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에서 전(前) 파트너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상대를 감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가정폭력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소형 위치추적기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디지털 스토킹’이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경고했다.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Help at Hand의 개빈 힐리(Gavin Healy) 대표는 “피난처와 협력하는 대부분의 기관이 추적기 문제를 겪고 있다”며 “핸드백, 아이의 애착 인형, 차량 내부 등 어디서든 발견된다”고 밝혔다.
그는 “한 사례에서는 가해자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에 원격 접속해 카메라를 켜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감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근 피해자 77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8%가 “전 파트너가 디지털 방식으로 자신을 추적할까 두렵다”고 응답했으며, 20%는 “소셜미디어나 은행 계정 접근권을 빼앗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예방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 Eclipse의 대표이자 피해 생존자인 뎁스 머레이(Debbs Murray)는 “2025년 중반부터 기술 악용 사례가 급증해 관련 워크숍을 운영 중”이라며 “이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로, 피해자를 무력화시키는 잔혹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앱으로 제어 가능한 모든 가정용 기기가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피해자가 집에 있을 때 커튼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거나, 와이파이와 전원이 끊기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또한 “아이 장난감이나 반려동물의 마이크로칩까지 감시에 악용된 사례도 있다”며 “카메라가 달린 기기라면 무엇이든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Women’s Refuge의 조사에 따르면, 서비스 이용자 중 80% 이상이 휴대전화나 전자기기를 통한 디지털 학대를 경험했으며, 56%가 위치 추적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체의 정책자문 나탈리 손번(Natalie Thorburn)은 “가해자들이 별도의 GPS 기기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바일 앱을 훨씬 더 자주 악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우리의 일상이 점점 디지털화될수록, 폭력 또한 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훨씬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뉴질랜드 의회는 2025년 말 ‘스토킹 처벌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은 《Crimes Act》를 개정해 스토킹 및 괴롭힘 행위를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손번 자문위원은 “새 법률은 특히 교제 관계에서 추적이나 감시 행위를 명확히 ‘스토킹’으로 규정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피해자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데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