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 조상 Kupe가 발견한 보물섬에서 마오리들이 수수천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1642년 네덜란드의 아벨 타즈만은, 자기가 차린 밥상이라며 숟가락을 얹었다. 그의 고향 Zealand에 New만 붙인 것 .영국이 그냥 놔둘 리 없다. 제임스 쿡 선장은 뉴질랜드 남북섬을 탐험하며 지도를 만들었고, 보물섬은 빅토리아 여왕 손아귀에 넘어갔다. 그 날이 1840년 2월 6일, 와이탕기 조약일이다. 마오리 추장 5백여 명은 별다른 저항 없이 문서에 사인을 했다. 통역을 잘못 이해했는지, 프랑스가 무서워 영국의 비호를 받고 싶었는지, 이웃 마을 추장과 ‘친구따라 강남 간’ 추장도 함께 사인한 것인지, 속아 넘어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어떤 이유도 Kupe의 후손들에겐 용서되지 않을 사건이다. 우리의 을사조약처럼.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영국인의 국민 소설 ‘보물섬’과 ‘걸리버 여행기’에서 힘의 원천을 엿보았다. 두 권의 책은 전 세계인의 스테디 셀러이기도 하면서 영국인에게는 특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백만돌이 배터리와 같다.
1726년 출간된 걸리버 여행기는 조나단 스위프트가 영국의 위선과 타락, 부패한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 것. 그러나 스위프트의 풍자는 온데간데없이 ‘미지의 세계는 흥미진진하다’는 메시지로 ‘reset’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가 출간되고 2년 후에 태어난 제임스 쿡은 1769년 드디어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누구보다 멀리, 인간이 갈 수 있는 끝까지 나는 가고 싶다’는 그의 말은 탐험의 열망을 중병처럼 앓았던 걸리버와 오버랩된다.
1883년 출간된 ‘보물섬’ 또한 가만 있으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는 탐험가들을 키워냈고, 영국은 19세기 해상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은 없다. ‘해가 지지 않던’ 나라는 어느덧 석양을 맞고 있다. 바야흐로 보물섬의 손바뀜이 일어날 시점에 중국이라는 해가 말갛게 떠올랐다. 중국의 거대 자본은 세계 각처의 보물들을 수중에 넣고 있다. 벤쿠버는 홍쿠버가 된지 오래되었다. 뉴질랜드에서도 중국의 용트림은 거세다. 중국은 대형 사업 뿐 아니라 오클랜드 철도 사업과 제2하버브리지 건설, 크라이스트처치 재건 등 사회간접자본에도 큰 손을 내밀고 있다. 존키 총리는 중국어 교육이 필수라는 것을 강조하며 중국어 교육을 독려하고 있다. 뉴질랜드와 중국은 요즘 말로 베프(best friend)가 된 듯하고, 우린 왕따 당한 여고생처럼 처량맞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불안하다.
중국이 뉴질랜드와 대형 국책 사업을 의논하면서 관계 기관에 브리핑을 요청하고, 각종 문서에 사인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한인회관 부지를 사느냐 빌리느냐로 오래도록 왈가왈부하다가 급기야 투표까지 했지만 아직도 자잘한 논란 중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영국이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있을 때, 우리는 당파 싸움에 머리가 터지고 있었다. 아직도 제 버릇 개 못주고 있다. 언젠가 하와이 마우이 섬에 갔을 때, 선배 한 명이 통탄을 했다. 이 좋은 기후와 땅을 우린 왜 못 얻었을까? 고래도 새끼를 낳아 키워서 떠나는 좋은 바다를 비싼 돈 주고 관광 와서 구경만 하고 돌아가다니. 백여 년 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민간 우리 조상들은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자 미국 본토로 재이주했다.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던 일본인들은 보물섬에 질긴 뿌리를 내렸다. 현재 하와이 인구 중 일본인이 25% 정도로 백인과 비슷하고 한국인은 3%에 불과하다. 보물섬의 가치를 알고 지키려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 깨닫게 해 주는 사례다.
글을 쓰고 있는 새벽녘, 봄비가 창문을 철썩철썩 때리며 묻는다. 너는 여기 왜 왔느냐, 부모 형제 다 버리고, 고향 산천 아득히 떨궈버리고, 밤을 새워서 이 섬에 도착한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보물섬’에서 해답을 찾는다. 영국이 보물섬을 손에 넣을 때, 바다에서 맹활약(?) 중이던 해적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런 공로(?) 때문인지 요즘 해적들은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환타지와 모험, 스릴 넘치는 문화 아이콘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전 세계에서 수억부가 팔린 일본 만화 ‘원피스’도 악동 해적이 주인공. 매력적인 해적 죠니댑의 ‘캐리비안의 해적’은 5부를 재촉하는 팬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현실에서 해적은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는 찌질한 인간들이다. 대중 문화 속 해적들은 정의롭고 약자를 도와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 앞장서는 휴머니스트들이다. 뉴질랜드라는 보물섬은 잭 스패로우처럼 멋진 해적이 나타나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왕이면 우리와 우리의 2,3,4---세들이 그 주인공이 되어 수수천년 살아가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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