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 사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메밀묵 사려∼∼

0 개 3,774 코리아포스트
동지가 지나 열흘쯤 되면 그 짧던 해도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했다. 엊그제 입춘도 지난 모양이니 낮이 제법 길어지고 계절은 벌써 봄으로 접어든 것 같다. 하지만 깊은 고요속에서 무딘 청각을 통해 목련꽃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교교한 밤. "메밀묵 사려~~"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반짝 정신이 들어 잠은 더 멀리 도망가고 환청속에서 헤매게 된다. "찹쌀떡~~" 겨울밤 아름다운 정취로 떠오르는 나 어렸을 적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따끈한 아름목자리 요밑에 발묻고 둘러앉아 매일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 있었을까? 그때는...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 밭에는 당추심고 뒷밭에는 고추심어...." 엄마의 조용한 넋두리 노래가 시작되면
"고추 당추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나무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누이 하나 뾰족새요 남편하나 미련새요....
우리는 깔깔거리며 합창을 해 버린다.

"시아버님 따뜻한 눈길하나 믿고 살았는데 왜 그리도 빨리 가 버렸는지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지같이 어려우랴) 이 대목에서 늘상 가사를 바꿔 만들어 부르시던 어머니였다. 할머니 시집살이 설움받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주 옛날 남의 이야기처럼 구수하고 재미있어서 철없이 깔깔거리고 좋아했던 시절. 힘든 세월 참을 "忍"자로 살아내고 자식들 요만큼 오순도순 길러 낸 것을 보람으로 우리들 앞에 서슴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는 재미로만 들었지만 이젠 깊은 공감으로 그 고통을 마음 아퍼한다(어른이 되어서야 어른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이치를 어쩌리)

"이제 그만들 자거라" 밤이 이슥해서 일어서시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누군가가 잡고 늘어지면 엄마는 벌써 속으로 짐작하는게 있게 마련이다. "메밀묵 사려~~" 좁은 골목을 돌아나와 저쪽으로 사라지는 소리가 몇번 지나갔고 영낙없이 집앞에서 다시 외쳐대는 큰 소리에 동작빠른 오빠는 벌써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 때마다 내 눈치를 살피던 어머니, 육남매 중 유달리 먹성이 신통찮은 내게 묻는 신호였기에 오빠는 내게 싸인을 보내며 어느새 대문을 박차고 나가 메밀묵 장수를 잡아둔다. 김장김치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 양념에 버무린 구수한 메밀묵을 먹던 신나는 그 밤들. 밤참에 찬 것 먹고 탈날세라 더운물 끓여 토렴해서 무쳐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정성을 이 밤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고 있는 늙은 딸자식. "찹쌀떡~~" "메밀묵 사려~~" 지금도 어디선가 들려 올 듯 하지만 창문을 스치는 풀잎들의 소란일 뿐 문득 출출해진 뱃속에 허기만 더할 뿐 입속엔 쓴 군침만 돈다.

땔랑땔랑 두부장수의 요령소리를 들으며 어렴풋이 잠이 깨는 아침도 많았다. "두부 사려어~~" "콩나물 사려어~~" 피난시절에 듣던 부산에서의 "재첩국 사-이-소~~"도 아침을 여는 그 시절의 정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것도 없었다면 피난살이가 너무나 따분하고 고통스럽기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낮의 엿장수 가위소리는 철거덕 철거덕 둔탁한 소리지만 개구쟁이들을 끌어내는 멋진 신호탄이었다. "떨어진 고무신짝. 빈병들... 아버지가 마시다가 남긴 술이 쬐금 들어 있으면 더 좋아요...." 철거덕 철거덕" 온갖 넉살로 고물을 줏어 섬기는 엿장수가락은 징그럽도록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가 아직 신을만한 어른 고무신을 들고 나갔을 때다." 으흠 이놈봐라 엿이 그렇게 먹고 싶더냐? 아버지 신는 신을 들고 나왔네" 한바탕 눈을 부라리고 너스레로 어르고 나더니 잔뜩 겁을 먹고 서있는 아이에게 철거덕 엿을 한동강 끊어 손에 쥐어 주고 고무신도 다시 들려주던 생각이 떠오른다. 엿장수에게도 그럴듯한 낭만이 있고 인심이란게 있었던 세월이었다.

아침 시작부터 밤까지 하루의 생활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된 반세기 저쪽 우리네 삶이었다.

얼마전 한국에서 초청되어 온 "프리모 칸단테"의 공연 중에 한 획을 장식한 "메밀묵 사려~~"를 들으면서 잊혀졌던 옛날 생활 모습이 멋진 해학으로 돌아왔음에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두부장수, 엿장수 그리고 메밀묵 장수까지 그 현실감나는 익살을 음악 속에 생동감있게 담아 낸것을 보면서 쿵쾅쿵쾅 가슴 뛰는 흥분 속에 몸이 떨렸다.(여기가 지금 어디야?---)

폭우 쏟아지는 어두운 빗길, 불안으로 몇번이나 망서리다가 갔던 것인데 그런 멋진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더니 음악 속에 살아남은 "메밀묵 사려~~" 팔아도 팔아도 다 팔리지 않는 영원한
메밀묵 장수. 한국의 낭만이여.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무대에 선 자랑스런 한국인(Ⅱ)

댓글 0 | 조회 1,599 | 2009.08.25
문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지… 더보기

국제 무대에 선 자랑스런 한국인(Ⅰ)

댓글 0 | 조회 1,518 | 2009.08.11
시에라레온 유엔 미션 (UNAMSIL… 더보기

피로 얼룩진 사자의 산 시에라레온(Ⅳ)

댓글 0 | 조회 1,799 | 2009.07.29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당 소속의… 더보기

피로 얼룩진 사자의 산 시에라레온(Ⅲ)

댓글 0 | 조회 1,886 | 2009.07.15
반군은 정부군의 부대 위치와 반격에 … 더보기

피로 얼룩진 사자의 산 시에라레온(Ⅱ)

댓글 0 | 조회 1,786 | 2009.06.24
비행기가 멈추고 트랩을 내려오는데 활… 더보기

피로 얼룩진 사자의 산 시에라레온(Ⅰ)

댓글 1 | 조회 2,186 | 2009.06.10
2002년 1월 21일시에라레온 행 … 더보기

유엔 민간직원으로 선발되다(Ⅰ)

댓글 0 | 조회 2,236 | 2009.05.26
"따르릉, 따르릉" 저녁 10시경 전… 더보기

피의 계곡 카라코람 하이웨이(Ⅲ)

댓글 0 | 조회 1,582 | 2009.05.12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은 시아파가 주류… 더보기

피의 계곡 카라코람 하이웨이(Ⅱ)

댓글 0 | 조회 2,246 | 2009.04.29
그래도 이놈의 운전병은 얄밉게도 태평… 더보기

피의 계곡 카라코람 하이웨이(Ⅰ)

댓글 0 | 조회 2,022 | 2009.04.16
초가을,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은… 더보기

하늘과 가까운 스카루드(Ⅱ)

댓글 0 | 조회 1,822 | 2009.03.25
2 주차 접어들어 이 곳 상황을 자세… 더보기

하늘과 가까운 스카루드(Ⅰ)

댓글 0 | 조회 2,144 | 2009.03.11
소에서 다른 초소로 근무지를 옮길 때… 더보기

죽음에서 신음하는 카쉬미르인들(Ⅱ)

댓글 0 | 조회 1,892 | 2009.02.25
딸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더보기

죽음에서 신음하는 카쉬미르인들(Ⅰ)

댓글 0 | 조회 1,770 | 2009.02.11
오늘은 유엔군 감시단으로서 처음으로 … 더보기

라왈라코트 초소 주방장

댓글 0 | 조회 1,575 | 2009.01.29
아침 일찍부터 미묘한 긴장과 이별에 … 더보기

유엔 평화 파수꾼-정전 감시단 출국 신고

댓글 0 | 조회 2,001 | 2009.01.13
충성 ! "육군 소령 고 동주, 인도… 더보기

UN과의 첫번째 인연 – 캬쉬미르의 UN 평화 정전 감시단

댓글 0 | 조회 1,477 | 2008.12.24
1) 200년 영국 통치의 인디아 대… 더보기

유엔의 각 조직 기구와 역활

댓글 0 | 조회 2,502 | 2008.12.09
"유엔(United Nations)"… 더보기

상해가 발생할 때 재정적 안정을 유지하는 길

댓글 0 | 조회 2,642 | 2009.06.10
몇몇 소규모 사업자들과 자영업자들은 … 더보기

자영업자의 ACC 세금 보다 개선된 옵션

댓글 0 | 조회 3,244 | 2009.05.27
ACC CoverPlus Extra를… 더보기

친척이나 친구가 뉴질랜드 방문 중 다치게 되면

댓글 0 | 조회 3,228 | 2009.05.13
ACC에서는 모든 뉴질랜드인들과 뉴질… 더보기

해외 여행 중 상해, 귀국 후 지원

댓글 0 | 조회 3,143 | 2009.04.28
해외에 나갔다가 상해를 당하게 되면,… 더보기

사고 사망시 유가족 지원

댓글 0 | 조회 3,885 | 2009.04.15
누군가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고를… 더보기

심한 부상을 당한 분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댓글 0 | 조회 2,792 | 2009.03.24
심한 부상이란?매년 뉴질랜드에서 사고… 더보기

사회적 재활 간병인, 육아 및 교통비 보조

댓글 0 | 조회 2,806 | 2009.03.10
다치게 되면 ACC에서는 종종 치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