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필수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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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필수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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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누가 바다 멀리 어느 섬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자꾸 환청처럼 들려온다고 했다. 거기 섬사람들의 목쉰 통곡이 분명한데, 위험해서 아무도 건너가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한 청년이 혼자 건너가 조문을 했다. 매일 했다. 초상집이 아닌 집이 없었고 산 자는 모두 상주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산 자는 죽은 자보다 더 말이 없었다. 모두 흐느껴 울기만 했다. 조문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온 청년은 오랫동안 앓아누웠다. 이때가 청년의 나이 27살이었으니 벌써 30여 년이나 흘렀다.

 

더 오래 전, 머리를 빡빡 깍은 한 문학소년이 부산 서면의 작은 책방으로 들어갔다. 서점의 곱슬머리 점원이 소년을 구석으로 데려가 ‘이거 폭탄’ 이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몰래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평소에는 박현채, 리영희, 함석헌 등의 ‘이념서적’ 들이었는데 이 날은 달랐다. 집으로 돌아간 소년은 점원의 말대로 ‘문을 꼭 잠그고 혼자’ 밀봉한 봉투를 뜯었다. 낡은 복사본이 툭 떨어졌다. 읽었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첫 줄이 이렇게 시작되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 이었다. 점원의 말대로 진짜 ‘폭탄’ 이었다. 소년의 심장에 지진이 일어났다. 장시를 모두 탐독한 소년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아- 씨발, 시는 이렇게 써야지. 이런 게 진짜 시고 시인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런 폭탄 같은 시를 한번 쓰고 말거다….”

 

이 때가 소년의 나이 17살 고교 2학년이었으니 벌써 40여 년이나 흘렀다.

 

몇 년 뒤, 이제 청년이 된 소년은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가 시를 쓰며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되었다. 긴 수배시절, 영문 없이 죽은 섬사람들과 조문을 떠올리며 ‘한라산’ 이란 제목의 장시를 써서 발표했다. 모두 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모두 ‘고첩’(고정간첩)이 썼다고 했다. 유탄을 맞아 감옥 간 대학생들도 많았다. 물론 청년도 체포돼 ‘신체포기 각서’를 썼다. 관절이 꺾였고 물고문을 받았다. 평생 먹을 물을 하룻밤에 다 먹었다. 그리고 당시 담당 공안검사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역시 몇 년 뒤, 서점의 곱슬머리 점원은 부마항쟁의 배후인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나타난 몇 년 뒤 이번엔‘부산 양서조합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3층 창문 밖으로 투신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방면되었다. 그가 집에서 보약을 끓여 먹으며 회복중일 때 서울에서 청년이 병문안을 갔다. 점원의 온몸은 폭행고문으로 시퍼런 멍자국과 상처투성이였다. 청년은 전율했다. 그 이후 자기신념이 흔들릴 때마다 청년은 점원의 상처를 떠올리며 운동화끈을 졸라매었다.

 

어쩌면 청년이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40년이나 은폐되어 온 ‘제주43학살’을 폭로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 그 이면에는 한 점원이 부마항쟁과 양서조합운동으로 피를 흘리며 심어놓은 ‘폭탄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것이 큰 것을 겸하고 있을 때 역사의 부챗살은 작게 접혔다가 크게 펼쳐진다. 제주4.3항쟁은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반통일적 원죄였고,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결을 점화시켰다. 이제 부산은 영혼의 계승이 필요하고 제주는 영혼의 치유가 필요하다.

 

매년 4.3 때마다 제주도에 갔다. 지난해는 4.3 70주년을 맞아 ‘4,3전국화세계화’ 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홍보문구 하나까지 고심하던 예전과는 크게 달랐다. 모두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뜻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세상의 변화를 그 세상의 최하위 약자들의 변화에 기준을 둔다. 4.3의 최하위 약자는 죽은 자들이다. 죽은 자는 죽기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해자를 찾아 죽음의 계보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사자의 상처와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해자는 밝히지 않고 계속 제사만 지낸다. 그것도 이제 유가족을 떠나 정부 차원에서 지낸다. 죽음의 계보가 정권에 닿아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책임이 밝혀진 이상 형식적으로라도 향불을 피운다. 정부의 4.3추념식 같은 진정성 없는 미봉책이나 민간의 여러 추모문화제 등을 볼 때마다 내 한쪽 가슴이 무너지는 것은 그것이 자칫 ‘아우슈비츠 축제 마케팅’ 같은 것으로 변질될 우려 때문이다.

 

지금의 아우슈비츠는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유태인들의 광기와 자기모순을 상쇄하기 위한 블러핑 마케팅이다. 실제로 그들은 1945년 나치패망 이후 조용하다가 1967년 아랍폭격으로 세계적인 비난이 거세지자 갑자기 ‘홀로코스트’를 들고 나왔다. 유태인 사망자 수도 계속 늘어나고 죽음의 서사도 더욱 잔인한 방식으로 부풀려 선전했다. 그 첨병이 ‘피아니스트’나 ‘쉰들러 리스트’ 같은 나치영화들의 감독들이다. 앞으로도 홀로코스트라는 브랜드가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은 영원한 피해자인 척하며 마케팅을 극대화할 것이다. 추모를 넘는 영혼의 상품화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최소한 가해자들의 뿌리를 뽑고 부관참시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와의 큰 차이다. 우리는 아직 가해자 언저리도 가보지 못했다. ‘제주4.3학살’은 동아시아의 자유와 평화를 참칭한 미국의 청부살인이다. 그게 죽음의 계보 꼭짓점이다. 그래서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가 유태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었듯 미국 대통령이 제주 평화공원 추모비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무릎 꿇고 아직도 무덤 주위로 배회하는 까마귀들을 보아야 한다.

 

촛불로 세상은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았다. 설국열차 앞칸의 10%만 변했지 뒷칸의 90%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은 봄이 와도 꽃필수록 아프고, 남북북미 정상들이 만나도 여전히 제주도로 조문을 간다. 제주4.3의 장례는 3일장이 아니라 71년장이다. 

 

* 부산시청 신문 <다이내믹부산> 게재 (2019.4) 

 

■ 이 산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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