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쯤 필자가 어느 대학에서 사진 단기 코스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약 2달간 진행이 되는 코스였는데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기 전날 제출할 사진을 고르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이 도무지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된 적이 있었다. 좌절감에 암실에서 2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가 결국 ‘에라 모르겠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장비를 챙겨 들고 무리와이 비치로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다른 학생들은 다음날을 위해 과제를 마무리 짓고 있을 때 필자는 저무는 해를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필름을 부랴부랴 현상하고 결과물을 받아 보았는데 아주 만족스런 결과물에 시내 한복판에서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웃음짓고 있었다. 이 일화가 문득 생각이 날 때면 사진을 찍는데 카메라를 작동하는 기술만이 전부가 아니고 시간(Time),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sion)도 기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는 한다.
사진에 처음 입문하게 되면 보통 풍경 사진 등 야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에 빠져들게 되는데 광량이나 빛의 효과를 직접 제어할 수 있는 스튜디오 사진이나 기타 인공 조명을 이용한 사진보다 쉽다는 착각에 빠져들기가 쉽다. 태양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양질의 빛을 제공하지만 찍는 사람이 빛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광 아래서 사진을 찍는 일이란 사실 상당한 숙련도와 노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또 자연광을 이용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한 번 놓친 장면은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제 지던 붉을 노을과 오늘 지는 붉은 노을은 다 같은 붉은 노을이기는 하지만 똑같은 노을 일 수는 없다.
그리고 자연광은 어제와 오늘도 다르지만 매분 매초 변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매분 매초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에 최대한 빠르게 반응해야 하며 향후 어떻게 변할 것인가 숙련된 예상을 해야 하는데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려면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나가 경험을 쌓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풍경 사진가들은 한 장소의 사진을 그다지 많이 공개하지 않지만 사실 수 많은 날들을 같은 장소에서 보내는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만들어진 사진들이다.
이렇듯이 사진을 찍음에 있어서도 - 특히 자연광 아래서 - 요즘 유행처럼 비즈니스에 많이 쓰이는 말인 시간(Time),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sion)이 정확하게 들어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되어 이 세 가지 단어를 주제로 이번 칼럼의 주제로 삼았는데 독자들 중에서 자연광 아래서 찍게 되는 사진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는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한 번 꺼내어보고 일전의 경험을 토대로 적절한 계획을 세운 뒤에 다시 한 번 도전하여 본다면 아마 그 사진을 훨씬 뛰어넘는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