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각 과정의 시험이 이미 끝났거나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11월 말이 되었다. 어떤 학생들은 이미 길고 긴 여름 방학에 들어갔을 테고 또 어떤 학생들은 마지막 시험을 위해 아직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방학. 분명한 정의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뒤져보니..
방학 (명사)
<교육>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 주로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 추위가 심할 때 실시한다.
분명 사전적 의미는 수업을 쉰다고 되어있지 공부를 쉰다고 되어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이, 필자나 독자분들이 어릴 때 그러했듯, 방학인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항변을 늘어놓기도 하고 방학에 쉬지 않으면 또 다른 일년의 공부를 이어갈 수 없다는 ‘인간능력 유한론’을 펼치기도 한다.
길었던 한 해의 공부를 마치고 찾아온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또 다른 공부의 연장으로 삼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놀 거리를 찾아서 공부해가며 놀고 싶은 10대에게랴..
하지만 여기 방학기간을 잘 활용해 한마디로 ‘공신(공부의 신)’이 되었던 학생의 사례를 듣고 나면 방학을 핑계삼아 한없이 놀고만 싶은 마음을 조금은 추스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소개해 본다.
필자가 뉴질랜드에서 개인교습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다. 그래서 지금은 그 학생의 이름도 잊고야 말았지만 우리가 불 살랐던 그 뜨거운 여름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J는 오클랜드 그래마스쿨에서 캠브리지 F5과정(IGCSE)를 막 마친 상태였고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게) F6(AS) 코스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순수한 눈빛을 가진 학생이었다.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자 했기 때문에 당연히 수학과 물리점수를 잘 받고 싶어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기출문제를 받아보는 일 등이 쉽지 않았던 때라서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 했다. 또한 넉넉지는 않은 가정형편상 지속적인 과외수업은 계획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상의 끝에 방학 8주간 주당 4회의 수업으로 캠브리지 AS 물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A2 내용까지 살짝 곁들여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처음 J를 만나 약간은 좁은 듯한 책상 앞에 마주 앉았다.
“J야. 너는 자동차의 뒷바퀴고 나는 자동차의 앞바퀴다. 우리는 하나의 자동차고 우리가 각자 할일은 아주 분명하다. 너는 무조건 구르기만 하면 된다. 그럼 방향은 내가 알아서 잡아 줄께”
무조건 내 말만 듣고 죽어라 공부만 하라는 반 협박적인 의도로 한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어머님을 통해 들어보니 그 때 필자의 이 말에 J가 많은 신뢰감을 느꼈었다고 한다. 아마도 학습방향에 대해 많이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일 게다.
처음 만나 서로의 목표를 확인하고 난 후 필자는 J를 위한, 그리고 추후 J와 같은 입장에 처할 다른 학생들을 위한 8주 계획을 작성했다. 크게 5챕터로 나누어진 전 과정을 5번의 test까지 치러가며 8주안에 마무리한다는 것은 그 내용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필자에게도 힘든 일 이었지만 그 내용을 다 소화해내야 하는 J에게는 그야 말로 지옥 훈련과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물리뿐 아니라 수학과 영어까지 본인이 스케쥴을 잡아 ‘스스로 방학 집중 학습’을 했으니 그 학습시간과 노력이 절대 만만할 수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 여름이 더 더웠는데 항상 J의 집에 공부를 하러 가면 마당 텃밭의 호박잎 사이로, 흔히 말하는 런닝셔츠 바람에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맺고서 책상앞에 앉아있는 J가 빼꼼히 보이곤 했다. 가끔 안경에 묻어나는 땀을 닦아가며..
8주의 수업을 마친 후. 필자의 소감은 ‘난감’ 자체였다. 마지막 종합 테스트에서 J가 예상보다 많이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J가 힘든 과정을 견디고 공부에 매진한 것도 사실이지만 필자 또한 연말연시 휴가를 다 포기하고 매달렸었는데 그 결과가 신통지 않은 듯 해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이 후 J를 다시 만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줄 수 있다는 기약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필자는 선행학습의 효과는 학교수업과 맞물릴 때 드러난다는 경험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 Term쯤 시간이 지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J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 아이는 수업시간에 좀 잘 하느냐고. 이 녀석 뜨악하게 필자를 쳐다보더니 귀찮은 듯 대답한다.
“아…. 걔는 물리랑 수학 신 이예요. 그냥 다 알아요….”
보상 없는 노력은 없다고 한다. J가 그 한 여름 책상 앞에서 떨군 한방울 한방울의 땀이, F5의 부진한 성적을 어떻게든 만회하겠다고 이 악물고 덤빈 악착 같은 노력이 J를 결국 ‘공신’으로 만들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더불어 졸업식장의 스타가 된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