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은 매년 바쁜 시기가 두 번 돌아온다. 3월과 12월인데, 대다수 법인의 회계년도가 3월 말에 끝나기에 회계년도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할 급한 업무가 몰리게 된다. 연말도 마찬가지인데,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기 전에 끝내야할 딜들로 인해 퇴근시간이 점차 늦어지게 된다. 퇴근시간이 아무리 늦어져봤자 한국과 비교하면 야근이라 말할 수준도 못되긴 하지만…
필자가 소속된 로펌은 변호사가 40여명 정도, 직원까지 포함하면 100여명 되는데, 그 중 필자를 포함한 60여명이 시내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필자는 다른 직원보다 퇴근시간이 늦은 편에 속하는데, 5시 퇴근이면 정시 퇴근이고 , 6시면 필자가 소속된 팀에서는 가장 늦게 퇴근하는 셈이고, 7시면 사무실 전체 불을 소등하고 퇴근하게 된다. 청소부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8시나 그 이후까지 사무실에 있으면 야근이라 부를만한데,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료 변호사나 지인들에게 8시까지 일하고서 야근이라하면 야유가 쏟아질듯 하다.
여유있는 근무 조건은 법조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뉴질랜드 전반적으로 ‘she’ll be alright’으로 대변되는 문화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에, 어느 업계에서 일하건 느긋한 여유가 존재할 것이다. 정치를 보아도 격렬한 투쟁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우리는 고국에서 늘상 보아왔던 국회의원들의 싸움이 뉴질랜드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던지, 십여년전 텔레비젼 광고에는 한국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멱살을 쥐고 싸우는 모습이 신선한 등장을 한 적도 있었다.
다시 법조계 얘기로 돌아와서, 법조계는 단언컨데 뉴질랜드에서 가장 규제를 많이 받는 직업군이라 생각한다. 고객의 의뢰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수임 조건을 알려주면서 책임 배상 보험에 들었는지의 여부와, 불만이 있을때는 어떻게 그 불만을 알리고 접수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고객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데 저희는 일을 잘못해서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몇천만불 한도의 책임 보상 보험에 들어있습니다라던지, 혹시라도 저희에게 불만이 있으시면 이렇게 불만을 접수하시면 됩니다, 라고 말하는 직업군이 몇이나 될까?
이런 규제 중에는 변호사와 고객 사이에 준수해야 할 규정도 있고, 동료 변호사 사이에서도 준수해야 할 규정도 있는데, 이 많은 규정 중 10조 1항을 보면 변호사는 다른 변호사를 대할때 격식을 갖추고 존중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이 적용되어 변호사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데, 과거 예를 보면 동료 변호사로부터 받은 서한에 대해 답변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피하거나, 지정된 시간 안에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변호사가 이 규정의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고, 다른 변호사와의 전화 통화 도중 욕설을 한 변호사도 이 규정의 위반으로 제소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교민 사회의 특성상, 교민의 업무를 진행하다보면 업무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도 교민일 경우가 많고, 그럴때이면 상대방의 변호사도 교민 변호사이기 마련이다. 상대방 변호사가 교민일 때에도 당연히 모든 서류는 영문으로 진행되지만, 전화로 통화를 할 때에는 자연스레 한국어로 대화를 하게된다. 이럴때에는 한국인 특유의 예의범절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필자도 높은 연배의 교민 변호사의 위압적인 말씀이나 무리한 부탁에 곤욕스러울 때가 있었고, 필자를 상대하는 다른 교민 변호사는 깐깐한 필자의 요구나 언행에 언짢은 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일 있을때면, 상대방 변호사가 현지인이었으면 어땠을까, 영어로 대화 했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이 든다. 상대방 변호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역시 반성도 해보게 된다.
교민 사회가 요즘 많이 시끄럽다. 텔레비젼 광고에 나온 고국 국회의원들의 싸움장면을 보면서 부끄러워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러다 안 좋은일로 교민사회가 방송타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하게된다. 모두가 여유를 갖고 쉬어가는게 어떨까 하는 시점이다. No worries, she’ll be alright. 뉴질랜드 삶의 곳곳에 녹아들어 있는 이 여유를 한번 찾아보시는게 어떨까. She’ll be alright. 아름다운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고 전달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