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 지 우
국수 두 그릇과 다꾸왕 한 접시를 놓고
그대와 마주앉아 있으니
아우여, 20년 전 우리가 주린 배로 헤매던
서방 고새기 마을 빈 배추밭이 나타나는구나
추수가 수탈이었음을, 상실이었음을 그때 우리는 몰랐어도
다 거두어 간 뒤의 허한 밭이 우리에게는 더한 풍요였다
내 입으로 벗긴 배추 등걸을 어린 그대에게 먹일 수 있었다
그대가 곱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경계가 있고
찬 저녁 노을이 우리를 몰아낼 때까지 거기가
할퀸 우리 땅임을 몰랐으므로
아우여, 이농의 허천난 후예로서 우리는
가시 돋친 탱자나무 울타리 안을 노려보며
땅강아지 같이 살아왔다
거지와 도둑이 사는 마을, 닐니리 동네와 철로변 하꼬방촌을
전전하며, 땅 바깥으로 삶을 내동댕이치는 울타리가
도둑질이며 도둑질을 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어느 새 내가 울타리 안에 있음을
아까 악수하는 그대 손바닥이 알려준다
울타리를 치지 않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아우여
국수를 한 입에 몰아넣는 그대 앞에
나의 허기가 사기라는 것을,
아 어쩌다가 내가 시인이 되었을까,
국수와 설움과 쫓겨난 땅을 노래하는 일까지 극치의 사치라는 것을
아우여, 용사여,
두려워서 자백하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나간 길과 다른 나의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통로,나의 길
나는 늘 경계에 있었다
대구와 양산, 김해 혹은 영등포에서 빡빡 깍은 그대 머리를
대했을 때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게 나에 대한 그대의 면책은
아니었다 면책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계가
나의 에펜네, 새끼들, 그리고 그대와 나의 어머님, 지금도
해남에서 땅에 코를 박고 살아가고 있는 형님과
나 사이에도 있다 나의 분노는 슬픔을 지나온 것이다
나는 뚫고 가야 하리라
내 등을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그대가 먼저 떠나라
우리는 다꾸왕은 한 입도 대지 않았구나
빈 국수 그릇에, 그대와 나의 새벽 공복을
울리고 가던 송정리행 기적소리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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