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것과 머무는 것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떠난다는 것과 머무는 것

0 개 1,431 한얼
6월의 끝자락에 도착한 한국은 매우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입국 심사를 마친 후 가방을 찾기 위해 걸어가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그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덥네. 하긴, 한국에 마지막으로 왔던 것이 2년쯤 전이었으니 한국의 기후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윗입술 위, 이마, 콧잔등에 자꾸만 맺히는 엷은 땀을 닦으며 걸어갔다. 전화기의 통화 기능은 물론 먹통이었지만 대신 와이파이는 된다는 것에 과연 세계 최강 인터넷 국가, 라고 감탄하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가방을 모두 찾은 후 - 내 몸통의 두 배쯤 되는 짙은 보라색 수트 케이스다. 브랜드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 색깔을 영어론 가지색(aubergine)이라고 하지 싶다 - 카트에 담고 걸어갔다. 인천 공항의 카트는 뉴질랜드 공항의 카트와는 다르게 손잡이를 아래로 꺾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서 꽤나 다루기 힘들다. 혼자서 그렇게 밀고 당기고 씨름하며 나와보니, 아빠가 나와 계셨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깜짝 놀랐다.

“어? 아빠! 여기서 뭐해? 아무도 안 나온댔는데?”

그 말에 멋쩍게 웃는 아버지. 나는 눈을 굴렸다. 어이구, 그럼 그렇지.

카트는 아빠에게 맡기고, 나는 한동안 공항을 돌아다녔다. 공항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 중 하나다. 공항과 연계된 느낌 때문만이 아니라 - 이제 곧 먼 곳으로, 아마도 영원히, 떠난다는 그 기대감과 두려움이 섞인 긴장 - 공항 건물들 그 자체 때문이다. 안에 무수히 자리 잡은 가게들 하며 최대한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설계된 시설들까지.
 
특히 인천 공항은 편의성만이 아니라 세련됨, 화려함까지도 극에 달한 아주 우아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한 성과이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극성스러우리만치 북적거리면서도 그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친절한 직원들, 끝이 안 보이는 타일 바닥, 대리석 건물에서 나는 차가운 먼지와 공기 냄새에 나는 상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비행기에서 느꼈던 피로감의 해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 이제야 하늘과 땅 사이에 뜬 어중간한 부유감에서 해방되었구나, 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적 불안정 상태를 나는 매우 싫어한다. 그런 면에선 나 또한 여러 모로‘극단적이고’‘화끈한’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옳으리라.
 
세계 최고의 공항인가 하는 상을 여러 번 받은 곳답게, 인천 국제 공항은 과연 아름다웠다. 아마도 조금 더 집에서 거리가 가까웠다면 여가 시간을 떼울 곳으로는 단연코 이 곳만을 고집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온갖 종류의 상점들 덕분에 이미 공항은 공항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쇼핑몰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웨스트필드도 이것에는 필적하지 못할 것이다. 
 
공항에서 더 머물면서 물건들도 구경하고, 쇼핑도 하고 싶었건만 더운 날씨와 기다림에 (내가 예상보다 늦게 나왔으므로) 짜증이 날 대로 난 아빠는 곧장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왜 이렇게 서둘러? 무슨 일 있어?”

“작은 집 (작은 아빠네를 우린 이렇게 부른다. 작은 집, 큰집)에 다들 모여 계셔.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가자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 계시지.”

“작은 집 식구들은?”

“직접 가서 봐.”

그렇게 바삐 가야 해서 안타까웠지만, 현실은 예의 그런 것이니까, 라고 중얼거리면서 나오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향해 눈을 굴리는 아빠를 보자 새삼스레 아, 한국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단 것은 논외이다.
 

해후 - 피하고 싶은 돌발 이벤트

댓글 0 | 조회 1,674 | 2016.07.14
알고 지내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 더보기

장례식 - 안녕, 그리고 고마웠어요

댓글 0 | 조회 1,672 | 2015.07.28
살면서 장례식에 가본 적은 딱 두 번… 더보기

즐거운 노동

댓글 0 | 조회 1,649 | 2013.11.26
집에 혼자 있는데도 빨래가 산더미처럼… 더보기

머리카락 -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것

댓글 0 | 조회 1,629 | 2013.08.14
한국에 와서 한 달이 지난 후, 머리… 더보기

카페 - 재인식의 장소

댓글 0 | 조회 1,615 | 2016.06.08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단골로… 더보기

예쁜 것과 아픈 것

댓글 0 | 조회 1,596 | 2013.09.11
모든 여자들은 원하는 만큼 근사한 신… 더보기

겨울 - 춥지만 믿지는 않은

댓글 0 | 조회 1,595 | 2016.12.07
한국에는 눈이 왔다고 호들갑스러운 연… 더보기

주말 - 혼자만의 여유

댓글 0 | 조회 1,590 | 2015.03.10
주말은 조용하게 보내는 편이다. 조용… 더보기

정원 - 꽃과 나무와 책임

댓글 0 | 조회 1,589 | 2015.02.25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정원일은 매우 … 더보기

고양이 - 도도한 애교쟁이

댓글 0 | 조회 1,584 | 2015.08.13
고양이를 키울까 고민 중이다. 얼마 … 더보기

부산여행 - 上

댓글 0 | 조회 1,555 | 2014.08.26
부산은 3년만이었다. 아니, 2년만이… 더보기

혼자라는 것

댓글 0 | 조회 1,551 | 2015.07.14
고독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곤… 더보기

화장 - 복잡한 신비로움

댓글 0 | 조회 1,501 | 2013.10.08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나는 사회인이 되… 더보기

완벽과 자기 만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99 | 2012.09.11
나는 그다지 여성스러운 편이 아니다.… 더보기

문신-지극히 개인적인 암호

댓글 0 | 조회 1,497 | 2015.05.26
뉴질랜드는 한국에 비교하면 문신을 새… 더보기

꿈 - 항상 졸리게 만드는 것

댓글 0 | 조회 1,489 | 2014.11.26
꿈을 자주 꾼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더보기

포스터 - 보다 세련된 영역 표시

댓글 0 | 조회 1,486 | 2016.11.09
나의 방, 나의 공간이란 개념이 생길… 더보기

시- 작고 즐거운 조각들

댓글 0 | 조회 1,463 | 2015.05.13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소소한 방법들 … 더보기

현재 떠난다는 것과 머무는 것

댓글 0 | 조회 1,432 | 2013.07.09
6월의 끝자락에 도착한 한국은 매우 … 더보기

체육관-운동과 친숙함의 관계

댓글 0 | 조회 1,422 | 2015.03.25
언제 가도 체육관은 똑같다. 같은 조… 더보기

Sweater Weather

댓글 0 | 조회 1,401 | 2015.04.29
시간은 가을이지만 계절은 가을과 겨울… 더보기

가장 짧지만 긴 그 순간

댓글 0 | 조회 1,387 | 2015.08.27
길을 걷다가, 또는 슈퍼마켓에 갔다가… 더보기

음악에 관한 (아마도) 첫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352 | 2013.06.12
없인 살 수 없는 몇 가지 중에 음악… 더보기

기계, 우리들의(아직은 불완전한) 동반자

댓글 0 | 조회 1,338 | 2013.09.24
얼마 전부터 노트북이 말썽이다. 또.… 더보기

어느 해 겨울, 등교길

댓글 0 | 조회 1,335 | 2013.02.27
겨울의 등교길은 언제나 머릿속에 남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