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암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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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암탉

1 3,257 왕하지




더운 날씨에 내가 데크에 나가 바람이라도 쏘이고 있으면 우리 집 개는 네다리 쭉 뻗고 잔디밭에 누워 있다가 고개를 슬쩍 들고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마치 소가 닭 보듯 이... 내가 ‘이리와~’라고 소리를 지르면 마지못해 슬금슬금 걸어오는데 내 앞에 와서는 ‘왜 불렀어요?’ 용건이 뭐냐고 물어보는 표정이다. ‘앉아~’ 앉으라는 말에 별 볼일이 없다는 듯 개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평소에 들어가지도 않는 개집에 들어가는 것은 귀찮게 말 걸지 말라는 뜻이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단다.

정말 맛있는 거라도 준다면 우리 집 개는 말을 잘 듣는다. 앉으라면 앉고 발을 내 놓으라면 양쪽 발을 다 내 놓고... 내가 술안주로 잘 먹는 양념된 닭 날개라던가, 비계가 잔뜩 붙어있는 돼지고기라던가, 이런 걸 주지도 않을 바에야 말도 시키지 말라고 한다. 내가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으면 그때는 꼬리를 흔든다. 닭장에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좌우간 돌아다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쫄랑쫄랑 따라 나선다.

닭장에 따라가면 암탉들한테는 으르렁 거리며 쫓아다니고 수탉이 달려오면 도망가기 바쁘다. 작년만 해도 개가 수탉을 이겼었다. 병아리 때부터 괴롭혔으니 개만 보면 수탉은 도망 다니는데 위급할 때는 훨훨 날아 사람 키보다도 높은 철망을 넘어 다닌다. 개가 닭 날개의 능력을 발휘시키는 순간인 것이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닭들을 보고 감탄을 많이 했었다.

“어쩌면 닭들이 저렇게 착해요, 마당에도 안 오고 텃밭에도 안가고 아래 풀밭에서 얌전하게 풀만 뜯어먹고 있으니... 우리도 닭을 키우고 싶네요.”

“우리 집 개를 훈련시켰어요. 닭들이 오면 쫓아버리라고, 집 근처엔 얼씬도 못해요.”

“어머나~ 개가 아주 똑똑하게 생겼네, 아이고 예뻐라.~”

그렇게 똑똑한 개라고 칭찬도 받았는데 요즘은 수탉만 보면 도망 다니는 개털이 되어 버렸다. 수탉이 커서 암탉들과 짝짓기를 시작하고부터는 암탉의 비명소리만 들어도 머리털을 세우며 쫓아가는데 개는 줄행랑치기 바쁘다.

늙은 흰 닭이 있었다. 붉었던 벼슬은 퇴색되어 쳐지고 눈가에 백태가 끼고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먹이도 삼키지 못한다. 물만 조금씩 먹는데 며칠 안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황색 닭 2마리도 무척 늙어 있었다. 그동안 수탉이 시원치 않아 몇 년 동안 병아리를 못 깠으니 닭들이 제법 나이가 들었다. 다행이 작년에 겨우 깐 2마리의 병아리 중 한 마리가 수탉이었던 것이다.

늙은 황색 닭 한 마리가 알둥지에서 꼬꼬꼬 거리는 것으로 보아 알을 품는 모양이었다. 다 늙어가지고 알을 품을 수 있을까? 비실거리면서 3주일 동안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깔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일단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며칠 후 흰 닭은 두 다리를 쭉 뻗고 죽었는데 그 옆에 황색 닭이 물끄러미 쳐다보며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이제 내 차례야,’ 삶을 완전 포기한 모습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싱싱한 편이었는데, 며칠 후 황색 닭도 죽었다. 흰 닭이 묻힌 과일나무 밑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

알을 품고 있던 또 하나의 늙은 황색 닭은 병아리를 7마리나 깠다. 병아리를 품지 않았으면 이미 죽었을지 모르는데... 똑같이 늙은 황색 닭이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살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병아리들이 다 자랄 때까지는 살아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힘이 빠지고 모든 게 귀찮은 건 닭이나 개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데 나 또한 의욕이 많이 상실되어 있는 느낌이다. 재미있는 글이 써지질 않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그 즐거움이란 없다. 하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끄집어내어 많이 짜 내긴 짜냈지, 수채화 물감 짜 내듯이...


▷ 그동안 미숙한 제 글을 보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새해와 더불어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hey
이글이 마지막 글이라니, 정말 아쉽습니다, 열렬한 애독자 입니다. 그동안의 많은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면 어떨까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읍니다. 당분간 쉬쉬고 다시 글 쓰시기를 기대합니다.  애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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