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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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 사회?

misoonz1외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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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업상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적 독립 운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투사들에 대한 자료를 읽다 보면 이 분들이 정말 “초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백마를 탄 장군”으로서 유명한 김명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는데, 그 연보만 봐도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산의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18세 (!)에 말이 통하지도 않는 모스크바로 유학을 가고, 20세에 상해에 가서 그 뒤에 중국 일대와 만주에서 사회주의적 항일 운동의 일선 지도자가 되고, 23세에 손에 권총을 쥐고 하얼빈 일본 영사관에 대한 항일 세력의 공격에 참여하고, 25세에 독고전이라는 악덕 배신자의 밀고로 일제의 손으로 넘어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그 다음에 6년이나 감옥에서 살고...김명시는 중국의 항일 항쟁 때에 태항산에서 빨치산 투쟁을 하고, 나중에 남한에 돌아와서 의문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10대 시절부터 “투쟁”의 명분을 위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욕망들을 최대한 줄여 그야말로 “투쟁 일념”으로, 어떻게 보면 욕망이 최소화된 ‘성직자’ 같은 삶을 살아온 셈입니다. 


“그 시대 그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다 보면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저는 지금 박헌영 평전 (영문)의 공동 저술을 준비하고 있는데, 박헌영은 1932년1월, 모스크바에서 4살 된 딸 박비비안나를 놓아두고 코민테른 지시로 상해에 가서 (김명시의 옵바 김형선이 같이 맡을) 조선 공산당 재건 사업을 총괄해야 했습니다. 4살이 된 갓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고 언제 죽을지 모를 투쟁의 장소로 떠나는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요? 저와 이 박헌영 평전의 저술을 같이 맡을 송잔나 교수는 나중에 박비비안나와 친구가 되었는데, 박비비안나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1946년 이전에 몰랐다고 했다고 합디다. 고아원에서 도처에서 스탈린 수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기에 “수령님이 내 아버지”라고 믿었던 것이랍니다. 그런 상황이 될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의 지시”로 사지로 떠나는 아버지의 심정이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데 그는 당연히 (!)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이든 1930년대의 소련이든 특히 혁명/국가 사업에 연관되는 개인에게는, 심리학적으로 이야기하면 개인의 “자아”보다 집단적인 “초자아” (super-ego)는 훨씬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혁명 운동만이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코민테른의 주적은 일제이었지만, “멸시봉공”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일제 역시 코민테른 못지 않게 “사욕”, 즉 사적인 욕망을 죄악시하는 도덕관을 열심히 선포했죠. 물론 사회주의 운동의 해방적 지향과 일제의 억압적 지향은 근본적으로 달랐지만, “초자아” 본위의 삶을 당연시하는 “시대 정신”은, 권력자들과 대항 권력자 사이에 그렇게 크게 차이 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은 초자아 본위의 삶을 언제까지 살았을까요? 1970년, 저소득 국가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4,5이었습니다. 물론 직업 군인과 공무원 이외에는 노후 연금 제도도 없었던 그 당시의 한국에서는 아이란, 늙은 부모를 봉양할 “노후 보장”이기도 했습니다. 즉, 아이를 많이 낳고 기르는 것도 일종의 “장기적 투자”라고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물론, 금일 한국에 비해 총소득에 대비해서 육아에 들었던 비용은 그 때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좌우간, 여전히 엄청 가난했던 살림 (“보릿고개”, 즉 춘공기 현상은 1970년대말에 와야 사라진 거죠...)에 4-5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은, 지금 우리로서 아마도 상상하기가 힘들, 그런 “희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희생은, 그 당시 사회는 어디까지나 당연시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의 “멸사봉공”과 같은 표어들은 여전히 1970-80년대의 한국의 독재 국가가 즐겨 사용했는가 하면, 독재 국가에 맞섰던 운동권 역시 코민테른 시절을 방불케 할 만큼 아주 강력한 자기 희생 의식, 즉 초자아 지향을 가졌습니다. 한데 <남영동 1985>에서 나오는 그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들을 이기려면, 초자아 지향의 집단 분위기는 아마도 필수이었을 것입니다. 좌우간,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개인주의”는 여에서도 야에서도 한국에서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언제쯤 철저한 개인주의 풍조로 재편됐을까요? 물론 신자유주의의 상륙, 즉 1997-8년은 제도적으로 분수령이었지만, 1990년대말은 아직까지 “개인” 이상으로 “가족” 등이 중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그 시절에 교편을 잡은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미래 희망”을 물어봤을 때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손주를 낳아서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드려 은혜를 갚고 싶다”는 답은 전형적이었습니다. 오늘날 아마도 들어보기 힘든, 그런 문장일 터인데, 그 당시에는 아직도 당연시됐죠. 제가 보기에는 획기적인 변화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의 불안 노동 양산 정책 등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체적인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 육아는 “사치”가 되고, “혼자” 생존하는 것은 특히 중하층이나 하층에서 일반화되었습니다. 한국의 출산율이 1.09가 된 것은 2005년이고,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0%나 된 것 역시 2005년입니다. 참고로, 1980년 같은 경우 1인 가구는 5%도 되지 않아 대체로 매우 불행한 “예외”로 치부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출산율은 0.7으로 세계최저이며, 1인 가구 비율은 40%로,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과 함께 세계 최고에 가깝습니다. “혼밥”, “혼술”, “혼영”, “혼행” 같은 “혼”, 즉 “혼자”가 들어간 신조어들은 2020년 이후의 풍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실의 세계에서 “혼자”가 “기본”이 됨과 동시에 “의식”의 세계에서도 초자아는 잘해봐야 “준법 의식” 정도로 새롭게 재정립됩니다. “대통령” 등 고급 공무원 이외에는 준법 의식은 대충 많이 강화되었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국가든 사회운동이든, 가정이든 무엇이든 간에 “나님”을 본위로 사고하는 데에 익숙해진 “혼자 시대 대한민국” 사람들은 더 이상 “희생”을 할 생각은 그다지 없는 것입니다. “멸사봉공”이든 혁명을 위해서 한 몸을 내던지는 일이든, 부모님을 위해 효도를 하는 것이든, 한국사에서 “희생”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저 같이 전혀 다른 사고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불편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혼자” 있는 데에 익숙해진, 서로간의 강력한 연결을 종종 피하는, 그리고 그 어떤 초자아를 위하여 “나님”을 희생시킬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왕 그렇게 된 이상 다시 “멸사봉공”, 혹은 “한 몸을 불사르는 혁명적 의거” 시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망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 “대통령”의 외교 등의 결과로 다시 전장이 되어 지난 반세기 동안의 번영이 신기로처럼 없어지고 다시 한번 폐허에서 “시작”해야 한다면 생존의 도덕율이 다시 중요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갈 확률은 아직 별로 크지 않습니다. 즉, 변혁을 도모하는 사회적 운동도 결국 “이기”,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것이 “기본”이 된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김명시나 박헌영과 같은, 불 같은 삶이 이제 아마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 등을 감안하여 앞으로 사회 운동도 개개인에 대한 부담을 좀 지나치게 크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한데 개인주의 사회라 해도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예컨대 기후 정의를 위한 투쟁이 결국 “모두에게의 장기적 이익”이라고 인식하면 충분히 투쟁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개인주의 국가 노르웨이에서의 기후 투쟁의 열렬함을 보고 이 점을 바로 느낀 것이죠. 그러니까 한국이 이 세상에서 제일 개인주의적 사회가 되어도 투쟁의 시대가 꼭 끝난 것이 아니죠. 단, 투쟁의 모습은 조금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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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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