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달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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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2011. 16:20
NZ코리아포스트 (202.♡.85.222)
뉴질랜드 법률정보
월드컵 열기가 절정에 달해 있는 이 시점, 필자의 사무실 밖에서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다. 제목을 알 순 없지만, 나이를 떠나서 모두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는 흘러간 팝부터, 저녁 노을 마주하며 타마키 드라이브를 달릴 땐 어김없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던 샹송까지. 이름도 거창한 여왕님 항구는 월드컵을 맞이하여 파티 센트럴이란 다분히 재미없는 이름으로 단장하고 오늘도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독자께서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이미 월드컵은 끝나고, 순박한 뉴질랜드 사람들이 가슴을 내밀고 어깨에 힘주며 다니고 있을는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 생활로 돌아왔지만 쓰라린 속을 달래고 있을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법률칼럼에 전혀 걸맞지 않는 럭비 월드컵 얘기나 하고 있고, 필자가 오늘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하나 궁금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정신 없이 지나갔던 금요일 하루 업무를 마치고, 이제야 늦으막히 칼럼을 쓰려하고 있건만, 밖에서 쿵쾅쿵쾅 울리는 음악과 사람들의 열기가 전해져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원래 목적은 지난호에 이어 증여세에 관한 심도 높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건만, 파티 분위기에서 증여세 얘기를 할 수 없진 않은가… 재미없게 시리. 그래서 월드컵 얘기를 조금 더 해보려 한다.
한 장에 삼 백불씩하는 럭비 월드컵 본선 게임인지라, 오클랜드에서 하는 그 많은 게임들을 경기장에서 보진 못하고,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영국과 프랑스 팔강전 경기 티켓을 몇 장 구하게 되었다. 덕분에 모처럼 가족들과 이든 파크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프랑스를 응원하는 사람들 한 복판에 앉게 되었다. 나 홀로 커다란 영국 국기를 들고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프랑스가 이긴 경기였는데, 경기가 다 끝난 후 맨 앞 줄에서 소리질러 응원하고 있던 프랑스 청년들 서너 명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던가. 앗, 이건 텔레비전 뉴스가 끝날 무렵 해외 토픽 코너에서만 볼 수 있던 ‘스트리커!!’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청년들은 스트리커라기 보단 그냥 승리에 흥이 겨워 경기장 안으로 뛰어간 팬에 불과 했다. 경기장 안으로 얼마 들어가기도 전에 보안요원에게 큼지막한 태클을 받고 무참히 쓰러지긴 했지만.
스트리커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달리는 사람을 뜻한다. 정말 알몸으로 뛰어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미있는 의상을 입고 뛰는 사람도 있고, 가릴 곳만 가리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재미 삼아 벗고 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또는 사회적인 사항을 이슈화 하고자 의도적으로 스트리커가 되는 사람도 있는데, 굵직굵직한 스포츠 경기에선 한 두 번씩 스트리커가 등장하곤 한다.
스트리커가 딱히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특별한 처벌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Summary Offences Act 1981에 의거한 경범죄 중 풍기문란죄에 해당 된다. 풍기문란죄는 최고 이천불의 벌금이나 삼개월의 징역이 부과/선고 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몇백불 정도의 벌금으로 끝나게 되는 가벼운, 말 그대로 경범죄이다.
럭비 월드컵을 앞둔 뉴질랜드 국회의원들은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큰 국제 경기에 스트리커가 있으면 곤란하다 생각을 했는지, 특별행사 관리법이라는 법령에 스트리커에 관한 조항을 삽입하고 처벌을 강화하게 된다. 그런데 처벌에는 너무 관대한 뉴질랜드 사람이어서인지, 겨우 최고 벌금을 오천불로 높이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법령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스트리커 외에도 경기장 안으로 물건을 던지는 사람도 같은 벌금과 징역형으로 처벌을 할 수 있게 한 점도 있지만, 스트리커에 관한 부분에 가려 딱히 눈에 띄진 않는다.
이번 럭비 월드컵에도 어김없이 스트리커가 등장했는데,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고 별 탈 없이 잡혀갔다 한다. 월드컵을 맞아 스트리커에 관한 처벌을 특별히 강화 했건만,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이 스트리커는 훈방 조치로 풀려났다고 한다. 국회의원 아저씨들 민망하게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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