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고 비 오던 우기철이 지나고 이제 꽃피는 봄날이 왔다.
간간히 바람 불고 비 오지만 계절은 맑고 쾌청한 날로 변해서 움추렸던 나날을 활기차게 한다. 자연의 변화는 한 계절에 고정되지 않고 지구가 돌 듯 순환을 거듭 하며 자정과 생명의 기능을 다 한다. 이 가운데 인생은 생존을 거듭하며 삶의 기쁨과 슬픔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뇌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 해 내는 가이다. 지난 가을 어느 분에게 시련이 찾아 왔다. 그의 작은 실수가 회사에 손실을 가져왔고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명분으로 호기롭게 사표를 던졌지만 사실 그는 무엇을 크게 잘못 했는지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문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냥 사표를 던졌는지도 모른다. 지난 5년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자신의 존재 가치는 사라지고 실수로 인한 회사에 끼친 손해만 부각되는 것이 못내 서운하고 속상했다. 그에 대한 마음이 무거워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방황 하다가 그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템플 스테이에 참여 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연수형과 휴식형이 있는데 그는 좀 한가한 휴식형 탬플스테이를 선택 했다. 사찰에서 보내는 일정은 방 안에서 혼자 잠자고 한가롭게 명상하고 새벽 예불에 참여해 108배를 올리고 아침공양을 한 뒤 계곡 길을 따라 암자까지 산책하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 가는 동안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노력 했지만 생각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더 이상 절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다 싶어 하산 할 짐을 꾸려 놓고 평소 다니던 암자에 올라 마애불을 뵙고 내려오는데 찻집에 계신 스님이 그를 불러 세웠다. 들어와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것 이였다. 며칠 째 오고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셨는지 맑게 우려낸 녹차 한 잔을 내어 주시면서 무엇 때문에 얼굴에 화가 가득하냐고 물었다.
처음 뵙는 스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아 아무 일도 없다고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스님은 찻잔을 들어 보이시면서 “이 찻잔의 무게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라고 물으셨다. 그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이 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스님은 “그래요. 그렇게 무겁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찻잔을 한 시간 두 시간 계속 들고 있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아무리 가벼운 찻잔도 내려놓지 않고 계속 들고 있으면 힘들어 집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속으로 “힘 들 땐 내려놓으면 될 것을. 나는 왜 이 문제를 계속 들고 있었던가?” 그제야 스님이 따라 주시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입에 넣고 차 맛을 음미해 보았다. “아! 이렇게 맛있다니……. 아! 한 잔의 차에 이렇게 깊은 심오한 뜻이 있다니.... 이것이였구나! 이제 길이 보이는구나!”
그는 스님이 주신 차 한 잔에 그렇게 깨닫고 이제껏 마신 차 중에 가장 맛있는 최고의 차가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나 가족이나 타인에 대해 품고 있는 원망이나 분노나 탐욕을 내려놓아야 그 마음이 평온해 진다. 타인에 대한 시기, 질투, 비난, 집착도 내려놓아야 그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고 유연해 진다. 자신만을 위한 자존심, 이기심, 아집, 교만도 내려놓아야 갈등과 분쟁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각성을 통해 인간은 더 진화된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사유와 시각이 차와 선(禪)의 만남이다. 차를 그냥 마시지 말고 자기 내면을 따뜻하게 일깨우는 사랑과 영혼을 담아낼 때 차는 문화가 되고 진리가 된다.
한 잔의 차에도 우주의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