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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다

김준 0 411 2017.08.23 17:44

햇빛 잘 드는 창가 서랍장 위에 올려 놓은 작은 화초가 드디어 꽃을 피웠습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앙증맞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잎 더미들 위로 두 주쯤 전부터 꽃 봉오리가 하나 둘 오르며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만 며칠 전 집에 와 보니 너무도 오랫만에 보는 하얀 꽃을 세 송이나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론 아마도 1년이 족히 넘도록 꽃구경을 못했었지요.

 

이 화초는 학원 개업 선물로 한 지인께서 선물해 주신 겁니다. 평소의 제 게으름을 잘 알고 계셔서였는지 아니면 울긋 불긋 화려한 모양새를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적 건조함을 눈치 채셨기 때문인지 흔히들 주고 받는 키 훌쩍 크고 빛깔 고운 난초 대신 키 작고 통통하고 꽤 큼지막한 두툼한 이파리들이 담북하게 앉은, 첫 눈에 보기에도 같이 살기에 그리 여북스럽지 않은 소담한 모습의 이 아이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꽃대 위에 앉은 작고 하얀 꽃들이라니.. 두 마리 배추흰나비가 머리를 어긋맞겨 앉았다 하면 딱 들어맞을 모양새의 꽃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화초에 애정을 가지고 돌보게 되는 신세계를 경험케 했습니다. 

 

꽃을 보면 여러 해 살이 식물의 일생이 머리속에 도표로 펼쳐지고 아들녀석 장남감도 그 원리가 단순하다면 하나쯤 직접 만들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제게 꽃을 보며 미소 짓는 감성이 남아있을 턱이 없었으니까요.

 

꽃을 선물 받은 이 후, 아침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맨 처음 하는 일이 화초에게 인사하고 물주기였을 정도로 그 화초를 아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반년쯤 지났을까요.. 

 

두 주 정도 피었다가 한 송이가 지고 나면 연이어 또 다른 꽃망울이 터지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던 하얀 기쁨들이 간간히 순서를 빼먹기 시작하더니만 결국엔 푸른잎만 무성한 덤불이 되어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물이 적었나 싶어서 더 자주 적셔줘 봐도 감감 무소식 이고 근처 꽃가게로 들고 가 봐도 거기는 죽은 꽃만 취급해서 산 꽃은 모르겠다 하시고...

 

결국엔 상담 테이블에 자리만 차지하던 아이를 집에 들고 와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하는 마음으로 아내가 돌보고 있었는데.. 세상에, 그 긴 시간의 공백을 깨고 꽃을 피워낸 겁니다. 

 

그야 말로 메마른 지팡이에 꽃이 핀 듯 기쁘고 지나칠 때마다 한 동안 바라보고 있으리만큼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그 동안엔 그리도 무심하게 꽃을 비치지 않았었을까요?

 

인터넷 방송을 보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대화 중 한 토막이었습니다만..

 

꽃을 피운다는 것은 식물에게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합니다. 동물에게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어려움이 있다면 식물은 꽃을 피워내는 고통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식물은 될 수 있는 한 꽃을 피우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는데 이러한 본능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워내야만 하는 상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혹독한 환경’이라고 하는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말라 죽고야 말겠다 싶은 가뭄 이라던지 아니면 심각한 손상을 입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던지 하는, 식물로서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가장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을 피워 올린다는 겁니다.   

 

식물이 피워내는‘스완송’이라고 할까요.. 어떻게든 후손을 남겨야 한다는 본능의 작용일거라 짐작은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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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화초가 물 많고 양분 충분한 좋은 땅에서 유유자적하게 되면 꽃이 잘 피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혹독하게 해 주어야 꽃 구경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래서 였군요.. 아가 살갖처럼 보드라운 꽃 잎에 홀딱 반해서 예쁘다 예쁘다 말까지 걸어가며 듬뿍듬뿍 물을 주었던 것이 결국 화초가 꽃을 포기하는 사태를 만들고야 말았던 겁니다.

 

어찌보면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오냐오냐 자란 아이들이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뿌리 내리지 못하는 현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화초뿐 아니라 사람도 꽃을 피웁니다.

 

사람의 일생을 화초의 일생과 비교해 본다면 꽃을 피우는 그 시기는 새싹이 움터 광합성을 시작하며 쑥쑥 열심히 자라기만 하는 청소년기를 지나, 인생의 보람이라 할 수 있는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의 초입인 20대 초반쯤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육체적인 성장도 어느 정도 그 한계에 다다랐고 정신적으로도 사리분별하기가 어렵지 않을 만큼 성숙한 그 나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하고 행복한 시기인 ‘꽃 피는 청춘’이라 불릴만 할테니까요.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그리도 예쁜 꽃 같은 시기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그리도 소쩍새가 울어야 했던 것처럼 유별난 사춘기로 아파하는 아이 옆에서 밤 새워 울어야 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특히나 제 능력의 한계, 에 직면해 머리 쥐어뜯으며 괴로와 하는 불쌍한 청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가장 가련하고 불쌍한 그 누군가는 아마도 남들 다 제 처지에 맞는 꽃을 피워내느라 동분서주 하는 중에도 꽃은 커녕 꽃대도 올리지 못하고 이파리만 무성한 젊은이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행은 지나친 애정과 보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사실 입니다.

 

U는 미국 국적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태어나기를 미국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이 곳에 왔으니 인격을 완성하는 토대가 형성되는 기간 동안에는 미국에서 살았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U는 전문직을 가지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무척이나 성실하고 침착했으며 뭐라 말하기 힘든 고고함을 가진 Y11 학생 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신중한 사고를 했고 그 신중한 사고에 어울리지 않게 경솔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사고도 많이 치고 다치기도 참 많이 다치더군요. 

 

U의 부모님 또한 너무도 훌륭한 인격을 가지신 분들이었습니다. 네 식구가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TV에나 등장하는 귀족집안의 일상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단정하고 예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 무엇이든 서걱거리며 부대끼는 시간이 지나야 속 사정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요..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며 U가 가진 학습상의 문제점이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워낙에 자존감이 높은 친구라서 겉으로 내비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만 힌트는 오히려 그의 어머니에게서 나오더군요.

 

한번은 U의 성적이 지나치게 낮게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독서량이 어마어마해서 일반 어른들을 훌쩍 뛰어넘는 상식수준을 자랑하고 머리까지 명민해서 은근히 질투가 날 지경인 아이가 받아온 성적이라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지요. 저는 U의 어머니와 대화를 하며 혹시나 U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여러 가지‘가능한’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시나 이런 점은 없었나요.. 혹시 저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셨나요..

 

당장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질문들이기에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 했음에도 불구하고 U의 어머니는 불과 몇 분만에 손을 내 저으시며 U는 그런 문제가 있는 아이가 절대로 아니니 말도 꺼내지 말라 하시더군요. 결국 어색한 자리에서 어색한 차만 마시고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그렇습니다. U는 성실하고 똑똑하고 착한‘왕자’였던 겁니다. 어디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성품과 능력에 더해 완벽에 가까운 부모님의 지원은 그를 한 명의 진짜 귀족으로 키워내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풍족한 물과 영양분을 누리는 화초가 꽃피우기를 게을리 하는 것처럼 자신의 궁금증 해소나 재미를 위한 독서 말고는 당장에 급한 학력 신장을 위한 기본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U의 학습장애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심각해 졌습니다. 내용이 점점 어려워져 기존의 상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시점이 되자 U의 부모님들은 숙제를 돌봐주는 선생님까지 붙여가며 아이를‘곱게 곱게’키웠습니다. 그리고 Y13을 마치며 그는 자신이 소망하던 학교 가운데 한 학교에 당당히 합격하게 되었지요.

 

소정의 목적을 이룬 학생과 부모님이 건네는 감사인사만큼 반갑고 기쁜 것이 없다는 것은 이 바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공통된 생각이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으로 떠나는 U의 인사가 감동적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에게 진심 어린 축복을 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상투적인 몇 마디를 주고 받고 돌아서는 U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의 그를 만들기 위해 대신 땀을 흘린 수 많은 선생님들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오늘 피워낸 꽃은 사실 그 분들의 꽃일 테니까요.

 

사랑하는 저의 학생들과 그 부모님들께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꽃을 피우자/ 눈 부시게 찬란한 꽃을 피우자/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오늘을 심어 언제가 빛날 꽃을 피우자/ 차마 눈물 없이는 똑 바로 볼 수 없을/ 찬란한 너만의 꽃을 피우자/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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