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 출신으로 1990~1997년부터 총리 재직
마오리와 파케하 화합에 큰 족적 남겨
현행 혼합형 비례대표제(MMP) 선거 제도 도입
제35대 뉴질랜드 총리를 역임하며 마오리와의 화해를 이끌었던 짐 볼저(Jim Bolger) 전 총리가 지난 10월 15일에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신부전으로 투병 중이던 그는 9명의 자녀와 18명의 손주, 그리고 부인 조안(Joan)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영면에 들었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그의 서거 소식에 뉴질랜드 정계와 사회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아일랜드계 농부 출신, 가정 환경으로 15세에 학교 중퇴>
본명이 제임스 브렌던 짐 볼저(James Brendan Jim Bolger)인 그는 1935년 5월,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타라나키의 오푸나케(Ōpunak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15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 농장 일을 도우며 생계를 이어갔으며 1963년에 자신의 농장을 만들었다.
청년 시절부터 근면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농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훗날 그의 정치 경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정치 입문은 1972년에 국민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그해에 곧바로 총선에 뛰어들어 킹 컨츄리(King Country)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후 1998년 정계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9선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구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로버트 멀둔(Robert Muldoon) 총리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1975년 수산부 장관을 거쳐 농업부 장관을 맡아 뉴질랜드의 핵심 산업인 농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1986년부터 국민당 대표로 당을 이끌던 그는 1990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1997년까지 제35대 총리직을 수행했는데,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뉴질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마오리와 화합에 앞장,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
그는 특히 오랜 기간 이어진 마오리와 파케하(Pākehā, 유럽계 뉴질랜드인) 간의 갈등 해소와 화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볼저 전 총리는 와이탕이 조약에 대한 마오리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역사적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러한 그의 리더십은 뉴질랜드 사회의 통합과 진정한 다문화주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또한 그는 1991년에 대규모 지출 삭감 및 복지 예산 축소를 단행하는 등 ‘볼저 정부’로 불리는 시기에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노동시장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도 적극 추진했는데 이와 같은 정책은 뉴질랜드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
한편에서는 그가 경제 회복과 구조개혁을 이끌었지만 복지 삭감 등으로 사회적 격차를 키웠다는 비판도 받았는데, 말년에는 성장했던 이익이 높은 곳으로만 갔다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혼합형 비례대표제(Mixed Member Proportional, MMP)’를 도입했고, 1997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주재 대사로 활동했다.
정계를 떠난 후에도 그는 언론과 소통하며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 조언과 멘토 역할을 아끼지 않았다.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애도가 이어졌는데, 많은 이가 그를 뉴질랜드의 미래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이면서 농부 출신으로 겸손하고 소탈한 ‘정말 좋은 친구(really good bloke)’로 기억했다.
크리스토퍼 럭슨 총리는 별세 소식에 “그는 원칙을 지킨 동료였고 정치적 경쟁자에게도 품격을 잃지 않았던 인물”이라면서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