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라에 바치는 해병의 경례! 문 용선

형제의 나라에 바치는 해병의 경례! 문 용선

0 개 171 김수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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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새벽 공기는 한국의 현충일만큼이나 경건하고 묵직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던 호주·뉴질랜드 연합군(ANZAC)을 추모하는 ‘안작데이’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오클랜드 박물관 앞 광장에는 현역 군인들 못지않은 절도와 패기로 무장한 이들이 등장해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절도 있는 의장대를 앞세워 행진하는 이들, 바로 뉴질랜드 해병전우회 회원들이다. 1995년 초반, 20여 명의 전우가 모여 첫발을 뗀 뉴질랜드 해병전우회는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전우회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선배 해병들의 헌신과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끈끈한 결속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결속의 힘은 매년 안작데이 퍼레이드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난다. 해병전우회,  문 용선 회장을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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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명찰에 담긴 보은의 마음, 안작의 정신

매년 4월 25일, 안작데이(ANZAC Day)의 새벽 4시 30분. 세상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정복을 갖춰 입는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찍 일어나는 고단한 행사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숭고한 영혼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엄숙한 ‘사명’의 시간이다. 오클랜드 박물관 앞 광장에 모여 빳빳하게 다려진 제복을 입고 정렬해 있는 전우들을 마주하면, 콧날이 시큰해질 만큼 가슴이 벅차오른다. 백발이 성성한 선배 해병부터 늠름한 후배들까지, 붉은 명찰을 가슴에 단 우리의 모습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기개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해병이지만, 동시에 이 땅 뉴질랜드가 보여준 희생에 대해 최고의 존경을 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이방인이기도 하다.



새벽을 깨우는 붉은 명찰의 행진

해병 전우회가  매년 이 행진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4,000여 명의 젊은이를 파병해 우리 조국을 지켜주었던 ‘형제의 나라’ 뉴질랜드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안작의 정신과 해병의 기개가 만나는 그 찰나, 나는 국적을 넘어 하나의 ‘군인 정신’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특히 어둠 속에서 유모차를 끌고,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모여드는 뉴질랜드 가족들을 볼 때면 남다른 전율이 흐른다. 조상들의 희생을 가르치기 위해 새벽잠을 설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우리 해병들의 행진이 현지인들에게는 신선한 감동을, 우리 한인 후세들에게는 뿌리와 정체성을 되새기는 살아있는 교육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이곳 시민들이 우리를 보고 ‘Koreans are here’라고 말해줄 때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깊은 감사를 느낀다. 1995년, 20여 명의 전우가 모여 시작된 뉴질랜드 해병전우회가 어느덧 서른 살 청년이 되었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우리가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그 단순하고도 강력한 믿음 덕분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붉은 명찰의 자부심으로 뉴질랜드와 한인 사회를 잇는 든든한 가교가 되고 싶다. 다시는 내 고국 땅에 전쟁의 비극이 없기를 기도하며, 우리는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변함없이 이 새벽을 깨울 것이다.



뉴질랜드 해병전우회, 30주년의 원동력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낯선 타국 땅에서 뉴질랜드 해병전우회를 지켜온 가장 큰 원동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해병대 정신’이다. 우리는 나이와 기수를 불문하고 오직 ‘해병’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쳤다. 오늘의 전우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하며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선배님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타지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우회의 가장 큰 역할은 ‘연결’이었다. 이민 생활의 거친 파도를 넘으며 해병 출신들이 서로 의지해 정체성을 지켜냈고, 그 단단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한인 사회와 뉴질랜드 사회를 잇는 다리가 되고자 노력했다. 해병은 계급과 나이를 떠나 ‘전우’라는 개념이 유독 강하다. 서로를 친형제처럼 아끼고, 전우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 벗고 나서는 특유의 문화는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우리의 활동은 비단 안작데이 퍼레이드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역 사회 청소부터 각종 봉사활동, 한인 커뮤니티의 크고 작은 행사 지원까지, 해병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우리가 흘리는 땀방울이 한인 사회를 넘어 뉴질랜드 현지 사회에도 기여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안작데이 퍼레이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뉴질랜드 사회와 한인 커뮤니티를 잇는 든든한 가교 역할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해병전우회가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자세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이 땅 뉴질랜드에서도 영원한 전우로 남을 것이다.



차세대와 함께 성장하는 전우회

현재 전우회는 젊은 해병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더욱 열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후배들이 전우회를 부담이 아닌 ‘자부심’의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나의 임기 내 목표는 전우회를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 한인 사회와 뉴질랜드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파하는 단체로 성장시키고, 특히 차세대와 긴밀히 연결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해병이라는 이름은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강력한 유산인 만큼,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도 후배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며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전우회는 언제나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김수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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