이렇게 하루하루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모든 감각기관으로 시작해 신경망을 타고 대뇌로 흘러들어오는 지식의 자양분이 거의 단절된 상태에서 온갖 방법론에 휘둘리며 죽을힘을 다해 잎을 피워내느라 애를 썼으니 메마를 수 밖에요. 


나무에게는 물이 필요합니다. 양분이 필요합니다. 창밖으로 넘치듯 흐르는 빗물은 단 한방을도 제 것이 아니고 허공을 떠 다니는 작디작은 물방울들은 제 역할을 못하는 허상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에겐, 지식이 필요합니다. 행동이 필요합니다. 잘 나가는 그들이 공부하는 어려운 자료들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고 카더라 통신이 전하는 온갖 특급비법들도 역시나 허상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을 부어주는 실천적인 행동이지 지식을 쌓는 방법의 전수가 아닙니다. 물론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고 좀 더  도움이 될 자료들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쌓아놓고서 제대로 부어주지 않는다면 성장은 요원하고 생존은 불확실합니다. 어쩌면 목말라 죽어가던 나의 나무처럼 하나 둘 잎을 떨구다가 종국에는 학생으로서의 생명을 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험은 부담스럽습니다. 아니, 시험 자체보다는 시험의 결과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더 부담스러운 것은 시험의 결과에 뒤 따르는 2025년의 나 자신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어떤 과정을 공부하고 있을지.. 혹은 아예 학교를 떠나 있을지.. 그동안 좋아라 하던 과목을 계속 공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울며 겨자먹기로 과목을 바꾸어야 할지.. 여지껏 공부하던 반보다 더 상위클라스로 올라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할지..


이 모든, 예상할 수는 없지만 깊이 소망하는 나의 미래상은 지금 겪고있는 부담감의 원천이고 목마름의 이유입니다.  시간이 지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이 부담감을 안고 하루하루 버티며 연명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나무들에게, 물을 부으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의 상태가 어떠하던지 일단은 물을 붓는 행동을 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비록 쩍쩍 갈라진 지식의 토양 틈새로 말라붙은 허연 실뿌리가 드러난다 하여도 그저 아무 생각없이 물을 부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방법, 무슨 자료, 무슨 경험담에 휘둘리지 말고 모르면 배우고 배웠으면 연습하고 연습했으면 풀어보는 지난하지만 필수적인 과정에 첨벙 빠져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당장 눈에 드러나는 변화와 성장이 없다하여도 부어준 물은 흡수되기 마련이고 잎이 떨구어진 자리엔 새 순이 돋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새로 돋은 잎들이 왕성해질 무렵, 이전 보다 살짝 더 커진 자신을, 이전보다 살짝 더 확실해진 미래상을 마주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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