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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에 정착한 지도 벌써 20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린 세월이다.
나에겐 이민 초창기 때 만나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인연을 맺어 왔었던 분이 계시다. 그때 파미에 와서 정착을 했다가 떠난 대부분의 지인들과 달리 지금 그분은 파미로 돌아와서 사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분이 먼저 연락을 취하시는 덕에 만남이 끊어지지 않았다.
행복의 화신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매사에 적극적이면서도 흥이 많고 마음이 무척 젊은 분이시다. 그런 만큼 인간관계도 폭이 넓으실 거 같다. 사람을 좋아하여 나이와 인종에 상관없이 쉽게 사귀면서 마음을 주신다. 좋은 성격임에 틀림없다.
부지런하여 가만히 계시지를 못하신다. 8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수 십 년 동안 해왔던 수영과 걷기운동을 끊임없이 하신다. 타고난 건강에 근면함과 긍정적인 마음까지 더하니 장수할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추신 셈이다.
2주 전쯤에 할머니께서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 함께 만나 걷기로 하고, 그분이 매일 걷는 산책길을 둘이 함께 걸었다. 작년 6월에 건설이 된 아름다운 ‘He Ara kotahi’ 다리를 스쳐가는 바람의 냄새가 상쾌했다.
할머니는 오직 보행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이 다리에서 차가운 마나와투 강바람에 혹여 내가 힘들까봐 바람막이를 해주시면서 걸으셨다. 당신은 강바람에 익숙하다고 하시면서.
다리를 건너니 우람한 소나무들이 쭉 늘어선 길이 열리고 길 너머로 넒은 들판이 펼쳐져서 가슴이 확 트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가까이에 숨어 있었다니! 아니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었던 것뿐이다. 행복이라고 별다르겠는가? 세상만사 다 똑같은 것인데.
할머니는 내게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행복에 대한 깨달음을 동시에 선물했다. 소나무의 정기를 듬뿍 들여 마시면서 운동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면서 바람을 피해 차 안에 앉아 커피와 함께 담소를 나눴다.
집에 돌아와 할머니가 주신 비닐 주머니를 풀어 보니, 단팥죽 두 통과 군밤 한 팩, 그리고 물휴지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바람이 차갑지 않았으면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함께 먹으려했단다.
마침 점심을 먹고 난 뒤라서 가볍게 다리 앞에서 파는 커피로 목을 축였는데, 준비해 오셨던 주머니를 내 손에 쥐어 주시고 헤어진 것이다. 가족과 함께 군밤을 맛있게 먹고, 단팥죽은 이틀 동안 할머니 생각을 하면서 혼자 먹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둘째를 위한 부케를 만들기 위해 시내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던 중 도넛을 사서 할머니 집에 갔다. 유난히 빵을 좋아하시는 분이시고, 지난번에 주신 단팥죽과 군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도넛만 전해주고 오려던 참이었다.
할머니께서 다치셔서 방금 수술실로 들어가셨다고, 웰링턴에서 온 사위가 말해주었다.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부러지셨단다. 며칠 전만해도 멀쩡하셨던 분이셨는데.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지만, 갑작스러운 사고에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호두를 안주로 내어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신 기억이 나서 호두를 들고, 도넛을 사서 병문안을 갔다. 할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좋으셨다. 예전 모습 그대로 오히려 더 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간병하는 딸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버렸다.
환자는 쉬는 타임에 들어간 거고 간병인은 그 반대라고 내 친구가 말하던데, 그 말 그대로인 거 같았다. 영어가 안 되는 분이 혼자 병원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시니, 딸이 간병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와 함께 해서 덜 힘들다고 말하지만, 반쪽이 된 얼굴을 보니 간병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덕분에 몰랐던 병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뇨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고, 약을 먹어야할 상황이란 걸 알게 되어 약을 드시게 되었단다. 약 덕분인지 혈당이 많이 떨어졌단다. 나쁜 것이 나쁜 것만이 아니고 좋은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님을 매번 실감하지만, 할머니의 경우도 나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병문안을 마치고 집에 오자 알 수 없는 피곤이 몰려왔다. 몸살기운이 있는 듯 했다. 잠시의 방문이었지만, 병원의 기운이 내 기력을 다 빼앗은 듯 했다. 저녁 먹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잠에 빠져 있었던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오랜 지기 이웃을 너무 소홀히 한 것 같다. 엄마와도 같은 분께 먼저 전화를 한 적이 없다. 늘 그분이 먼저 전화를 하셨고, 내가 먼저 그분께 다가간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이민 초창기 때, 우리 부모님과 내 동생 시부모님들이 파미에 오셨을 때마다 아주 다정한 친구로 지내셨는데, 그때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에게 연락을 자주 하셨다. 추억의 노인 분들 중 친정아버지만 생존해 계시는데, 두 분의 재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식인 나도 아버지를 만나 뵈러 가기 힘든 상황이니, 할머니의 소원은 이루기 힘들 것이다.
할머니의 사고가 남 일 같지 않은 건,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였을 것이다. 엄마도 고관절이 부러져서 고생을 하셨는데, 병원에서 수술을 하신 후 휴양병원에서 두 달 동안 생활하시면서 재활을 하셨다.
엄마는 세 딸들이 가까이 있어서 휴양병원에서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하셨지만, 나는 그저 먼 곳에서 빨리 쾌차하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불효녀였다. 할머니도 휴양원에 가셔서 재활을 빠르게 하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좋겠다.
희망에는 나이가 없다. 마음에 나이가 없듯이 희망 또한 마찬가지이다. 굴곡진 세월 속에 꿋꿋하게 살아온 당신. 그 누가 뭐라던 긍정의 힘으로 여기까지 버텨온 당신. 언제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당신.
즐거운 판타지를 안고 오늘 요양원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오버랩 되어 내 가슴에 다가온다.
나이에 상관없이 희망을 품고 사는 모든 이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희망을 늘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나 자신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쳐본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