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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이라 오래 걸렸다. 무려 662 페이지에 달한다. 이런 책들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엄두가 안 난다. 통상 서울에서는 이동간에 휴대해서 읽고 있는데 너무 부피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두꺼운 책이나 시리즈 물은 시간 여유가 있는 뉴질랜드에서 읽었다.
서점에 그 동안 유대인의 성서(聖書)인 탈무드(Talmud)에 대해서는 책이 많이 나와 있다.
마빈 토케이어의 ‘성전 탈무드(청아출판사: 1981)’를 비롯해 이희경의 ‘탈무드 황금률 방법(동서문화사: 2002)’ 등이 출간되었다. 특히 마빈 토케이어는 그 후로도 수많은 탈무드 관련 책들을 펴냈다. 그리고 탈무드에 관한 책들과 서평은 예전에 올려 놓았다.
1989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느낀 점이 아이러니하게 가장 관광객이 많은 것은 기독교인이고, 사원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은 이슬람 교도이며, 도시를 지키는 것은 유대인 군인들이었다.
예루살렘(Jerusalem)은 이제 ‘하나의 신(神)이 사는 집이자, 두 민족의 성도(聖都)이며, 세 종교의 사원이 있는 유일한 도시’ 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유대교는 히브리어 원문이 남아 있는 <구약>만 성경으로 믿고, 기독교는 구약과 예수 이후의 복음서인 <신약>을 함께 성경으로 믿는다. <코란: Quran>에서는 율법은 모세가, 복음은 예수가 전했으며, 진정한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의 계시가 최종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같은 성경(구약)을 세 종교가 믿는 것이다.
홍익희의 ‘유대인 이야기(행성.B잎새: 2013)’는 종교적 차원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본 유대인에 대한 관한 책이다. 종교적인 성경이나 잠언을 중심으로 쓴 책이 아니고 수 천년 동안 유대인들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서이다. 기원전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영욕의 역사를 이겨내고 부(富)의 권력을 창조해 낸 유대인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유대교인도 아니고 더군다나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도 아니다. 무역관장으로 전 세계를 돌아 다니다 보니 세계 경제 속에는 항상 유대인의 역할이 나타나므로 자연스럽게 유대인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저자는 최근에 ‘세 종교 이야기(행성. B잎새: 2015)’ 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믿음과 분쟁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 뿌리에서 갈라진 세 종교를 통해 인류 문명과 역사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다.
유대인이 서양문명에 준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경제에 대해서는 유대인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다. 서양 문화의 양대 기둥은 유대교의 헤브라이즘(Hebraism)과 그리스의 헬레니즘(Hellenism)이다.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적, 초월적, 영적인 성향인데 반해 헬레니즘은 인간 중심적, 현세 중심적 성향을 지녔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 발전되어 서양 문화를 만들어 왔다.
출애굽기(엑소더스: Exodus) 에서 시작한 유대 민족은 끝 없는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 곧 이산(離散)의 민족으로 생존 투쟁은 처절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그들만의 생존비법은 바로 교육과 공동체 의식 커뮤니티였다. 그 덕택으로 전 세계의 상권을 지배하면서 살아 왔다.
나라를 잃고 항상 피지배계급으로 살다 보니 주체 세력이 못되고 외곽에서 상인으로써 민족의 주체성을 지켜왔다. 서양 역사를 살펴보면 유대인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 그 나라는 흥했고, 그들이 떠나면 쇠했다.
그리스, 네델란드, 스페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더욱이 지금의 미국을 보면 자명한 사실이다.
현대의 록펠러, 모건, 로스차일드와 같이 금융가나 석유 재벌 등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유대인이다. 이렇듯 유대인은 경성(硬性) 권력 중에는 경제력과 금융을, 연성(軟性) 권력으로는 문화 예술을, 기타 특수 권력으로는 언론을 세 개의 축으로 그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했다.
우리가 부르는 ‘유다’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은 찬송 받을지어다’ 라는 뜻이다. 그리스어의 Iudiaos, 라틴어의 Judaeus, 프랑스어의 Juif, 독일어의 Jude, 영어의 Jew, 스페인어의 Judio, 러시아어의 Zhid 등은 고대 히브리인의 12 지파 중 하나인 유다 지파에서 나왔다고 한다.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는 유대인과 비슷한 면이 많다. 유대인을 좀 더 자세히 알고, 그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