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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네모아와 투타네카이7편
사랑을 어려워하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요즘 그래도 나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사랑, 물론 나도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히네모아가 보여준 사랑에서 배운 것은, ‘그냥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어쩌면 이 시대의 사랑이나 결혼의 요구조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투타네카이의 피리 소리조차 끊긴 어둡고 험한 물을 건너는 히네모아에게 자존심이나 조건, 계산, 목숨마저도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인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사랑을 꿈꾸는 이들을 보면서 점점 더 비현실적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을 보며 이제는 여자들의 로망이 사람도 아닌 도깨비가 되었고, 두드리면 무엇이든 나오는 도깨비방망이처럼 그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을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
남자들의 젊은 여자를 바라는 로망 역시 이제는 미성년자 여주인공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그저 대리 만족을 위한 설정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요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말이 반영된 것임을 자주 확인하게 되곤 한다.
모든 것을 갖춘 후에 하려는 연애나 결혼 또는 욕망의 충족을 위한 연애나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코 모두 갖추어지거나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 조각상을 실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결국 사랑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건너야 하는 물과 같고, 때로는 따뜻한 바위나 웅덩이와 같고, 그들만의 공간인 섬과 같다.
두려워해서는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냥 사랑하되 가는 길에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면 함께 부딪치고 극복하면 된다.
흔히 사람들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는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상대에 대해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밑바닥까지 모두 다 내주었을 때 후회도 남지 않고 더 이상 그 사랑에 대해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 안에 아무것도 없을 때, 모두 비워 후회조차 남지 않을 때 또 다른 걸 채워 넣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