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사용하는 직원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과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진행된 조사들은 공통적으로 “AI는 이미 일터에 깊이 들어왔지만, 신뢰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뉴질랜드는 오랜 기간 생산성 정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 10년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0.5%에 그쳐 OECD 평균보다 낮고, 미국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 상위 그룹과의 생산성 차이도 오히려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AI는 ‘한 세대에 한 번 등장하는 생산성 혁신 도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직원들은 AI를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 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AI가 오히려 해를 끼칠 것이라고 답했고, 대부분이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뉴질랜드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지식근로자의 상당수가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하거나 장려하는 기업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즉, 기술 도입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규정과 교육, 신뢰 구축은 뒤처져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 이른바 ‘AI 패러독스’다. AI 덕분에 업무 효율은 분명히 높아졌지만, 동시에 직원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과거에는 업무량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면, 이제는 “내 일자리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더 큰 부담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러한 불안은 더욱 뚜렷하다. Gen Z는 AI 활용 능력이 가장 뛰어난 세대이지만, 동시에 AI로 인해 자신의 미래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가장 강하게 느끼는 집단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처럼 이미 숙련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재 유출’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불안은 더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정적인 커리어 전망을 찾기 위해 더 큰 시장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HR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과 인사 전략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과제로 바뀌고 있다. 특히 직원들에게 “AI와 함께 일한다”는 추상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이 변화하고 어떤 역량이 필요하며, 미래의 커리어 경로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AI의 활용 범위가 채용, 성과 평가, 급여 결정 등 인사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법적·윤리적 문제도 함께 떠오르고 있다. 뉴질랜드의 고용관계법은 고용주와 직원 간의 ‘선의’를 기반으로 투명한 의사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AI가 이러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과정과 기준 역시 직원들에게 설명되고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많은 직원들이 AI를 ‘도구’로는 받아들이지만, ‘관리자’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자동으로 내리는 결정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그 결정 과정에 대한 설명과 이의 제기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는 향후 규제 환경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AI를 도입하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환경에서 운영하느냐는 점이다. 직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AI를 사용하고, 충분한 교육과 투명한 구조를 갖추며, 미래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조직만이 진정한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경제가 직면한 생산성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AI는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전제 조건은 분명하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신뢰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Source: H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