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의 뉴질랜드는 가장 뉴질랜드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
해는 길고, 하늘은 높고, 바다는 깊은 파랑으로 열린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소란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자연 속으로 흩어진다. 해변에는 파도가 부서지고, 산악 지역에는 텐트와 배낭을 멘 사람들이 늘어난다. 1월은 이 나라의 여름이 절정에 이르는 달이자, 자연이 가장 큰 목소리로 말을 거는 시간이다.
교민들에게 1월은 조금 특별하다. 한국에서의 1월이 늘 새해의 각오와 추위, 다시 시작되는 일상의 무게를 떠올리게 했다면, 이곳의 1월은 정반대다. 휴가와 햇빛, 맨발과 바람의 계절이다. 아이들은 학교 방학 속에서 자라고, 어른들은 잠시 일의 속도를 늦춘다. 한 해를 시작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이곳에서는 새해가 결심보다 호흡으로 시작된다.
마오리 전설 속의 인물 파이케아(Paikea)는 이런 1월과 잘 어울린다. 파이케아는 위험과 배신 속에서 바다로 내몰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고래의 등에 몸을 싣고 끝없는 바다를 건너 이 땅, 아오테아로아에 도착한다. 파이케아의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간 사람의 이야기이며, 미지의 땅을 향해 몸을 맡긴 용기의 기록이다.
1월의 뉴질랜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전설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평선은 여전히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더 멀리 나아가도 괜찮다”고, “이 땅은 도착한 사람을 품어준다”고. 어쩌면 이 나라에 정착한 많은 교민들의 삶도 파이케아의 여정과 닮아 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바다를 건너왔고, 확실한 보장 없이 새로운 땅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지금, 이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다.
1월의 자연은 그래서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해변에서 부는 바람, 산길에서 마주치는 햇빛, 캠핑장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모두 “잘 왔다”는 환영의 언어처럼 들린다. 이곳에서 맞는 1월은 성취를 점검하는 달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다. 나는 어떤 바다를 건너왔는지,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붙잡았는지.
파이케아가 고래의 등에 몸을 맡겼던 순간처럼, 1월은 우리에게도 잠시 힘을 빼고 자연에 자신을 맡겨보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답을 지금 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땅의 여름은 조급함보다 존재 자체를 허락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교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늘 두 계절 사이에 있다. 기억 속의 겨울과 눈앞의 여름 사이에서, 우리는 매년 1월을 다시 배운다. 이곳의 새해는 싸늘한 각오가 아니라, 따뜻한 햇빛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은 늘 용기와 함께 온다는 것을.
1월의 뉴질랜드는 말없이 이렇게 전한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의 도착이다.”
고래의 등에 올라탄 파이케아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이 여름의 한가운데에 도착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