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花樣年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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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200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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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나는 내 목적지가 어딘지 모른다. 나는 무시로 떠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수년 전부터 더욱 심해졌다. 세상의 부대낌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 견디기 어려웠다. 모든 생활의 군때와 시름, 탐욕을 벗어 던지고 나는 방랑하고 싶었다. 무념의 상태로 여기저기 떠돌다 보면 내 심상이 청정해지지 않을까.
나는 홍콩으로 떠났다. 홍콩에 가면 정말 별들이 그렇게 많을까?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 거리를 걷다 보면 꽃 파는 아가씨가 불쑥 뛰쳐나올까?
홍콩으로 가는 C항공사는 좌석마다 LCD스크린이 장착되어 있었다. 장난감처럼 작은 리모콘도 스크린 아래 꽂혀 있다. 잡아 뽑으면 줄과 함께 나오는 리모콘은 다시 꽂을 때는 줄과 함께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나는 감탄이 절로 나와 몇 번이나 리모콘을 넣었다 꺼내 보곤 했다.
신형 비행기의 서비스 중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마련되어 있었다. 김혜자가 들판에서 의식(儀式)처럼 추는 춤은 공옥진의 병신춤과 다름없다. 에미란 한(恨) 조차도 춤추면서 삭여야 하는 법. 한숨이 턱에 닿는 고통 속에서도 무연히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넘기기 어려운 밥을 자식 앞에서 꾸역꾸역 맛있게 먹는 것, 처참하게 찢겨져도 자식 앞에서는 찬란해 보여야 하는 것. 김혜자의 허위허위 떠도는 춤사위를 내 몸도 이미 알고 있는 터, 나도 눈을 감고 그 의식에 동참하고 있었다.
박 건용 감독의 '킹콩을 들다'도 저릿한 감동을 주었다. 부모도 없고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몽땅 쏟아 붓고 죽어간 거룩한 스승의 얘기다. 고 정인영 선생의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 그 이름을 나는 기억하고 싶다. 시간 떼우라고 틀어 놓는 영화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영화를 선별 해주고 잘 보았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홍콩의 소녀 그룹이 전통악기로 연주한 곡들을 감상하다가 다시 주성치의 홍콩 영화를 보았다. 아내가 여덟 명이나 있는 주성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했는데, 정말 사랑하는 여인 공리를 만나게 된다. 때 마침 비행기는 홍콩에 도착했다. 유쾌하고 기발한 주성치 영화의 나머지는 돌아오는 길에 볼 수 있게 되기를---.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예약해 둔 호텔로 가는 밤 길은 온통 빛 뿐이었다. 별의 짝퉁 불빛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광야, 불빛들이 다리 아래로, 바다 위로, 길 옆으로 치열하게 반짝였다. 하늘의 별빛은 땅의 불빛에 질려 우주의 어둠 속으로 제 몸을 숨겨 버렸다.
별들은 말한다. 땅의 일들이 하늘의 일들을 덮치는 경우는 없다고. 그래서 별들은 몸을 숨겼노라고. 그 오만한 야심은 이튿날 백주 대낮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침사추이의 한 호텔에 묵었다. 홍콩의 중심지이면서 구룡반도와 홍콩 섬을 잇는 항구 쪽 호텔을 택한 이유는 사방팔방 다니기 좋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 침사추이 지역은 호텔들이 모여 있고 명품 매장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쇼핑 천국이라는 홍콩답게 없는 게 없었다. 저 명품들을 누가 다 살까? 홍콩의 중심지를 몽땅 차지한 명품 샵도 모자라서 건물들이 새로 올라가고 오래된 건물들은 재단장해서 새로운 명품 매장으로 변신시키려는 공사로 바빴다. 도대체 하늘의 별보다 더 귀한 명품이 있는가?
서울 거리와 흡사한 홍콩은 사람도 많고,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차들도 많고, 발 아래는 공사중이어서 조심해야 하고 허공은 어지러운 간판들이 한참씩 뻗어 나와 공중에 매달려 있어서 아슬아슬했다. 정신 없이 인파에 떠밀려 가고 있는데,누군가가 '언니!'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홍콩에서 누가 나를 아는 체 하는 것인지? 게다가 남자였다.
"언니, 짝퉁 있어. 가방, 시계---가짜, 가짜."
쫓아오면서 호객 행위를 하는 남자는 현지인은 아니었다. 이태원에서 근무하던 이가 출장을 온 것일까. 여자에게는 언니, 남자들에게는 아저씨라고 했다.
"진짜랑 똑같애, 언니---!"
유창한 한국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홍콩 시내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거무스레한 남자들은 여지없는 호객꾼이었다. 으슥한 상가 모퉁이로 나를 끌고 갈 심사였다. 나는 외지인 티를 안 내려고 애썼는데 귀신같이 알아보고 호객 행위는 계속 되었다. 에휴, 창피! 여행지에서 이렇게 낯 뜨거운 일은 처음이다. 대한민국이 '졸부의 나라'로 손가락질 받는 일을 종식시키려면 품위와 도덕성, 예의를 돈 버는 일보다 더 중시해야 한다. 이제는 먹고 살만하지 않은가.
97년 6월 30일, 영국의 임차 기간이 끝나고 중국에 귀속된 홍콩은 아시아의 허브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데, 뭐니뭐니 해도 식도락의 천국이다. 몽콕 야시장의 허름한 집, 죽 조차도 어찌나 맛 있는지 그냥 홍콩에 눌러 앉고 싶을 정도. 다양성과 맛으로 예술의 경지까지 오른 딤섬은 홍콩의 대표 음식. 나는 아침마다 '화양연화'의 장만옥이 국수를 사러 양철통을 들고 나가 듯 딤섬을 사러 나갔다. 난탄 로드의 딤섬 집에서 딤섬을 다섯 가지 정도 샀는데, 고작 N$7,8불 안팎. 나는 딤섬을 사 들고 골목길을 돌아 호텔방에 와서 홍차와 함께 먹었다. 영국 사람들이 마약을 팔아 차를 사 먹었을 정도로 홍콩의 차는 특별하다. 향과 맛이 진하고 그윽하다. 딤섬은 커피보다 홍차와 썩 잘 어울린다. 그 둘의 궁합을 맛보면서 나는 별나게 '화양연화'라는 말을 떠올렸다. 왕가위 감독, 양조위와 장만옥 주연의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화양연화'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뜻. 내가 그 때 그런 시간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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