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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008. 17:14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218.♡.85.150)
뉴질랜드 여행
테와카테하우아 섬 ~ 후카테레
테와카테하우아 섬에서 몇 가닥의 실개천을 지나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니 주변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숲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바다만 길다랗게 연결된 것이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파도의 일정한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30여분 더 가니 해변에 조개 껍질이 많은 곳이 눈에 띈다. 이런 곳을 파면 맛있는 조개가 무척이나 많다. 여기 근처가 오늘의 숙소다. 4시간 후면 물이 차 올라와서 해변을 모두 덮기 때문에 해변에서 육지쪽으로 불쑥 올라온 모래둔덕 위에 차를 옮겼다. 약간 높은 곳의 모래언덕 뒤, 바람 없이 조용한 곳에 텐트를 치고 버너 위에 물을 올려 놓은 후 바다쪽으로 걸어가, 물이 발목 정도 차는 모래 바닥을 말로 비볐다. 잔 파도가 모래를 쓸어 가자 발바닥 밑에 촘촘히 세로로 박힌 피피 조개 40여 개가 보였다. 이 흰 색의 조개는 조개 껍질끼리 부딪혀 깨서 날로 먹을 수도 있고, 물을 조금 넣은 냄비에 넣고 데쳐 먹어도 좋다.
뉴질랜드의 풍요로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최첨단 여과장치 없이도 수많은 조개들이 유기물을 정화하며 스스로 살을 찌운다. 해변에 버려진 빵 조각은 갈매기가 깨끗이 치우고, 차량들이 대기에 쏟아 놓은 매연 역시 남태평양에서 불어온 깨끗한 바람과 수많은 나무들이 정화 해준다.
텐트에서 살짝 데친 조개들은 먹기 좋게 간이 되어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모래 속에 박혀서 사는 놈들인데도 생각보다 모래가 많지 않아 먹을 만하다. 조개를 데친 국물은 풍부한 바다 영양이 그대로 담겨 시원하고도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는데, 약간 아릿한 맛이 스프와 어우러져 천연의 조미료 역할을 한다.
저녁이 되어 날이 서늘해지고 파도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몸이 으스스해진다. 뉴질랜드 서해안은 저녁놀이 아름답다. 희뿌연 입자로 부서진 물 안개에 번지는 저녁노을의 붉은 빛이 장관이다. 이렇게 밀물이 되면 해변의 모래사장이 파도에 의해 막혀 완전히 고립되기 때문에 다시 썰물이 될 때까지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이 어마어마한 자연을 혼자 즐기는 이 느낌은 이 곳 90마일 비치에서만 가능하다.
후카테레 ~ 와이파파카우리 비치
아직 주위가 캄캄한 새벽이다. 5시 30분이 겨우 넘은 시간인데, 바닷가라 수분이 많아 텐트 속의 습도가 약간 높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커피 물을 끓인다. 웅크리고 몸에 침낭을 감고 앉아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몸이 녹아 다시 잠이 쏟아진다.
진한 커피 향은 우리 몸의 잠을 깨우는 조건반사의 열쇠 역할을 한다. 커피와 더불어 간단한 에피타이저로 어제 잡은 조개를 몇 개 더 삶았다. 아침의 싸늘한 기운에 파도소리가 청각을 통해 보태는 한기로 몸이 부르르 떨린다. 어제 밤에 바로 텐트 앞까지 왔던 바닷물이 저 멀리 가 있다. 와이파파카우리 비치로 나오는 길이 천천히 밝아 온다.
자연에 완전히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연 속에서 먹고 즐기며 살던 과거의 사람살이가 오히려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자연을 두려워하며, 편리함을 위해 좁은 공간 속에 촘촘히 지어진 아파트에서의 폐쇄적인 생활이나 늘 상대방의 요구에 준비하고 있어야만 하는 핸드폰 등은 인류가 스스로에게 만든 족쇄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거대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며 스스로에 대해 겸손해지는 일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뉴질랜드의 맛은 자연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없어야 느낄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곳, 그 곳이 오늘의 숙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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