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이제 봄기운이 천지에 가득 합니다.
그렇게 세차게 불던 바람도 오늘은 햇살이 따뜻하여 점심 후 그 밑에 앉아 나와 그림자와 졸고 있습니다. 주변엔 벚꽃과 목련, 철쭉, 라벤다, 불두화등이 제 칼라를 나타내며 마음껏 향기를 뿜여 내고 있습니다.
사방은 온통 녹색 빛이 여서 “복사꽃 물에 떠 아득히 흘러가니 인간 세상 아닌 별천지 여기로세,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라는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 가슴을 지나갑니다.
그리고 옛날 어느 노스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주 옛날 산골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는 배가 고파 온 종일 우는 게 일이었지요. 아기의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회초리로 울음을 멎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를 맞을 수밖에…….
그날도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매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집 앞을 지나던 노스님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다가 불연 무슨 생각이 난 듯 집으로 들어와서 매를 맞고 있는 아이에게 넙죽 큰절을 세 번 올렸습니다.
이에, 놀란 부모는 스님에게 연유를 묻습니다.
“스님! 어찌하여 하찮은 아이에게 큰절을 하는 것입니까?”
“예……. 이 아이는 나중에 큰 그릇의 정승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곱고 귀하게 키우셔야 합니다.” 라고 답하고 스님은 홀연히 자리를 떴습니다.
그 후로 아이의 부모는 매를 들지 않고 공을 들여 아이를 키웠습니다.
훗날 아이는 정말로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스님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감사의 말씀도 전할 겸 그 신기한 예지에 대해 여쭤 보고자 스님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노스님을 찾은 부모는 웃음을 띠며 감사의 말을 건네고 바로 궁금했던 점을 묻습니다.
“큰스님, 스님은 어찌 그리도 용하신지요. 스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 아이가 정승이 되리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빙그레 미소를 띠던 노승은 茶를 한 잔씩 권하며 말문을 엽니다.
“이 돌중이 어찌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허 허 허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하나이지요” 이해하려 애쓰는 부모를 주시하며 노승이 다시 말을 잇습니다.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마찬가지로 아이를 정승같이 귀하게 키우면 정승이 되지만,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세상을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마음가짐에 있는 거라 말할 수 있지요.”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자녀의 성격과 삶이 달라집니다.
그만큼 부모의 양육태도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정말 중요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통해서 자신의 욕구충족을 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사실 우리 아들, 딸 서울대 가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기도는 좋지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또한 자녀 스스로 선택하는 인생의 과정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순간부터 내 자녀의 즐거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자녀가 달성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믿어주는 부모여야 합니다.
자꾸 인생의 전부가 공부인양 잘못 교육해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과 이해의 마음입니다.
그것만 이루어져도 아이들은 틀림없이 건강한 성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은 바로 엄마 아빠의 믿음과 칭찬과 사랑입니다.
그러면 자녀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 아들, 딸이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한 최고의 기도이자 양육태도라고 생각됩니다.
“공감”이라는 믿음 위에 자녀의 인품을 존중해서 자녀들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래야 하고 자녀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