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공식품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아이들의 식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편식을 단순히 아이나 부모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식품 산업과 사회 환경의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에게 다른 요거트를 권했는데 특정 캐릭터가 그려진 요거트만 찾으며 떼를 쓰는 경우가 있다. 또 누텔라 샌드위치가 아니면 도시락을 거의 먹지 않거나, 소시지·치킨너겟·피자가 식탁에 없으면 저녁 식사가 전쟁터가 되는 가정도 적지 않다.
이처럼 흔히 '편식(fussy eating)' 또는 '까다로운 식습관'으로 불리는 현상은 많은 부모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지금까지는 주로 아이의 성향이나 부모의 양육 방식과 관련된 문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아이들의 편식이 단순히 가정 내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아이들의 식습관이 상업적 이해관계와 식품 산업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설탕과 소금, 각종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대량 생산 식품들이 어린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지도록 설계되고 있으며, 여기에 적극적인 광고와 마케팅이 결합돼 아이들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린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먹이고 싶은 음식과 아이가 실제로 먹으려는 음식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편식이란 무엇인가
편식은 특정 음식에 대한 강한 선호를 의미한다.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지 않으려 하거나, 먹는 음식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거나, 특정 맛·질감·모양의 음식을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에 따르면 2세에서 6세 사이 어린이의 약 10~30%가 편식 성향을 보이며, 일반적으로 3세 무렵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연구진은 이러한 편식의 뿌리가 인간의 오랜 생존 본능에 있다고 설명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안전하고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음식을 선택하며 살아왔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단맛을 선호하고 쓴맛은 기피하는 경향이 형성됐다.
문제는 현대 식품 기업들이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맛과 질감으로 식품을 개발하고, 부모들이 건강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발견한 것
연구진은 1세부터 18세까지 자녀를 둔 부모 34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아이들의 식습관과 부모들의 경험을 조사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부모들은 식품 기업들이 아이들의 입맛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부모들이 이에 맞서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기존 연구들이 주로 유아기 편식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번 연구에서는 초등학교 시기 이후에도 편식이 지속되거나 심화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에 더욱 많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1. 부모를 압박하는 '조르기 마케팅'
많은 부모들은 건강한 식습관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식품 기업들이 어린이를 직접 겨냥해 광고를 펼치는 환경 속에서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세 자녀의 어머니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과 매장 진열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두 살짜리 아이가 매번 블루이(Bluey)를 외쳐요. 아이를 슈퍼마켓에 데려가고 싶지 않을 정도예요. 막대사탕이 아이 눈높이에 놓여 있는데 당연히 떼를 쓰게 되죠."
연구진은 이러한 '조르기(pester power)' 현상이 식품 기업들이 매출 증대를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2. 혼란을 주는 식품 정보
부모들은 오늘날 식품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고, 그중 상당수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세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장지에 건강에 좋다고 적혀 있으니까 당연히 건강식이라고 믿게 되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연구진은 이러한 정보 환경이 부모들이 건강한 식품을 구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3. 부모가 이길 수 없는 사회적 환경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접하는 음식 문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아들은 원래 후무스(hummus)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은 도넛이나 감자칩을 먹죠. 솔직히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에요."
부모들은 건강한 음식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도 걱정하고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텔라 토스트를 도시락에 넣어주면 아이는 먹어요.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넣어주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게 되죠. 반대로 넣어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배고파하고 집에 와서 힘들어해요. 음식 문제를 너무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부모를 탓하기보다 사회적 접근 필요
영양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강요하지 말고, 채소를 몰래 숨겨 넣지 말며, 음식을 보상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한다.
대신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건강한 음식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러한 조언이 현재의 상업적 식품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부모를 비난하거나 부끄럽게 만들기보다,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편식은 단순히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식품을 판매하려는 기업들의 상업적 전략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아이들의 편식 문제는 가정의 식탁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넘어선 사회적 과제다. 연구진은 어린이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정부와 식품업계 모두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는 호주 시드니대학교 건강사회센터의 줄리엣 베넷(Juliet Bennett) 박사후연구원, 알렉스 브룸(Alex Broom) 교수, 데이비드 라우벤하이머(David Raubenheimer) 교수가 수행했다.
Source: R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