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미국 아마츄어골프선수권대회(당시엔 가장 큰 경기)가 끝난 뒤에 덧붙인 구경 거리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프로 선수와 영국 프로 선수들이 9홀의 뉴포트 골프장에서 실력을 겨룬 데에서 시작됐다. US 아마추어 경기에 32명의 선수가 출전한 것에 비해 제1회 US Open은 10 여명에 달하는 프로 골퍼 만이 참가했다. 경기 방식은 1일 동안에 36 홀을 라운드하는 것이었는데 최초의 오픈 승자는 19세의 영국 이민 프로, 호레이스 로린스 이었다.
1898 년에야 US Open은 US 아마추어 경기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인 경기를 하게 되었고 경기 방식도 36 홀 토너먼트에서 72 홀 토너먼트로 확대 되었다. US Open의 처음 15 년간은 스코틀랜드나 영국 본토 출신의 프로들에 의해 완전히 석권되었지만 그사이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골퍼들이 차츰 경험과 실력을 쌓게 되어 1911년부터는 양상이 달라지게 되었는데, 1911 년 US Open 선수권에서 필라델피아의 캐디 출신 조니 맥도모트가 307, 연장전 80타를 기록하면서 우승 하였고 다음해엔 74, 75, 74, 71 토탈 294라는 당시 보기 드문 놀라운 스코어로 우승을 하였다. 그가 플레이한 버팔로 컨트리 클럽이 파 74 였으므로 그는 파 이하의 스코어를 기록한 최초의 챔피언으로 인정 받고 있다.
1913 년은 캐디 출신의 홍안소년 후라시스 위메트가 영국의 베테랑 해리 바든과 테드 레이를 물리친 미국 골프사의 쾌거를 이룬 한 해였다. 위메트의 승리를 계기로 상류 사회의 사교 게임이던 골프는 대중의 스포츠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오픈에 참가하려는 골퍼의 수도 급증하였고 오픈에 걸린 상금도 급진적으로 증가 되면서 프로들의 인기도 높아 지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거치면서 US Open은 미국에서 가장 비중 있는 선수권 경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골프 스타인 아놀드 파마와 잭 니클라우스는 1960 년대의 오픈 경기를 주름잡았으며 게임내용도 종전에 비해서 월등히 향상되었다. 1962 년도 US 오픈 참가신청자는 2,475명에 달했으며 상금은 10만 달러를 상회하였고 1962년도에 골프의 황제 잭 니클라우스는 프로에 입문한 첫 해에 연장전에서 파머를 물리치고 처음 우승한 뒤로 1967년, 1972년,1980년에도 우승함으로써 이 대회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