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구조와 준법, 무엇이 우선일까?

인명구조와 준법, 무엇이 우선일까?

0 개 4,326 서현
559 1.jpg

지난 10월 16일(금) 카이코우라 지방법원에서는 한 헬리콥터 조종사의 항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정 안팎에는 그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TV와 신문에서도 재판 진행과정을 폭넓게 보도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법정에 선 조종사를 지지하는 온라인 서명까지 진행 중인 이번 사건은 법과 현실 사이에서 그야말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사건 중 하나로 비쳐지면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사냥 중 생사의 기로에 처한 커플>
 
사건은 작년 4월 5일 남섬 동해안에 자리 잡은 카이코우라(Kaikoura) 북쪽 인근의 빽빽한 삼림 지대인 푸히 푸히(Puhi Puhi) 계곡에서 한 20대 사냥꾼이 추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크라이스트처치 출신의 스코트 리(Scott Lee, 28)는 파트너인 리사 매켄지(Lisa McKenzie)와 함께 사냥에 나섰던 길이었는데 그만 급경사의 절벽 끝으로 추락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는 15m 가량 추락했지만 문제는 깊이 50m나 되는 절벽의 한쪽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로 더 이상의 추락을 막으려 파트너의 옷으로 간신히 나무에 몸을 묶은 채 버티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추락 과정에서 대퇴부가 골절되는 등 부상 상태도 아주 심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구조가 요구되는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더 이상 추락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그를 구해낸 것은 당시 카이코우라에서 출동한 의사가 포함된 수색구조팀(LandSAR).
 
극히 안 좋았던 기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헬기 편으로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어려운 작업 끝에 절벽에서 그를 끌어낸 후 들것으로 6시간이나 운반해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게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날아와 준 헬리콥터 조종사와 수색구조팀의 노력으로 무사히 구조돼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를 모면했던 스코트 리에게 말도 안 되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얼마 뒤였다.

559 2.jpg

<인명이 먼저인가 법규 준수가 먼저인가?>
 
소식은 자신을 구하러 출동했던 헬리콥터 조종사가 기소돼 자칫하면 징역형까지 살 수도 있는 재판을 받게 됐다는 사실.
 
이유는 그가 당시 적법한 ‘건강증명서(medical certificate)’가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출동했던 카이코우라 헬리콥터사의 데이브 암스트롱(Dave Armstrong, 63)은 2012년에 ‘가벼운 뇌졸중(mini stroke)’으로 추가 검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구조비행과 관련된 건강증명서가 유보된 상태였다.
 
재판정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그는 2012년 7월에 이 같은 사실이 발견돼 비행기 조종을 일시 정지 당한 상태에서 리를 구하기 위해 출동했었으며, 이후 그 해 6월에 비행을 허용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뜻밖의 소식을 들은 리는 카이코우라까지 단숨에 달려가 암스트롱을 만났으며 재판정과 민간항공국(Civil Aviation Authority, CAA)에 그가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간곡한 내용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다.
 
암스트롱은 내 목숨을 구한 영웅이며 나와 파트너는 그에게 목숨의 빚을 지고 있다고 밝힌 그는, 당시 첫 번째 접근했던 헬기가 구조를 포기하고 돌아갔을 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암스트롱의 헬리콥터가 자신을 살렸다고 전했다.
 
그는 CAA는 생명의 가치를 얼마로 보는지 모르겠지만 암스트롱은 결코 유죄가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암스트롱은 이번 구조 외에도 여러 차례 구조 수색작전에 참여한 베테랑 조종사이다.
 
<위험 무릅쓴 비행 대가가 피고인석>
 
암스트롱이 구조에 나서던 당일은 날씨도 극히 안 좋았으며 당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먼저 출동했던 웨스트팩 구조 헬리콥터는 두터운 구름 속에서 조난자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한데다가 연료가 떨어져 귀환한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출동 요청을 받게 된 그는 4인승 로빈슨 R44 헬리콥터에 의사와 구조대원을 각각 태우고 감독자로서 조종사 옆 자리에 앉아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경험이 적은 조종사가 제대로 조종을 하지 못하자 직접 조종간을 잡았다.
 
그가 조종간을 잡은 데에는 인명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지만 함께 출동했던 의사이자 카이코우라 수색구조대의 일원인 마이크 모리시(Mike Morrissey)의 요청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공교롭게도 모리시는 그의 뇌졸중 증상을 처음 발견했던 의사였다.
 
모리시는 암스트롱이 조난지역 인근에서의 강수량 측정을 위해 몇 년 동안 매달 주기적으로 그 지역으로 비행해왔으며 자신들을 정확한 지역에 내려주었다고 말해 당시 상황에서는 그가 비행에 나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결국 몇 차례 비행을 통해 그가 내려 놓은 8명의 구조대원들이 조난자를 살렸지만 그의 행위는 CAA에 알려져 나중에 ‘운항기록부(flight-logs)’가 CAA를 대신한 경찰에 압수되고 항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까지 이르렀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의사인 모리시는 조난자를 그대로 하룻밤 동안 현장에 방치할 경우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며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구조에 동참했던 경찰관들도 기상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으며 암스트롱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고 전했다.
 
<온라인 청원에 나선 지지자들>
 
관련 항공법에 따르면 조종사는 인명이 경각에 달린 비상시에는 법을 위반할 수도 있지만 조종사가 건강증명서 자격이 없는 것을 포함해 합법적 비행자격이 없거나 비행기 자체가 비행에 적합한 자격(airworthy)이 부여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각각의 혐의에 대해 2년의 징역형이나 1만 달러까지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데 현재 이 법은 일부 조항에 대해 검토(review)가 진행 중이다.
 
또한 암스트롱을 처벌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An online Change.org petition)에는 10월 20일 현재 4,600명 이상이 서명한 상태이며, 현역 조종사를 포함한 비행 관계자들 다수도 모임을 만들어 캠페인을 벌이면서, CAA의 이번 처사는 책상에서 서류만 보는 관리들의 지극히 관료적 행동이라며 비난했다.
 
16일 열린 재판에서 암스트롱의 변호사는 주어진 3건의 법률 위반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면서, 그가 처벌을 받더라도 ‘유죄가 아닌(without conviction)’ 판결이 내려지길 요청한 반면 CAA 측에서는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암스트롱은 자신에게 향한 많은 사람들의 지지에 감사하다고 전했는데 그는 회사 대표이자 수석 조종사로 1990년에 카이코우라에서 헬기 한 대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고래 관람 비행을 시작했으며 현재 4대의 헬리콥터를 운용 중이다.
 
반면 비난 여론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CAA 측은 재판 중인 사항이라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는데 이번 사건에 대한 선고는 오는 12월에 크라이스트처치 지방법원에서 내려질 예정이다. 

남섬지국장 서 현

공화국 전환, 이번에도 물 건너 가나

댓글 0 | 조회 3,347 | 2022.10.11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이후 기존 영국 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공화국으로의 전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국왕을 국가 수반으로 하고 있는 영국 연방… 더보기

일상 되찾았다지만... 허무한 한 청년의 죽음

댓글 0 | 조회 5,868 | 2022.09.28
9월 12일(월) 자정부터 뉴질랜드에서 ‘코비드19 경보 신호등 시스템(traffic light system)’이 폐지돼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팬데믹의 각종… 더보기

점점 살기 나빠지는 오클랜드

댓글 0 | 조회 10,184 | 2022.09.28
날로 늘어나는 강력 범죄, 매일 도로 작업이 벌어지지만 나아지지 않는 교통 상황, 끝없는 공사로 문닫는 상점들과 활기 잃은 CBD.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 더보기

NZ “기후변화 속 도로망 관리에 비상”

댓글 0 | 조회 2,406 | 2022.09.14
뉴질랜드 전국은 9만 4000여 km에 달하는 도로로 연결됐으며 그중 국도 길이는 10%가 조금 넘고 나머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지방도로이다.최근 홍수를… 더보기

복지국가 뉴질랜드의 빈곤에 관한 부끄러운 민낯

댓글 0 | 조회 8,570 | 2022.09.13
뉴질랜드는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복지 선진국에서 국민은 적어도 먹고 주거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야 하지만 뉴질랜드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더보기

이민자가 살기 힘든 나라

댓글 0 | 조회 11,348 | 2022.08.24
뉴질랜드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민 대상국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하지만 최근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뉴질랜드가 ‘외국인이 살기 나쁜 나라’ 2위에 올랐… 더보기

물린 게 잘못, 아니면 개 주인의 책임?

댓글 0 | 조회 3,824 | 2022.08.23
뉴질랜드인은 총인구와 맞먹는 460만 마리의 각종 반려동물을 키우며 그중 개체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물고기를 제외하면 고양이가 110만 마리로 으뜸인 가운데 20… 더보기

물가 비상! 가정도 국가도 전전긍긍

댓글 0 | 조회 6,022 | 2022.08.10
물가상승률이 32년 만에 최고로 치솟아 국민 살림살이가 한층 빡빡해진 것은 물론 기업이나 단체, 나아가 지방정부를 포함한 국가기관에도 한마디로 비상이 걸렸다.현재… 더보기

마비 직전의 의료 서비스

댓글 0 | 조회 4,470 | 2022.08.09
뉴질랜드가 심각한 의료 위기를 겪고 있다. 지금 의료 서비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겨울철 질환, 의료 인력 부족 등으로 극심한 압박을 받고 … 더보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벅찬 내 집 마련의 현실

댓글 0 | 조회 8,571 | 2022.07.27
뉴질랜드에서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엄 세대 간에 생애 첫 집 구입이 어느 쪽이 더 어려웠는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있었다. 이에 대한 결론은 세계 제2차 대전 이… 더보기

펄펄 끓는 지구, 사라지는 NZ 빙하

댓글 0 | 조회 5,305 | 2022.07.26
지구가 펄펄 끓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름을 맞아 북반구가 유럽을 중심으로 그야말로 뜨겁게 달아올랐다.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연이은 대형 산불로 주민이 대피하고… 더보기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연어 양식장

댓글 0 | 조회 5,433 | 2022.07.13
지난여름 유례없이 뉴질랜드 주변 바다의 수온이 치솟으면서 말버러의 연어 양식장에서는 1200톤이 넘는 연어가 떼죽음을 당했고 양식장은 막대한 손해를 봤다.배경에는… 더보기

501조 추방자들

댓글 0 | 조회 5,782 | 2022.07.12
요즘 강력 범죄가 늘면서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호주에서 강제 추방된 뉴질랜드 국적 범죄자들이 거론된다. 호주 이민법 501조에 따라 추방됐기 때문에 흔히 ‘50… 더보기

사상 최저의 실업률에도 불안정한 고용에 힘든 사람들

댓글 0 | 조회 5,631 | 2022.06.29
뉴질랜드의 공식 실업률은 3.2%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고용시장이 구직자 우위이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이직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조언한… 더보기

2043년, 오클랜드 최대 인종은 ‘아시안’

댓글 0 | 조회 6,638 | 2022.06.28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 3월 400만 명을 처음 넘어섰던 뉴질랜드 인구는 16년 뒤인 2019년 9월에 다시 506만 명에 도달한 후 올 3월 기준… 더보기

울타리로 ‘Mt. Cook’을 지킨다

댓글 0 | 조회 2,531 | 2022.06.15
6월 초 국내 언론에는 ‘아오라키/마운트 쿡(Aoraki/Mt Cook)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 총길이가 55km에 달하는 울타리(fence) 건설이 논의 중이… 더보기

마이너스 수익의 키위세이버 속출

댓글 0 | 조회 6,158 | 2022.06.14
올해 들어 주식시장이 침체하면서 대부분의 키위세이버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키위세이버 가입자들은 지난 2009년 세계금융위… 더보기

천정부지 물가, 고통받는 가계

댓글 0 | 조회 6,968 | 2022.05.25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3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상승으로 많은 가정들은 씀씀이를 줄이고 있지만 저소득층에겐 기본적인 생활도 벅찬 현실이다. 물가 급등세는 앞… 더보기

스치듯 바다 위 나는 ‘Seaglider’

댓글 0 | 조회 2,731 | 2022.05.24
최근 뉴질랜드 기업인 ‘오션 플라이어(Regent)’는 ‘시글라이더(seaglider)’라는 생소한 이름의 운송 수단을 도입해 2025년부터 운행에 나선다고 발표… 더보기

국경 개방 후 이민정책

댓글 0 | 조회 8,039 | 2022.05.11
코로나19 규제가 서서히 풀리면서 그 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이민이 다시 정치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닫혔던 국경이 점차 열리면서 지금까지 해외로 나… 더보기

집값 폭등이 부추긴 이혼 , 하지만 건수는…

댓글 0 | 조회 6,626 | 2022.05.10
2년이 넘게 지구촌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팬데믹이 일상은 물론 인생 중대사인 결혼과 이혼에 대한 뉴질랜드의 풍속도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팬데믹이 시작… 더보기

집값 급등 우려가 집값 급락 공포로

댓글 0 | 조회 10,547 | 2022.04.28
팬데믹 이후 지난 2년 동안 집값이 급등하면서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상대적 소외감과 두려움의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기… 더보기

금값 오르자 몰려드는 황금 사냥꾼들

댓글 0 | 조회 4,496 | 2022.04.28
귀중한 금속인 금을 숭상했던 인간은 오래전부터 금맥을 찾아다녔고 1800년대 들어서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른바 ‘골드 러시(Gold Rush)’가 벌어져… 더보기

뉴질랜드에도 고용보험이 필요한가

댓글 0 | 조회 3,938 | 2022.04.13
한국에는 있고 뉴질랜드에는 없는 제도 가운데 하나가 고용보험이다. 고용보험은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에 생활안정을 위하여 일정기간 동안 급여를 지급하는 실업급여사업과… 더보기

올화이츠 “꿈은 다시 이뤄진다”

댓글 0 | 조회 2,922 | 2022.04.12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 19 팬데믹 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세계의 이목이 쏠리면서 연일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그런 중에도 올 11월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