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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반려견이 죽었다. 먼저 간 수놈을 따라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떠나는 상황이 닥치니 많이 우울해 보였다.
16년 동안 함께 했었던 첫 번째 반려 견을 보내면서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어디 인연이 자로 잰 듯 그렇게 단순한가? 인연 따라 흐르다가 이번에 네 마리째 반려 견을 저 세상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환갑을 넘기고도 몇 년이 지난 삶을 살았으니, 그 정도의 이별은 있을 법한 일이다. 나만해도 벌써 두 마리의 고양이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가 다 된 페로와 함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친구는 이번에 떠난 개를 키우는 내내 불쌍해서 더 예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껏 그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사연이 많은 개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사연이 궁금해져서 친구한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 애는 부잣집에 분양이 되어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짝쿵과 함께. 하지만 주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그 행복이 오래가진 않았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내 친구네 집에 둘이 함께 왔을 땐, 이미 이가 다 빠지고 혀도 쑥 나온 상태에 마룻바닥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다 트라우마가 많은지 친구와 친해지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고 한다.
잘생긴 짝쿵이 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짝쿵이 죽고 나서야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되었단다. 이렇게 1년 동안의 호사를 누리다가 친구의 가슴에 안겨 죽음을 맞이했는데, 8년이란 짧은 인연이 안타깝기만 한가 보다.
“나도 그 애의 가는 길 축복해줄게.” 라는 말을 전하면서 친구를 위로했다.
한 반려견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페로가 참 복이 많은 고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까칠한 성격과 짧은 입맛을 다 들어 주는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상전 중의 상전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40에 산 테비 잡종인데, 작은 덩치에 낯도 엄청 가린다. 삐지기도 잘해서 비위 맞추기도 힘이 든다.
고양이들의 특권일지도 모르겠으나 우리 페로는 유별나게 도도하다. 이런 도도장이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우리 가족을 보면 팔불출들이 따로 없다. 그런데 밖에서는 다른 고양이들한테 많이 물려서 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집에서라도 여왕마마처럼 사니 다행으로 여긴다.
페로는 발을 만지는 걸 무척 싫어한다. 배에 손을 댔다가는 난리가 난다. 안을 수도 없다. 빗질을 해주는 걸 무척 좋아한다. 목을 긁어 주고 뒷목과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누워 있는 가족의 배 위에서 꾹꾹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햇볕 냄새가 나는 담요와 부드러운 털 위에 앉기를 좋아한다. 집에서 가장 포근하고 부드러운 장소를 좋아하며, 가족들이 벗어 놓은 옷 위에 눕기를 좋아한다. 수돗물을 싫어하고 빗물을 좋아한다.
페로라는 상전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정확하다. 지 멋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법칙이 있어 보인다. 14년을 함께 살았지만, 페로만의 법칙을 아직 확실하게 다 알 수는 없다.
페로가 어른 고양이가 된지 얼마 안 되어 새끼 고양이랑 함께 살게 되었다. 장난이 심한 수컷 디노를 페로가 아주 잘 돌봐주었다. 그러나 디노가 어른이 되자 그때부터 디노를 무척 싫어했다. 디노가 페로를 많이 귀찮게 굴었던 거 같다.
태어났을 때부터 천식이 있었던 디노는 병원에 자주 다녔었는데, 5년 전 내가 한국 방문 중에 집을 나가버렸다. 동네 곳곳 수소문을 했지만 못 찾았다고 한다. 아마 몸이 안 좋아서 스스로 떠난 거 같다. 무척 영리한 고양이었으니까.
그렇게 고양이를 잃고 나서 몇 년 후에 페로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 왔다. 길고양이 같았다, 빠짝 마르고 볼품이 없었다. 밥을 주라고 했다. 집 안에는 한 발짝도 못 들여 놓게 하면서도 밖에서는 살갑게 챙겼다.
감씨. 털이 까매서 감씨로 부르게 되었다. 감씨 역시 어른이 되자 페로는 아주 냉정하게 대했다. 지금도 감씨는 우리를 감시하는 듯 매일 우리 집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으며, 페로와 1m 거리를 유지 하면서 지내고 있다.
페로 두 배의 크기로 자라난 감씨가 페로한테 꼼짝하지 못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페로는 우리 가족들뿐만 아니라 고양이들조차 페로를 이해하기 힘들 것만 같다. 페로의 마음은 사람보다 더 복잡해 보인다. 그래도 페로와 함께 살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지금 역시 페로가 있어서 행복하다.
친구가 유메를 보내면서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 말을 믿을 수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인연을 뿌리치기엔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 따스하다. 번개처럼 스쳐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 번개에 맞을 수도 있다. 번개 맞은 대추나무가 행운의 상징이 되는 것을 보면 번개를 기대해봄직도 하다.
포비가 죽었을 때,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페로를 본 순간 그 마음이 싹 가셔졌고, 지금 나는 페로의 시중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저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기만을 바랄뿐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아직 빠진 이빨 하나도 없이 꼬장꼬장하게 잘 지낸다. 하지만 언젠가는 페로도 나와 이별할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사랑. 그냥 그렇게 흘러가듯 나 또한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내 친구 또한 그렇게 흘러가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흘러가는 삶 속에 녹아드는 사랑을 마음껏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우리 또한 사랑임을 기억하면서 지내련다.
코로나 사태와도 같은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앞으로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가 사랑임을 잊지 말고 오는 인연 받아들이고 가는 인연 곱게 보내야겠다. 세월의 강물에 사랑의 배가 되어 강물 따라 흘러가면 그만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