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한창 봉오리진 내 아름다운 사춘기의 꿈을 몽땅 짓밟아 놓은 어둠의 세월. 피난민으로 정처없던 혼란속에서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을 맞아야했던 처절한 슬픔. 그 악몽의 세월을 돌이켜보는 것 조차 두렵다. 벌써 6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 이 곳 뉴질랜드에서 그 전쟁 때. 참전용사들이 찍은. 사진 전시회를 한다니 감회가 새삼스럽다. 그 분들의 뜻이 훌륭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구에서 이층으로 나무계단을 오르며 두려움같은 흥분이 느껴졌다. 피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전쟁터. 그 끔찍한 광경을 다시 보아야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어느 한국병사의 글귀가 눈길을 붙잡는다.
● 이번 공격에 나는 왜 죽엄의 길을 걸어야 하나?
● 우리 상관들은 왜 유엔군의 무서운 비행기 탱크. 대포의 실력을 나에게 속였나?
● 그들은 왜 시끄러운 싸움에 북을 울려 내 귀를 막았나?
● 처자의 애닯은 울음소리를 못 듣게 했나?
● 나는 왜 살아있다가 그리운 식구들을 만나보지 못하나?
죽음을 각오한 전쟁터에서 마지막으로 써 놓았을 어느 병사의 넋두리가 누렇게 빛바랜 종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어느 한 사람의 마음뿐일까? 내일을 알 수 없는 모든 군인들의 마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유언장이었다. 내 가슴속으로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얹히는 기분이었다.
‘내 집의 방공. 나라의 방패, 적기는 노린다. 한점의 등불’
어느 거리에 세워진 포탄 형태의 ‘표어’가 낯익다. 밤만되면 불빛이 새어 나갈까봐 아예 일찌감치 소등을 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소등이 늦으면 담요같은 두꺼운 천으로 창문들을 가려야했다. 담뱃불 하나만 비쳐도 적기의 폭격을 받으니 그 것은 곧 죽음을 부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썰렁한 서울역 사진도 있고. 지금같지않은 시청 청사. 그 시절의 남대문. 그리고 독립문 등. 그들이 생소해서 찍은 사진들이 우리에겐 모두 낯익은 그리움이었다. p. x 라고 유난히 큰 글씨가 붙은 건물은 지금 신세계 백화점이다. 산에 엉겨 붙은 달동네는 지금의 어느 동네일까? 간장된장(新榮商會) 간판이 붙은 시장통은 아마도 파주나 동두천 시장쯤 되리라.
북을 향해 높직한 뒷산을 배경으로 노적가리 쌓아놓은 오밀조밀 시골동네. 쓸어질듯 내려앉은 초가집 마당에서 절구질하는 아낙들. 주변에서 노는 어린이들 모습이 한가로워 전쟁하고는 무관해 보이는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다. 나직한 산밑에 상여를 내려놓고 언덕바지 장지에서 묘지 쓰는 모습까지... 우리 옛사람들의 정서가 담뿍 담겨있어 너무나 재미있다.
수만리 먼~길. 고국에 가족을 두고 떠나온 생.사가 불분명한 낯선 전쟁터. 하지만 그들에게도 낭만은 있었다.
삐에로로 변장을 하고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스리쿼터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 무슨 행사장으로 가는 모양같다. 정장의 군악대. 백파이프로 연주하는 군인들. 3.8 선 경계선이 그들 앞에 있지만...
크게 그려진 ‘키위새’ 밑에 모여앉아 합동으로 찍은 참전 용사들. 그들이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탄약통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들고 천막을 덮은 집(?)에 c tp cp 라고 쓰고 문앞에 잘 생긴 군인이 서 있는데 멋있다. thinking of my hometown 1953 고국의 집을 그리며 이 집을 만들었나보다.
위문공연장에서 엉성하지만 세계인의 ‘패션 쇼’를 하고 임진강에서 ‘에어배드’를 타고 물놀이를 하던 그들이 이제 80대의 노병이 되었다. 그 분들의 고마움을 마음속에 다시 새기며 돌아오지 못한 용사들에게도 심심한 묵념을 바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이 전시회의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