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양탄자를 즈려밟듯 잘 다듬어 놓은 풀밭을 거닐며 이리저리 십 오리를 돌아다니는 놀이는 이 세상에서 이것밖에는 없으리라. 몸과 쇠붙이, 메추리 알보다 조금 크고 딱딱한 고무공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시켜야 하는 고난도의 춤사위긴 하지만, 자신의 신체 리듬과 인공미를 가미한 자연을 탐험하러 떠나는 기분이야말로, 보통핵교시절 읍내 쌀전에다 날계란을 팔아 소풍을 떠나는 날에 견줄 바 아니다.

그 정원에 초대된 주인공들은 앞서 예찬한 조건들 속에서 자책과 희열을 주고받으며, 각자 매력적이고 거만을 떠는 열여덟 왕국의 성전 깃발게양대 구멍에다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춰야만 떠날 수 있으니, 신사도의 흠결까지 따진다면 결코 호락호락한 풀밭산책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고무공과 부딪친 춤사위 수를 꼼꼼히 눌러 적은 종이쪼가리에 산수까지 푼 다음, 간단하고 빠른 손놀림의 끄적거림으로 한나절 동안의 모든 여정이 끝을 맺는다.

그리고 뼛속까지 눌러 담은 녹색에너지를 짊어지고 집으로들 돌아가거나 아니면 허기를 채우러 떠나니, 비록 버디를 얼마나 잡았냐고 반기는 이는 없어도 이 얼마나 선택 받은 축복이던가. 


 

 
'굿바이 우환덩어리!’를 선언하는 민보살, 양호선사, 황달봉, 쓰라린 한도의 추억이 있는 ‘이한량’만이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한쪽 손이 영 마땅찮아 보인다.   
 

약간의 긴장감과 쪼는 맛을 즐기고, 걸판진 후식을 위해 홀마다 내기를 걸어 판을 키운 ‘풀밭혈투’라는 종목을 채택한 이들은 녹색 양탄자는 세멘바닥으로 돌변하고, 십 오리는 이 십리로 늘어나며 해저드와 오비말뚝은 공을 끌어 댕기려 눈을 부라리고 쳐다보는 것만 같은 환영에 시달려야 만 한다.

우정도 주변을 살필 여유도 잊어가며 긴장하고 쪼여서 얻은 수확치고는 시간대비 남는 것이라곤 ‘백해무익’이라는 결론에 이르러서야 ‘굿바이’를 외치니 그나마 다행이다.

풀밭혈투! 중상을 입고 입히면서 행복을 주고받는 웃음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민보살’의 영혼이 느닷없이 맑아지더니 꽃들의 부름을 알아차렸는지 그들 앞에 모아 세웠다. ‘이한량’만이 여지껏 술이 들깬 상태로 골프채 대신 담배채를 들고 삐딱하게 서있으니 영상이 말이 아니다. 그나저나 생명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 신의 피조물들이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지 살필 기회를 얻게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생이 모두가 백 년을 산다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근심걱정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산다”하지 않았던가.  

마지막 풀밭혈투를 떠나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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