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두고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도 희생자를 기억하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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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남반구의 공원에 모인 한인들은 2014년 4월 16일의 비극을 되새기며, 기억이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행사는 2026년 4월 11일 오후 3시 오클랜드 밀퍼드 실번파크 내 세월호 기억벤치 주변에서 열렸다. ‘더 좋은 세상 뉴질랜드 한인모임’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아이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이라는 취지로 마련됐다.
행사는 신동윤 한인 동포의 사회로 시작됐다.
대부분 수학 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타고 있었던 세월호 탑승자는 476명이었고, 생존자는 172명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는 사망자 299명과 미수습자 5명을 합해 30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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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레베카 씨는 세월호 기억벤치에서 희생자 이름을 부른 일도 올해로 7년째라고 말했다. 그는 추모 묵념에 앞서 희생자 304명이라는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하는 이들을 둔 소중한 생명이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희생자를 잃고도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의 시간을 생각하고,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할지, 또 그 기억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품고 살아갈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추모했고, 일부는 끝내 눈물을 삼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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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인 정다미씨는 도종환 시인의 '화인'을 낭송했다. "..중략...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였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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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신동윤씨는 고작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뿐이지만, 계속 그 이름들을 불러주고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반드시 진실! 끝까지 함께! 생명 존중! 안전 사회! 아이들을 지켜내자!"는 구호를 외쳤고, 참석자들은 이에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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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는 한국 제주도 타운홀에서 열린 대통령 간담회에서 나온 김동수 씨 가족의 발언을 오디오로 들려주며 그 사연을 소개했다. 김동수 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침몰하는 배에서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은 채 구조에 뛰어들어 인대가 끊어질 정도로 사람들을 구했지만, 끝내 구조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죄책감과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지금도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자는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중요하듯, 구조 현장에 나섰다가 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지원하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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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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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석한 한 한인은 지난해 함께 왔던 가족이 올해는 마음이 너무 무거워 참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
또 다른 한인은 2014년 당시 처음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배가 연안을 항해하는 큰 배이고, 배가 침몰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모두가 구조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탑승자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의 '상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구조된 사람보다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상식이 붕괴'되는 상황이었다며, 그 때 받게 되는 충격과 의문점은 그것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풀리지 않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혹자들이 "이제 그만 해라. 오래 했다. 충분하다"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이 의문과 그리고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은 어떤 식으로든 해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이 추모제가 단순히 슬픔에서 벗어나서 무언가 그 사람들을 기릴 수 있고, 모두 행복해질 수 있고 동일한 큰 참사가 재발되지 않을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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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모식은 단순한 해외 동포사회의 애도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구조 실패의 원인, 책임 규명의 한계, 되풀이되는 안전 약속의 공허함을 다시 묻는 자리였다. 참사 이후 12년이 지났지만, 기억은 애도의 형식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도 행사 전반에 깔렸다. 제도 개선과 책임 행정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공적 기억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오클랜드 실번파크의 세월호 기억벤치는 그런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한국을 떠나 살아가는 이들이 현지 공간에 세월호를 새기고,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모여 희생자를 기억하는 일은 사적인 슬픔을 공적인 책임으로 확장하는 실천으로 읽힌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기억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추모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최 측은 올해 행사 안내에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거듭 강조했다. “바람이 불면 그날 바다처럼 춥다”는 문구도 덧붙였다. 짧은 문장이지만 참사의 감각을 현재로 불러내는 표현이었다. 기억은 단순히 사실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날의 공기와 기다림, 무력감과 구조되지 못한 시간을 함께 떠안는 일까지 포함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과제다. 재난은 과거의 사건으로만 남겨질 때 가장 빨리 잊힌다. 반대로 이름을 부르고 날짜를 확인하며 현장에 다시 모일 때, 사회는 안전을 정치와 행정의 핵심 의제로 되돌릴 수 있다. 해외에서 열린 추모식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경 밖에서도 기억을 놓지 않는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제도와 권력이 무뎌져선 안 된다는 뜻이다.
세월호 12주기를 맞은 2026년, 뉴질랜드의 작은 공원에 선 이들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만 모인 것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가 정말 달라졌는지,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묻기 위해 한자리에 섰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기억식은 해마다 이어져도 참사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