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餘白)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Danielle Park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김수동
최성길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여백(餘白)

1 2,853 NZ코리아포스트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배낭에 넣었습니다. 혹시 필요할 지 몰라 하얀 종이 한 장도 챙겨 넣었습니다. 배낭을 매고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렀습니다. 배낭에서 하얀 종이를 꺼내어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얀 종이에 아름다운 경치를 빼곡히 담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하얀 종이를 배낭에 곱게 접어 넣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얼마를 가다가 먼저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다다랐습니다. 다시 배낭을 열고 먼저 번에 아름다운 경치를 그렸던 것 말고 다른 하얀 종이가 있나 찾아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종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의 하얀 종이 뒷면에 두 번째 그림을 그리는데 이번에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반만 그렸습니다. 다시 길을 떠납니다. 참 이상합니다. 먼저 보았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습니다. 배낭에서 다시 하얀 종이를 꺼내어 남은 반을 다시 반으로 나누어 세 번째 경치를 담았습니다. 혹시 더 좋은 경치가 있으면 그리려고 반의 반을 남겨놓았습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습니다.

다시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까지 본 세 번의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난 것입니다. 반의 반이 남은 곳에다 네 번째 풍경을 담았습니다.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꽤 오랫동안 걸었는데도 네 번째 본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계속해서 길을 걷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네 군데씩이나 찾아 그렸네’ 흐뭇해 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걸었습니다.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계속 걸어갑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쯤 길이 딱 끊어진 곳에 다다랐습니다. 낭떠러지 끝에 서서 바라봅니다. 수 천길 낭떠러지 저 건너편에 도저히 이 세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선경(仙境)이 저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에 비하면 앞서 본 네 군데 풍경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보고 말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라 혹시나 그림그릴 종이가 있을까 싶어 배낭을 열고 이 구석 저 구석 샅샅이 찾아봅니다. 그러나 종이라고는 네 군데 풍경으로 가득 채워진 종이 말고는 없습니다.

한 장밖에 없는 종이가 이미 그림으로 가득 차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그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습니다.

태어나 살면서 온갖 것을 마음에 담아놓았습니다. 부모형제, 친구 - 인연들도 담아놓고 살던 집, 고향산천, 여행했던 곳 - 온갖 장소도 담아놓고 과거지사(過去之事), 장래계획(將來計劃) - 세상사(世上事)도 담아놓고 보석, 고급 옷 - 가지고 싶은 것도 담아놓고 학문, 신앙도 담아놓았습니다.

욕심부리고 집착하는 마음도 담아놓고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열등감도 우월감도, 시기 질투하는 마음과 시비 분별하는 마음도 희망과 실망도 담아놓았습니다. 온갖 마음들로 가득 차있어 복(福)이 들어갈래야 들어갈 여백(餘白)이 없습니다. 온통 복스럽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있어 복스럽지 못한 삶 삽니다.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쌔엠
가방 안에 온갖 좋은 것 들로만 꽉 찻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여백 만한  공간도 사실 없지만 ..ㅎ

두 성현(聖賢) 이야기 - Ⅰ

댓글 0 | 조회 2,768 | 2011.03.23
지금으로부터 이천 오백여 년을 전후하… 더보기

무소유(無所有) - Ⅱ

댓글 0 | 조회 2,584 | 2011.03.09
성현들이 보여준 삶은 무소유의 삶이다… 더보기

무소유(無所有) -Ⅰ

댓글 0 | 조회 2,528 | 2011.02.23
사람은 물질인 몸과 정신작용을 하는 … 더보기

소유(所有) - Ⅱ

댓글 0 | 조회 2,701 | 2011.02.08
과거지사 사연과 인연도 마찬가지다. … 더보기

소유(所有) - I

댓글 0 | 조회 2,793 | 2011.01.25
소유하느냐 소유하지 않느냐의 기준은 … 더보기

여백(餘白) - II

댓글 0 | 조회 2,500 | 2011.01.14
해는 저물어 가는데 천길 만길 낭떠러… 더보기

가지미와 바라미의 꿈(Ⅲ)

댓글 0 | 조회 2,816 | 2010.12.22
가지미와 바라미의 어머니는 행여나 가… 더보기

가지미와 바라미의 꿈(Ⅱ)

댓글 0 | 조회 2,936 | 2010.12.08
세월이 흘러 가지미는 어깨가 떡 벌어… 더보기

가지미와 바라미의 꿈(Ⅰ)

댓글 0 | 조회 3,002 | 2010.11.24
가지미와 바라미에게는 한 순간도 놓은… 더보기

숲 속의 나무처럼

댓글 0 | 조회 3,005 | 2010.11.10
햇빛을 좋아하는 양지 식물이 먼저 숲… 더보기

마음으로 짓고 부순다

댓글 0 | 조회 2,845 | 2010.10.28
해는 땅에 있는 만물에게 차별을 두지… 더보기

북한 사람들

댓글 0 | 조회 2,843 | 2010.10.13
바깥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 살… 더보기

두 물방울 이야기

댓글 0 | 조회 2,954 | 2010.09.29
수많은 빗방울이 모여서 작은 도랑을 … 더보기

창조질서의 파괴

댓글 0 | 조회 3,219 | 2010.09.15
이 세상은 조화자체이다. 만물만상이 … 더보기

현재 여백(餘白)

댓글 1 | 조회 2,854 | 2010.08.25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배낭에 넣었습니… 더보기

보고만 있겠는가

댓글 0 | 조회 2,930 | 2010.08.11
낭떠러지 건너편 절벽 위에 예쁜 꽃이… 더보기

물웅덩이(Ⅲ)

댓글 0 | 조회 2,729 | 2010.07.28
하늘을 떠돌던 구름이 빗방울 되어 땅… 더보기

물웅덩이 (Ⅱ)

댓글 0 | 조회 3,107 | 2010.07.14
물이 흐르다가 움푹 패인 곳이 있으면… 더보기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2,838 | 2010.06.22
꽤 오래 전 어느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더보기

시련과 축복

댓글 0 | 조회 2,690 | 2010.06.10
러시아의 문호 푸시긴은 ‘세상이 나를… 더보기

시련과 축복

댓글 0 | 조회 2,784 | 2010.05.26
세상을 살다 보면 하는 일이 순조롭게… 더보기

늑대소년 이야기

댓글 0 | 조회 4,471 | 2010.05.12
인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 더보기

금강산에 가봐야 금강산을 안다

댓글 0 | 조회 2,656 | 2010.04.28
한아름이와 공 모름이는 친구 사이인데… 더보기

하루살이와 매미와 나비

댓글 0 | 조회 5,234 | 2010.03.23
"세상에는 낮 밖에 없어.”하고 하루… 더보기

큰 삶

댓글 0 | 조회 2,488 | 2010.03.09
자기와 가족만을 위한 삶은 세상 사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