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이야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낙타 이야기

0 개 1,420 수필기행

■ 최 민자


까진 무릎에 갈라진 구두를 신고, 털가죽이 벗겨진 엉덩이로 고고하게 걸어가는, ‘머리는 말 같고 눈은 양 같고 꼬리는 소 같고 걸음걸이는 학 같은’ 동물. 낙타는, 사슴이 빌려간 뿔을 기다리는 짐승이라는 시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럴법하다. 그렇듯 높고 쓸쓸한 면류관은 동물계의 성자인 낙타의 것이어야 마땅할 테니.


다른 동물들이 일제히 초원을 향해 뛸 때, 낙타는 등을 돌려 버려진 땅을 택했다. 약육강식이 생존의 문법인 세상, 힘의 논리로 평정되는 사바나가 싫었다.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보다 힘센 포식자가 아닌 저보다 빠른 동료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동료 하나를 희생시켜 가까스로 누리는 위태로운 평화, 풀잎에선 늘 피 냄새가 났다. 싸움이 싫고 싸울 줄 모르는 자들은 타자와의 경쟁보다 자신과의 대결을 택한다. 응원도 함성도 갈채도 없는 전투. 어떤 타자보다 더 큰 강적이 자신임을 알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 길을 간다.



정착과 안주를 허하지 않는 땅, 산을 움직이고 풍경을 삼키는 모래폭풍 속을 낙타는 무심히 앞만 보며 걷는다. 금수의 왕 호랑이도, 달리기의 명수인 치타도 넘보지 못하는 땅. 사막에서는 낙타가 왕이다. 자신을 이기는 자가 세상을 이길 뿐, 영역다툼도 서열다툼도 없다. 눈을 뜨고 감듯 콧구멍을 여닫고 두 겹의 속눈썹으로 모래먼지를 털어내며 생명의 숨소리를 거부하는 광야를 낙타는 천천히 위엄있게 걷는다. 낙타는 말처럼 뛰지 않는다. 촐싹거리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왁자하게 대오를 흐트러뜨리며 싸움터를 향해 돌진하지도 않는다. 태양과 맞장을 뜨는 위대한 종족답게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며 목적지이기를 사양하는 영토를 영혼의 속도로 가로질러 갈 뿐.


누구도 짐 지우지 않은 존재론적 고통을 걸머지고 고행을 자초하는 선사처럼, 탁타에게도 스스로 장착하는 등짐이 있다. 짐 없는 낙타는 낙타가 아니다. 사나운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든든한 바닥짐으로 평형을 유지하듯, 광활한 모래바다를 운항하는 낙타에게도 속도에 흔들리지 않고 삶의 보폭을 조절해주는 밸런스 추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등줄기에 실하게 쟁여 실은 참을 인(忍)자 한 됫박으로 타는 목젖과 삐걱거리는 관절과 쓰라린 눈자위를 어르고 달래며, 낙타는 사막에서 삶을 통찰한다. 참아라. 견뎌라. 인내의 끝이 세상의 끝이다.


낙타가 그 많은 동물들 중에 오직 인간만을 태워주기로 한 것은 자기보다 불쌍한 짐승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나운 뿔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이, 힘 센 앞발도 탐스런 갈기도 없이, 약은 잔꾀 하나로 왕 노릇하다가 욕망의 늪에 빠져죽고 마는, 천하의 어리석고 미련스러운 천둥벌거숭이들을 묵언설법으로 제도하기 위해, 겸허하게 무릎을 꿇고 견디는 것. 갈증도 그리움도 시간의 상처도 삭히고 삼키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타자의 죄를 지고 가는 늙은 성자처럼 저보다 더 고단한 중생 하나 잔등 위에 앉히고 낙타는 초연하게 걸어 들어간다. 아득한 비현실의 현실 속으로.


■ 최 민자 


4e0bb364fcda620cb63d67dd238c742e_1640121084_4808.png
 

서울대학교 가정대학 졸업

에세이문학 등단(1988), 현대수필문학상(2003), 구름카페문학상 수상(2008), 펜 문학상, 윤오영수필문학상 및 ‘에세이 문학사’와 ‘에세이스트’의 ‘올해의 작품상’ 등 다수 수상하였음

수필집 <손바닥 수필> <꼬리를 꿈꾸다> <흰꽃 향기> 수필선집 <낙타 이야기> <열정과 냉정사이> 외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다르다

댓글 0 | 조회 215 | 19시간전
노화(Aging)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보기

변화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375 | 1일전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 더보기

대학생 공부하기 싫을 때 및 번아웃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 0 | 조회 285 | 4일전
매년 이맘때쯤이면 메디컬 입시 (의대… 더보기

GAMSAT 의전원.치전원 입학시험 고득점 팁과 노하우

댓글 0 | 조회 292 | 7일전
지난 칼럼에서는 GAMSAT 3월 시… 더보기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439 | 9일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 더보기

드래곤 전설의 기원

댓글 0 | 조회 224 | 2026.04.29
— 인간은 왜 ‘용’을 상상했는가상상… 더보기

비료와 먹거리

댓글 0 | 조회 231 | 2026.04.29
먹고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 더보기

뉴질랜드 민사소송의 약식 판결 및 각하

댓글 0 | 조회 360 | 2026.04.29
보통 뉴질랜드 민사소송은 원고 측에서… 더보기

27. 우레와(Urewera) 부족과 안개 속의 여인

댓글 0 | 조회 170 | 2026.04.29
뉴질랜드 북섬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 더보기

고국의 품에 안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후손과 재외동포

댓글 0 | 조회 203 | 2026.04.29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낙산사 템플… 더보기

벚꽃 편지

댓글 0 | 조회 204 | 2026.04.29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 더보기

비자금

댓글 0 | 조회 350 | 2026.04.2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글쎄 암이란 놈… 더보기

8편 – 체르노빌 섀도우: 봉인된 보고서

댓글 0 | 조회 178 | 2026.04.29
“체르노빌은 ‘폭발’이 아니라, ‘개… 더보기

고용주의 신고의무

댓글 0 | 조회 591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유학을 보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공부보다 중요한 것

댓글 0 | 조회 504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댓글 0 | 조회 174 | 2026.04.28
시인 천 양희이 생각 저 생각 하다어… 더보기

파트너쉽 비자, 딱 한번에 승인받기

댓글 0 | 조회 453 | 2026.04.28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 더보기

갬블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뇌와 감정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0 | 2026.04.28
도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여전… 더보기

골프 코스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인생도 정답은 없다

댓글 0 | 조회 230 | 2026.04.28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깨닫게 되는 … 더보기

걷기 열풍

댓글 0 | 조회 458 | 2026.04.25
충북 괴산에 ‘걷기 열풍’이 불어 9… 더보기

GAMSAT 의.치전원 입학시험 총평 및 출제경향 (2026년 3월)

댓글 0 | 조회 333 | 2026.04.20
<GAMSAT의 급부상 인기&g… 더보기

건강한 겨울나기 예방 접종으로 준비하세요

댓글 0 | 조회 675 | 2026.04.17

어디가 더 들어가기 어려울까? 오타고대 의대 vs 오타고대 치대

댓글 0 | 조회 976 | 2026.04.16
지난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Biom…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276 | 2026.04.15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 없이… 더보기

미확인 해양 괴생물(MO) 목격담

댓글 0 | 조회 392 | 2026.04.15
— 인간은 왜 바다에서 ‘무언가’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