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닮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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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닮은 여인

0 개 1,648 김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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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자매처럼 닮은 두 여인이 우리 집 에어비앤비 손님으로 찾아왔다. 마나와투 골프장에서의 시합 때문에 파미를 찾은 손님이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잘생기고 건강미가 넘치는 미녀들이었다.

 

  모녀라는 말을 남편을 통해 들었지만, 밝지 않은 실내조명 탓인지 도저히 나이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좀 지난 이후에야 겨우 모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15살의 딸과 마흔 중반인 엄마의 격차를 못 느낄 정도로 두 사람의 에너지는 내 눈에 차고도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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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의 이름은 정다래. 뉴질랜드 골프 랭킹 1위 국가 대표선수이다. 다부진 체격에 한 눈에 봐도 심신이 모두 건장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에어비앤비의 손님들을 통해 한계 없는 인간의 능력을 많이 접했는데, 이 모녀 역시 끊임없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래 양 엄마의 이름은 신수현. 수현 씨와는 아주 짧은 대화 속에 따스한 정이 솟아올랐다. 아름다운 미소의 소유자, 나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을 때가 제일 예쁘지만, 그녀의 웃는 모습은 내 마음을 녹이고도 남았다.

 

  그런 나에게 수현 씨는 그녀의 아름다운 어머니 사진을 보여 주었다. 한국무용가인 어머니,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70을 바라보는 연세에 아직도 활발한 공연과 더불어 후배 양성을 하신다고 하던데, 너무 멋져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연륜이 그대로 묻어나는 살풀이춤, 백의관음보살춤, 한량무, 부채춤....... 등 그분의 사진들 덕분에 내 눈은 호사를 누렸다. 그분이 손수 만든 연꽃을 찍은 사진도 보았다. 안무에 필요한 소품들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시는 것들도 많으리라.

 

  학창시절 배구 선수였던 어머니는 결혼 이후 중등교사이자 남자 핸드볼 대표 팀 감독이었던 남편의 내조와 더불어 세 자식들을 키우느라 40이 되어서야 한국무용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수현 씨도 대단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영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운동선수의 생활은 눈물겹기만 했다. 

 

  그 힘든 과정을 잘 아는 아버지로서는 딸이 좀 더 편한 길 가기를 바랐을 수도. 그때 남편 몰래 딸의 보조를 해주셨던 어머니. 결국 아버지의 승인을 얻었으나, 체육고등학교가 아닌 일반 인문계 학교에 들어가게 하여 학교 공부와 운동을 겸용하게 하였으니, 얼마나 힘겨운 시간이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덕체를 갖춘 장한 여인이 되어 그만큼 보람되고 자랑스러운 길을 걸은 것이다. 다래 양과 함께 뉴질랜드와 해외를 돌아다니느라 얼마 전부터 자신의 일은 접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고 본다.

 

  능통한 영어로 골프 랭킹 1위 국가 대표선수의 보조 역할을 척척 해내고 있으면서 한국의 어머니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으니, 너무나도 커다란 민간외교를 하고 있는 여인. 

 

  다래 양의 한국어 실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그녀의 한글학교 후배들한테 전하는 동영상 메시지를 보면서 환한 에너지에 눈이 부셨다.

 

  할머니의 총기가 딸을 통해 손녀한테까지 전해진 듯.

  

  나는 50이 되어 수필가로 등단하고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작가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엔 그저 코리아 포스트에 칼럼을 연재하는 정도이다.

 

  아직도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그저 내 글을 좋아하며 함께 공감하는 몇 명의 애독자가 있음에 감사하는 정도이다. 

 

  한국에서 실용음악 교수이며 음악 감독인 지인이 나에게 한 말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 자체가 재능이 있는 거란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도 재능이 있나 보다. 글재주가 수려한 편은 아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비록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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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을 닮은 여인도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식들 웬만큼 키워 놓고 나서 시작한 한국무용이 그녀에게 큰 기쁨을 선물했을 것이다. 남편 내조와 자식 양육을 통해 느껴보지 못했던 환희가 그녀의 영혼을 깨웠을 거 같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뒤늦은 내면의 열정이야말로 말리기 힘들다. 나 자신을 봐도 충분히 그러하다. 백발이 성성한 이 나이에도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좋은 책을 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니,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면 열정은 숫자마저도 사라지게 하는 것 같다.

 

  20년 전에 언니는 국전인 한국수채화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자식과도 같은 그림들을 팔아야 생계가 유지되었다. 늘 그게 안타까웠던 언니는 요즘 판화 작품을 만든다. 판화는 그림과 달리 원판을 자신이 소장할 수 있어 공유의 즐거움을 갖게 된다고 한다.

 

  수채화 화가로 시작한 언니의 그림들은 주로 풍경화와 정물화였지만, 10년 전에 아주 재미있는 그림들을 그렸다. 도끼비들. 그 도깨비 그림들은 전시회를 열자마자 거의 다 팔려 나갔다.

 

  언니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도깨비들에 매료 된 나는 그 그림들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이야기로 엮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내 생각에 언니도 흔쾌히 수락했고, 큰애가 편집을 맡아주기로 해서 몇 달 전부터 스토리를 만들고 있었다.

 

  얼마 전에 편집과정까지 거의 다 끝냈고, 이제 남은 건 출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이다.

 

  연꽃을 닮은 여인의 사진은 나에게 춤을 추라고 부추기고 있다. 나다운 춤을 추라고. 나다운 춤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춤이라고.

 

  용기백배하여 도깨비들과 함께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며 신나는 춤판을 벌려보고 싶다. 나다운 안무에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는 도깨비들의 춤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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