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의 시공간을 넘어 한국 전통의 미를 현대에 소환하는 예술, 민화. 민화는 조선 시대 서민들의 삶과 염원이 담긴 그림으로, 자유분방한 표현과 다채로운 색상, 상징적인 의미로 가득하다. 복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실용적인 목적부터 해학적이고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민화는 그 자체로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 아름다운 그림이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이곳에서 민화 전시를 열고 활발하게 민화 클래스를 운영하며, 민화를 통해 한국의 혼과 뉴질랜드의 감성이 만나는 뜻깊은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는 정 지연 작가를 만나 보았다.
뉴질랜드에서 민화작가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마음으로 와닿았던 순간들이다. 나에게 민화는 바로 그런 존재이며, 민화 활동은 뉴질랜드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인으로 인정받고 다른 문화로 다가가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다. 특히 전시장에서 현지인들이 민화를 있는 그대로 한국의 미로 인정하고, 한국만의 문화를 높이 평가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이런 점이 나를 더욱 힘내서 활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민화전시로 현지인들과 소통
뉴질랜드에서 민화 전시는 지난 2021년 1월 갤러리(Ogle, lake house arts center)에서 학생들 작품을 선보이며 시작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민화를 배우는 학생들의 소박하고 정겨운 작품들이 전시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2년에 한 번씩 민화 교실 학생들의 작품이 꾸준히 전시되었다. 특히 2022년 글렌필드 쇼핑센터(Glenfield Mall)에서 진행된 <화성능행반차도> 퍼블릭 전시는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의 호응과 응원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 꼽힌다. 이 전시에는 총 35명의 학생들이 부분적으로 참여했다. 그 외에도 특별한 전시들이 이어졌다. 한국 단청과 마오리 카빙(carving)의 협업 전시, 평양감사 향연도 전시, 책가도 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민화는 아니지만 모시 조각보 전시와 개인전도 진행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러한 한국 문화 전시는 현지인들에게서 많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한국의 멋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전통에서 현대로, 살아 숨 쉬는 민화의 가치
민화는 19세기 조선 후기, 일반 민중들에 의해 활발히 그려진 가장 한국적이면서 실용적이고 민속적인 그림이다. 초기에는 중국 전통 예술이나 양반, 전문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는 형태였으나, 점차 서민들의 삶과 이야기를 해학과 풍자, 유머를 담아 자유롭게 표현하는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다. 대부분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고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그렸기에, 민화는 형식과 기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구도, 생생한 색채, 대담한 상징을 통해 마치 현대의 모던 아트를 연상시킨다. 특히 민화는 복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기 위한 기복적인 목적이 강했다. 권위나 악을 물리친다는 호랑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석류와 포도, 장수를 뜻하는 십장생과 복숭아 등 다양한 상징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오늘날 민화는 단순한 민속화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한국 고유의 정서와 미감을 담고 있는 민화는 현대 작가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며,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창의적인 예술 장르로 재해석되고 있다. 민화는 이제 미술관, 전시회,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디자인, 공예, 패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며 현대인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오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피어난 민화 사랑
중국 대학에서 전통 회화를 배우며 오래된 그림들의 매력에 빠져들었지만, 당시엔 그 그림들이 어떻게 활용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뉴질랜드로 건너와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현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전통 회화의 진정한 매력과 한국인으로서의 본능적인 동양적 감각을 찾게 되었다. 졸업 작품으로 한지와 동양화 물감, 그리고 모시를 활용한 작업을 하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더욱 커졌다. 특히 민화에 대한 마음이 깊어져, 2019년 말 처음으로 민화 교실을 열게 되었다. 단 두 명의 학생으로 시작했지만, 그 열정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화 독학가능, 체계적인 준비 필요
민화를 집에서 혼자 배우고 싶다면, 체계적인 준비와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 민화를 집에서 시작하려면 먼저 민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관련 서적을 구입해 읽는 것이 좋다. 민화의 역사, 상징, 다양한 표현 기법 등을 미리 학습하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깊이 있게 다가올 것이다. 민화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염원이 담긴 예술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민화를 처음부터 창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초보자에게는 전통 민화 도안을 모사(따라 그리기)하면서 배우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시중에는 단계별 난이도로 구성된 민화 도안집이 많이 나와 있으므로, 그중에서 비교적 쉬운 도안부터 차근차근 따라 그리면 민화의 기본 기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도안 위에 한지를 덧대어 본을 뜨고, 그 위에 먹으로 선을 그린 후, 채색을 더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민화의 기본 구조와 색감, 그리고 상징성에 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길러질 것이다. 꾸준한 연습이 민화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혼자 도전하기 힘들다면 민화 클래스에서 함께 하는 것을 추천한다. 민화교실(Lake house arts center)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30분과 토요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글, 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