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다르나 이름 끝이 같았다.

그들은 삼남의 구석구석에서 태어나 떠돌 대로 떠돌다 남방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미 정해진 운명에 따라 풀밭에서 만났으니 초전지교(草田之交)요, ‘남방사호’다.

그들 넷은 조국이 정의롭지 못할 때 북방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도 남태평양의 풍토병, 심심하다 쓰러지는 질환을 예방하기 위함도 있었으리라.

황호, 자는 달봉, ‘달봉거사’로 잘 알려져 있다.

4,19혁명이 미완으로 이어진 두어 해 무렵, 괴산의 고추밭두렁 근처에서 목놓아 울며 태어났다.
이어질 유신장기집권과 국민교육헌장을 죽을 때까지 외울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갓난아이 때 그이는,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러우나 움켜쥠은 굳세었다.

암수의 교합을 알지 못하는데도 그 때는 생식기가 일어섰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았으니 지금도 노래방에서는 으뜸이다.


달봉거사의 유일한 일락一樂은 주방에서 몸을 부리는 일뿐이다.

그는 내게 일년에 딱 두 번, 추석과 설 명절 외에는 기능(?)을 못한다고 놀려먹었다.

그것도 조상이 돌봐줘야만 가능하다며….

그러나,

음과 양이 합일하려는 필요충분 조건을 상실해버린 그의 몸체는 애석하게도 주방으로 내몰린다.

그 중요한 조건이 무너지면 예민한 부분은 혀끝과 손가락 그리고 코만 남기 때문이다.

그들 세 끝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맛을 내고 감별하는 탁월함에 있어서 이의를 다는 이가 없다. 이번 1박2일 로토로아 원정에서 그 남자의 숨겨진 비밀, 측은한 세 끝의 놀림으로 만들어낸 음식에 애절한 슬픔이 묻어있다 생각하니 내 목구멍이 잘 열려지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타이거우즈가 결승 날 즐겨 입는 붉은 셔츠를 입고 나와 주변을 압도했다.

그러나 18홀 내내 붉은셔츠는 나무 밑에서 유별나게 빛을 내며 돌아다녔다.

‘황한도’를 기리는 날이었다.
 

‘남방사호’ 그들이 은일하며 떠도는 곳들은 ‘신무릉도원’이다. 드라이버로 서너 번 내리깔아야 그린에 당도한들 어찌 나무를 원망하랴. 저 멀리 붉은셔츠가 공 찾으러 돌아다닌다/ 로토로아 ⓒ9000dong    

황호 달봉거사 외에,

산청 지리산 취약지구에서 발정 난 암돼지를 수컷 종돈이 있는 집으로 몰고 다니는 게 취미였던 ‘민보살’과 부산 해운대에서 청춘을 과다 소비하고도 미련이 남아 여지껏 두리번거리는 ‘양호선사’, 그리고 광주 근방에서 생수를 퍼 올려 번 쌈짓돈으로 주변을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경제인 박호’, 그들의 흉도 끝이 없이 이어질 것이니…………….        

“남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야 보살 소리 들을 자격이 있다.”한다. 풀밭에 나서면 서로에게 ‘한도’라는 치명상을 입히면서 행복을 주고받는 이들이야말로 진정 보살들이 아닐까.

ⓒ일러스트/준
 

이 사람,

지나간 청춘의 사랑이 애닯다 하여, 늘 술에 취한 뽕 맞은 자태로 그들과 합류한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 한량’이다. 핸디16으로 간이 술기운에 오작동하는 날엔 “50살이 넘으면 로우 싱글이든 뭐든 모두가 맞짱이다”고 뎀벼든다. 의아하기론 프랑스 에비앙에서 ‘고보갱’이 돌아오면 도전장을 내밀텐데 그날 구루마끄는 캐디는 ‘황달붕’으로 정해 뒀으니 나랑은 함께 라운딩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암튼, 달러를 엄청 흘리던가 엄청 벌어들이는 운세를 짊어진 사람이다. 다섯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롭고 궁금할 따름이다.

로토로아에서 피를 흘린 황호,양호 두 분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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