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아내 말을 듣는 남편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28년 만에 아내 말을 듣는 남편

0 개 2,839 김지향
고도근시인 남편의 눈은 노화가 빠르게 진행이 되어 백내장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수술로 시력이 제대로 돌아오기까지 운전은 하지 말라는 의사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새로 산 차는 내가 몰아야할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름이 유별나게 많이 드는 마쯔다 MVP와 소형차 중 어떤 것을 살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 토요마켓에 나가서 파는 꽈배기 도넛장사를 포기할 수 없어서 밴을 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겨울에 바로 만든 따끈따끈한 꽈배기를 팔고 싶어서 후드 트레일러를 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생각하지도 못했었던 차 사고로 후드 트레일러의 꿈은 조금 더 뒤로 미뤄질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집에서 만들어 팔다 보면 언젠가는 한겨울에 후끈후끈하게 장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오게 되겠지요.

토요일 하루 장사로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을 식량이 마련되어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몇 달 동안 쉬다 보니 벌써 겨울이 되어 버렸습니다. 겨울을 나고 나서 봄부터 다시 시작할까 망설이다가 이번 주 토요일부터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파는 꽈배기를 시장 상인들이 좋아하여 야채와 꽃들과 맞바꾸면서 훈훈한 정을 나누면서 지냈기에 변덕스러운 날씨의 한겨울도 견딜 만 했었습니다. 달걀장수 해리와 꽃 농장 할아버지 폴 그리고 야채 가게의 정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토요마켓에 다시 나가려고 하니 은근히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장사가 잘되라고 지인은 남편에게 토토로 앞치마를 선물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과 내가 번갈아가면서 판매를 해왔었는데, 이제부터 남편에게 판매를 부탁하려고요. 우리가 판매를 하는 동안 꽈배기를 만드느라 고단했었던 몸을 차 안에 던지고 꿈속에 빠져 있곤 했었던 남편이었지만 아이들과 내가 바빠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밴 뒷문을 열어 놓고 그 앞에 테이블을 놓고 판매를 하다가 올해부터 차를 치우고 파라솔 아래에 테이블을 놓고 판매를 했었는데, 세 면에 벽을 치는 천막을 구입하였더니 보기에도 좋고 바람도 막아 주고 일석이조네요. 일단 거실에서 천막을 쳐서 테이블을 놓고 디스플레이를 해보았는데, 비주얼로는 괜찮아 보입니다. 

네 개의 기둥에 붙일 모래주머니 속에 모래를 집어넣고, 지역 특산품인 폭스톤 방앗간 밀가루를 사러 폭스톤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그 덕분에 겨울바다를 구경하고 오겠군요. 한동안 가보지 못했었던 해변인데 겨울해변을 거닐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네요. 새로 산 모자를 눌러 쓰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꽈배기 장사를 위해 남편의 모자를 샀습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모자 고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쇼핑 몰을 다 뒤져서 디자인적으로도 방한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니트 모자 두 개를 샀습니다. 생각보다 모자가 잘 어울리더군요.

거실에 천막과 테이블 그리고 소품들을 올려놓고 남편에게 천막 안에 서 있어 보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내가 추천한 점퍼와 토토로 앞치마와 잘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테이블 뒤에 섰습니다.

“활짝 웃어 보세요!” “웃으니 한결 보기 좋네요.” “토토로 앞치마가 정말 잘 어울리네요.” “늘 이렇게 웃으면서 사세요.” 나는 남편 앞에서 푼수를 떨고 있었고, 남편은 내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다 따라 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8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 말을 듣는 남편입니다. 농담이라고는 아예 할 줄도 모르고, 로션을 사주어도 한 번도 바르지 않고, 내가 추천해주는 옷은 절대로 입지 않고,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아내의 속을 태웠던 남편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아내 말을 귀담아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내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줄 배려가 이제야 생겨난 것 같습니다.

마른 모래를 구해야 하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군요. 내일까지 비가 온다고 하여 어쩌면 다음 주 토요일에나 마켓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장까지 마치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네요. 지난 모든 마음의 먼지들을 오늘 내린 비가 깨끗하게 씻어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나 자신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댓글 0 | 조회 1,939 | 2016.06.22
이 글을 적기 전까지 많은 생각이 오… 더보기

백만 송이 장미

댓글 0 | 조회 3,160 | 2016.06.09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의 … 더보기

땜빵 인생

댓글 0 | 조회 1,799 | 2016.05.26
겨울은 햇볕에 대한 감사가 한층 커지… 더보기

덕의 창고

댓글 0 | 조회 1,691 | 2016.05.12
내 안에 덕의 창고가 있다면 그 안에… 더보기

백만 불짜리 미소

댓글 0 | 조회 1,488 | 2016.04.28
며칠 전에 소설책을 버스에 두고 내린… 더보기

특별한 인연

댓글 0 | 조회 2,552 | 2016.04.14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니 참 여러 … 더보기

덤의 인생

댓글 0 | 조회 2,512 | 2016.03.24
가다, 오다, 하다, 피다......… 더보기

You are young

댓글 0 | 조회 2,234 | 2016.03.10
유난히도 더웠었던 짧은 여름을 보내면… 더보기

말을 잘해야 잘 살겠지

댓글 0 | 조회 1,756 | 2016.02.25
방송인 전현무가 자신의 말실수를 돌아… 더보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댓글 0 | 조회 2,216 | 2016.02.11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어떤 시인의 시… 더보기

거꾸로 된 습관

댓글 0 | 조회 1,773 | 2016.01.28
어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었던 내 습… 더보기

가슴으로 맞이하는 새해

댓글 0 | 조회 2,259 | 2016.01.14
나에게 있어서 작년 한 해는 모든 것… 더보기

내 안의 무지개

댓글 0 | 조회 1,869 | 2015.12.23
요즘 나는 낱말풀이 놀이에 푹 빠져있… 더보기

평생 교육

댓글 0 | 조회 2,266 | 2015.12.10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학교에서 정… 더보기

전체와 부분

댓글 0 | 조회 2,099 | 2015.11.26
인간관계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것처럼 … 더보기

통나무와 수영선수

댓글 0 | 조회 1,432 | 2015.11.12
뉴질랜드교육 중에서 수영이 참 중요한… 더보기

첫째가 꼴찌가 되는 세상

댓글 0 | 조회 2,119 | 2015.10.29
성경 속에 예수님이 첫째와 꼴찌에 대… 더보기

귀여운 어머니

댓글 0 | 조회 1,682 | 2015.10.15
한국에 계신 친정어머니와 어제 전화 … 더보기

중년의 비애도 축복이다

댓글 0 | 조회 2,203 | 2015.09.24
7년 전에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한 … 더보기

뉴질랜드에서 처음 산 내 우산

댓글 0 | 조회 2,713 | 2015.09.10
뉴질랜드에 와서 살면서 이제껏 우산 … 더보기

108번의 감사로 시작하는 하루

댓글 0 | 조회 1,776 | 2015.08.27
몇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108… 더보기

봄의 전령사

댓글 0 | 조회 1,792 | 2015.08.12
하얀 은방울이 조롱조롱 달린 것 같은… 더보기

뿌린 대로 거둔다!

댓글 0 | 조회 2,427 | 2015.07.29
드디어 큰애가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 더보기

남십자성이 전해주는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93 | 2015.07.15
가족이 사랑을 주고받는 다는 것은 자… 더보기

현재 28년 만에 아내 말을 듣는 남편

댓글 0 | 조회 2,840 | 2015.06.24
고도근시인 남편의 눈은 노화가 빠르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