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실직한 아시안 이민자들이 ‘게으르다’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정부의 실업급여 등 지원 신청을 꺼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뉴질랜드의 2025년 1분기 실업률은 5.1%로 집계됐지만, 아시안 이민자들은 고용 시장이 악화되는 가운데 실직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수치심’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24년 12월 민족사회부(Ministry for Ethnic Communities)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뉴질랜드 내 실직자 중 실업급여(Jobseeker Support)를 받은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아시안의 경우 5명 중 1명(20%)만이 지원을 신청했다.
한 인도계 여성은 IT회사에서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건강 악화로 3월에 자진 퇴사했으나, 실직 사실을 가족과 지인에게 숨겼다. “인도에서는 실직에 대해 열등감을 느낍니다. 큰 나라에 이민 와서도 직업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냐는 시선을 받죠.” 그녀는 “실직 사실을 알리면 ‘게으르다’, ‘정부에 의존한다’는 즉각적인 판단을 받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남편 역시 올해 초 실직 후 실업급여를 신청했지만, “우리 커뮤니티 내에서 실직 사실을 밝히면 주변의 태도가 달라지고, 멀리하거나 무시당할까봐 두렵다”고 털어놨다. 부부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고학력자임에도, 실직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들은 “실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노력하지 않아 실직했다’는 편견을 버리고, 서로 돕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웰빙 자선단체(Eva Chen, Wellbeing Charitable Trust) 공동설립자 에바 첸은 “아시안 이민자들은 저축 습관이 강해, 돈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실업급여 신청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디어가 실업급여 수급자를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묘사하는 것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첸은 “실업급여는 대부분 임시적 지원일 뿐, 일자리를 찾는 대다수는 곧 시스템에서 벗어난다. 타인의 사정을 모른 채 비난하지 말고, 공감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elong Aotearoa의 앤젤라 윌튼 대표는 “이민자들은 본국에 사회안전망이 없었던 경우가 많아, 복지제도에 대한 정보 부족과 언어 장벽 등으로 지원 신청 자체를 어려워한다”고 밝혔다. “Work and Income(복지국) 방문 자체가 부담스럽거나, 영어가 불편해 상담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Bhartiya Samaj Charitable Trust의 지트 서치데브 대표는 “복지 지원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실직자를 위한 워크숍, 상담 등 종합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족사회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아시안·중동·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계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인구 증가와 코로나19 영향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사회개발부(MSD) 그레이엄 올프레스 국장은 “실업급여는 단순 현금 지원이 아니라, 구직활동 지원, 면접 준비, 고용 연계, 전환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실직자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누구나 지원을 문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실업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며, 복지제도 이용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라며,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버리고 더 큰 공감과 포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ource: R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