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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2013. 17:19 안진희 (210.♡.28.40)
시티새댁의 육아일기
웬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꿈에 보인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며칠 간격으로 두 번이나 꿈에 나오시는 게 아닌가.
엄마한테 얘기를 했더니 ‘너한테 할 말이 많은가 보네. 뭐라 말씀은 안 하던? 꿈에서 죽은 사람이랑 말하면 운수 대통한다던데. 복권이나 사봐라.’ 그러신다.
그러게…
할 말이 많아도 참 많으실 것 같다.
외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 일하시는 엄마를 대신해서 늘 곁에서 돌봐주시고 학교도 매일같이 데릴러 오시곤 했다. 외할머니는 집으로 오는 길에 골목 안 포장마차에서 파는 집채만한 눈깔 사탕을 늘 사주셨고, 밤만 되면 배고프다고 하는 나에게 매일 같이 달걀 후라이를 해 밥을 해주셨다.
‘세상에서 할머니가 제일 좋아~’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외할머니를 좋아하고 따랐건만… 그것도 어릴 때뿐이더라. 크고 나선 제대로 찾아 뵌 적도 별로 없고 결혼하고 나서는 외국에 산다는 핑계로 전화 한번 제대로 안 드리다 결국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러고 보니 손녀 사위 얼굴도 한번 못 보셨네…
머리 검은 동물은 거둬봐야 소용없다더니 옛 어른들 말씀은 어째 틀린 것이 하나 없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좋다고, 할머니밖에 없다고, 할머니랑 영영 같이 살 거라고 하던 게 아직도 기억나는데 크고 나니 그때뿐이라니..
우리 아들도 날 닮았는지 꼭 자려고 하면 배고프다고 난리다. 뭘 해도 ‘엄마, 엄마’ ‘엄마, 일루 와바’ ‘엄마, 이거 바바’ ‘엄마, 가치해~’ ‘엄마가 먹여죠’
그럴 때마다 생각난다. ‘너도 지금은 이렇게 엄마, 엄마 하지만 조금만 더 크면 엄만 나 몰라라 하겠지?’ 참 서글픈데 그래서 밉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붙어있고 그나마 나 찾을 때 같이 놀아야겠다 싶단 생각이 든다.
그나마 더 어릴 땐 기껏해야 ‘안아죠’ ‘가치해’ 정도가 다였는데 이제는 ‘이거 사죠’ ‘저거 사죠’ ‘우리 어디 가까?’ 처럼 물질적인 요구들이 많이 늘었다. 쇼핑은 또 어찌나 좋아하는지. 마트에 가면 혼자서 카트를 끌며 ‘우리 이거 사까? 이거 쫌 필요한데’라며 지가 알아서 카트에 집어넣는다. 지금이야 고작 마트에서 과자 하나 집어넣는 게 다지만 조금만 더 크면 바라는 액수도 더 커지겠지? 입고 싶은 옷도 생길거고.. 신고 싶은 운동화도 생길거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아질 거고.. 차라도 갖고 싶다면 어쩌지…
그러는 동안 나는 아들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던 친구에서 점점 돈을 꺼내주는 지갑으로 전락해갈 것 같다. 나한테서 얻어간 돈으로 예전에는 나와 함께 보내던 시간들과 나와 함께 나누던 감정들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겠지.. 아.. 슬프다..
하지만 나도 그랬었던 것을…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을… 내 새끼, 내 남편이 더 우선이지 부모님은 뒷전이니..
그러면서도 부모님께 바라는 건 아직도 많다. 하나 더 해진 게 있다면.. 부모님이 오래오래 살아계셨으면 하는 것이다. 아직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게.. 해드리는 건 없어도 그저 오래오래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그 바람마저도 어찌 보면 나를 위한 것인 것 같아서 참 민망하긴 하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걸 내가 아직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오래 살아 계셨으면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저걸 두고 어떻게 가나’라는 부모님들의 말은 나이 들어서도 자식만을 생각하는 짠한 마음인가보다.
아들~! 크면서 점점 더 엄마가 덜 필요해져도 엄만 속상해하지 않을께. 니가 훨씬훨씬 더 커서 다시 엄마를 그리워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 있을께. 엄마의 엄마도, 그 엄마의 엄마도 그렇게 해주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