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이야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어느 나무의 이야기

0 개 1,016 명사칼럼

“우둔한 영혼들아. 나를 보렴”

다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아는 것

낮고 약한 것들의 푸르른 생명성 


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에 심어졌습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지요. 나무는 자신을 존재하게 한 대(大)존재의 명령대로 자신의 세포를 분열시키고 기관을 만들며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에도, 천둥 번개가 치는 검은 밤에도 나무의 목적은 ‘사는 것’ 이었습니다. 나무의 세상은 온갖 위험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만, 그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그저 ‘살아내는’ 것만이 목표이었습니다. 

 

나무 주변에는 다른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나무들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이 작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지에는 영양분이 제한되어 있었고 그것을 먼저, 많이 차지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변에는 또한 이 나무와 별다를 바 없이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어린나무들도 있었지요.   

 

나무는 큰 나무, 작은 나무들과 겨루며 많은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졌을 때는 햇빛을 향해 최대한 손을 뻗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통증으로 어깻죽지가 마비될 때까지 손을 내밀었으나 햇빛 한점 받지 못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 며칠 지속 되면 이파리가 누렇게 뜨기 시작했고, 나무는 죽음의 징후를 느끼기도 했지요. 

 

나무는 이 모든 위기와 고통과 경쟁의 시간을 거치며 점점 더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큰 나무들이 마침내 수명이 다해 쓰러지는 것도 보았고, 어린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떤 나무들은 병이 들어 수족이 흉하게 뒤틀리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가슴 속에도 수많은 고통으로 여기저기 옹이들이 배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무는 스스로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삶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푸르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황금 나무” (괴테)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요. 물론 여기에서 “나무”는 일종의 상징이긴 하지만요.   

 

나무는 자신이 “황금 나무”로 완성되기를 꿈꾸었습니다. 나무의 정신이 저 지고한 곳을 향할수록 세상은 더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그럴수록 나무의 기준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황금빛을 띠며 우람하게 커가는 나무를 보고 기가 죽었습니다. 

 

이제 나무의 눈은 예리할 대로 예리해져서 한눈에 사물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가 볼 때 어리석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무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통찰이 부족한 나무들은 이 나무와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나무들과의 시간은 이 나무에게 견딜 수 없이 지루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무는 자신이 “황금 나무”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관계를 멀리했습니다. 정신의 지고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했고, 쓸데없는 일로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지요. 

이제 커질 대로 커진 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세상의 맨 꼭대기에 있는 태양만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이야말로 나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기 때문이지요. 

 

나무는 빛나는 태양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영혼의 “황금”이 연단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환희가 나무의 온몸을 물들였습니다. 나무는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나무는 이미 “황금 나무”의 영혼이 어떤 것인지 알아버렸습니다. ‘세상의 이 모든 어리석은 것들아, 우둔한 영혼들아. 나를 보렴.’ 나무가 이렇게 속으로 외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기조차 검게 물들어 나무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멀리서 엄청난 에너지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나무는 보았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거대한 칼로 변했습니다. 불의 칼은 순식간에 나무의 정수리를 내려쳤습니다. 나무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 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무는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다 무너진 후에야 나무는 알았습니다. 자신의 꿈이 바로 “회색의 이론” 들이었음을. 푸르른 “황금 나무”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 약한 곳, 아픈 곳, 어리석은 곳에 있었습니다. 불의 칼에 쓰러진 나무의 밑동에, 어리고 푸른 이파리 몇 개가 간신히 팔랑이고 있었습니다. 다 죽어가면서 나무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게, 이것이, “푸르른 생명의 나무” 임을.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 오 민석 교수 


충남 공주 출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교수로 문학 이론, 현대사상, 대중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론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연구서 <<저항의 방식: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학 연구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 서 <<아침 시: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 <<경계에서의 글쓰기>>,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을 냈다. <단국문학상>, <부석 평론상> 등을 수상하였다.

  

0e5bcd798b4c023d6d10fb30a021e7c3_1566966529_7875.jpg
 

우선순위가 있는 삶

댓글 0 | 조회 468 | 2024.03.13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더보기

호미로 일군 미각 혁명, 망경산사

댓글 0 | 조회 303 | 2024.03.13
사찰음식 초짜의 사찰 탐방기무던히 잘… 더보기

욕실 리모델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댓글 0 | 조회 633 | 2024.03.13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입… 더보기

입만 벌려도 턱이 너무 아파요 ㅠ ㅠ

댓글 0 | 조회 468 | 2024.03.13
말을 하거나 음식을 씹는 행위를 제외… 더보기

기업 감사(audit)를 준비하는 방법

댓글 0 | 조회 508 | 2024.03.12
특정 규모의 기업들에게는 정기 감사는… 더보기

하체 집중 케어 요가

댓글 0 | 조회 551 | 2024.03.12
볼록한 앞벅지 1cm 얇아지는 운동과… 더보기

남자의 마음

댓글 0 | 조회 392 | 2024.03.12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비가 그친 강물… 더보기

Post Study 워크비자 완전정복기

댓글 0 | 조회 726 | 2024.03.12
뉴질랜드는 소위 “유학후 이민 워크비… 더보기

고독을 사랑하는 남자

댓글 0 | 조회 372 | 2024.03.12
반대편에 위치한 뉴질랜드로 이주해 살… 더보기

호흡과 식사

댓글 0 | 조회 192 | 2024.03.12
식사 후에는 가급적 단전호흡을 하지 … 더보기

뇌경색(腦梗塞)

댓글 0 | 조회 527 | 2024.03.08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에 몸… 더보기

한국의대 2천명 증원 찬스 100% 활용하기

댓글 0 | 조회 993 | 2024.03.05
윤석렬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로 20여 … 더보기

대붕(大鵬), 관정(冠廷) 이종환

댓글 0 | 조회 329 | 2024.02.28
TV에서 장학퀴즈를 보고 다들 어찌 … 더보기

나보다 먼저이신

댓글 0 | 조회 345 | 2024.02.28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사람을 대하는 … 더보기

생리가 잘 나오지 않아요

댓글 0 | 조회 852 | 2024.02.28
여성의 건강 지표 중에서 월경은 매우… 더보기

2024년 1월 영주비자 신청 변경 사항

댓글 0 | 조회 1,790 | 2024.02.28
영구영주권은 (Permanent Re… 더보기

의지를 주도하라

댓글 0 | 조회 221 | 2024.02.28
밀린 잡무를 힙겹게 마무리하고 겨우 … 더보기

침 고인다! 돌고 도는 다정다감한 맛

댓글 0 | 조회 369 | 2024.02.28
전국비구니회관 사찰음식 강좌에서주호 … 더보기

우리집 물에서 녹물이 나와요!

댓글 0 | 조회 553 | 2024.02.27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입… 더보기

잃었던 정서(情緖)를 마주하던 날

댓글 0 | 조회 437 | 2024.02.27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의 하루 … 더보기

인맥 관리 ‘노하우’ 5가지 오해

댓글 0 | 조회 580 | 2024.02.27
“인사나 이권을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 더보기

자기 전 꼭 해야하는 스트레칭 (숙면 보장, 피로 회복)

댓글 0 | 조회 702 | 2024.02.27
바쁘게 일하고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 더보기

시험 준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5가지 팁

댓글 0 | 조회 295 | 2024.02.27
시험은 학생들 사이에서 극도의 스트레… 더보기

요즘은 비자 심사에 얼마나 걸려요?

댓글 0 | 조회 1,107 | 2024.02.27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타국적 소지자… 더보기

아버지의 빛

댓글 0 | 조회 559 | 2024.02.27
시인 신 달자​1아버지를 땅에 묻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