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박종배
정석현
정동희
한일수
정윤성
크리스티나 리
Shean Shim
송영림
김준
엔젤라 김
오클랜드 문학회
박현득
박명윤
김영안
Mina Yang
써니 림
여디디야
강명화
새움터
수선재
휴람
봉원곤
마리리
김임수
이윤수
조성현
박기태
유영준
성태용
김철환
피터 황
Jane Jo
신지수
오즈커리어
Jessica Phuang
김수동
박승욱경관
최성길
동진
이동온
김지향
이현숙
한 얼
빡 늘
CruisePro

한국인, 외롭다

정인화 0 1,408 2017.07.11 18:26

나는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한다. 상담은 술이나 마약등을 남용하는 유럽계 백인인 파케하(pakeha)가 주 대상이다. 스무 해 가까이 상담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부러워한다. 영어도 아주 잘할거라 믿는다. 차분하고 편안한 모습이 좋다고 할 땐 마음이 정말로 뿌듯하다.

 

037229003f098cc060fe33a3ce5065c7_1499754
 

하지만 힘들다. 

내가 들어도 말이 안되는 영어 때문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루하루 잘 버티지만 가끔가다 피곤하다. 나의 어설픈 영어를 안 들키려고 부서 회의 중에는 오랜 동안 질문도 안하고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다. 

 

뉴질랜드에 온 지 벌써 서른 해가 가까와지는데 영어는 살아 온 세월만큼 빨리 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나의 게으르고 소심한 성격의 장단점을 생각해 보는 대신에 한국에서의 암기 위주 교육을 탓해 본다. 교과서 영어와 생활영어의 차이를 뼈져리게 느낀다.

 

“I want to work with a counsellor who speaks proper English.”

“적절한 영어를 하는 상담원을 원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피상담인의 입 모양은 보였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영어가 부족하긴 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니 짜증이 몰려왔다. 

 

평상시보다 더 높은 소리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변명하던 모습, 돌아보는 순간마다 부끄럽다. 인종 차별을 들 먹이며 혼자서 화냈던 기억은 씁쓸하다.

 

영어는 늘지 않았지만, 많이 편해졌다. 

 

무엇이 변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상담원을 바꿔 달라는 사람들의 의도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언어 문제를 제기하는 내담자의 대부분은 누구와 연결되든 상관없이 상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연락을 끊는다.

 

이드(id),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에 관한 성격 구조 이론을 확립한 정신분석 이론의 창시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의 딸 아나는 아버지를 이어 자아 심리학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힘든 현실로 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억압, 억제, 부정, 투사를 사용한다고 했다. 또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왜곡, 분리, 퇴행, 합리화, 지식화, 승화 등을 자아 방어 기제(ego defense mechanism)로 예를 들었다.

 

사람들의 상담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내면 성찰을 힘들어하고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들고 싶지않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과거에 배웠던 방어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현재 생활이 불편한데도 말이다. 불편이 아픔보다 더 견딜 만 한가보다.

 

내면의 문제를 회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두려움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이들은 다르게 보여지는 사람들을 따스한 눈으로 보지 못하고 열등감을 투사함으로써 본인들의 행동과 생각을 정당화한다. 

 

일반적인 자기방어을 쓰는 이들의 투사와 동일시하면서 한국인로서의 자긍감을 잃어버리고 눈치를 보던 과거 내 모습이 가엽다. 웃기기는 하지만 나를 보호하기위해, 지금부터라도 아이들 처럼 투사에 대해‘반사’라는 말을 종종 외쳐야겠다.

 

영어권에서 태어난 동료들에게 내가 언어로 힘들 때마다 같이 슬퍼하고 아파하면서 도와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투사의 대상이란 점을 이해를 못 하거나 자기 일이 아니라는 식의 방관자의 태도를 보인다. 

 

다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실에서 투사와 편견을 견디며 살아가는 많은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힘들고 외롭다. 펑펑 울고 싶은 날에는 밤 열 시에도 별말 없이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따스한 방바닥에 앉아 먹고 싶다.

 

영어는 능숙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는 통찰력과 쌓여지는 경험은 조금씩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가능할 때에는 서로 다름과 부족을 비난과 회피가 아닌 관용과 인내로 보자고 제안하는 여유도 생겼다. 자기방어가 줄면서 연민은 늘어난다.

 

상담실 안에선 아직도 영어로 인해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몇 해 전보다는 덜 하나, 동양사람과 접촉이 적은 새로운 피 상담자와는 아직도 발음과 표현 방식이 달라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곤 한다. 영어로 편해 지긴 아직도 멀었나 보다. 옅은 웃음이 스친다.

 

새움터 회원 정 인화는 1991년에 뉴질랜드에 이민 와 스무 해 가까이 상담과 심리 치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움터는 정신 건강의 건전한 이해를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하는 단체입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플러스 광고

코리아포스트 / The Korea Post
교민잡지, 생활정보, 코리아포스트, 코리아타임즈 T. 09 3793435
조앤제이
조앤제이 09-336-1155 각종 뉴질랜드 이민 비자 전문 Immigration Adviser Kyong Sook Cho Chun T. 093361155

치유의 말과 행동, 무엇이 더 중요할까?

댓글 0 | 조회 302 | 2018.07.11
오랫동안 상담 일을 해 왔다.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직업으로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묻는 게 있다. “어떻게 듣기만 해요?”또는 “무척 힘드시죠?”등이다. 그들은 내가 듣고 주기… 더보기

자존과 교육

댓글 0 | 조회 329 | 2018.06.14
‘자존’은 스스로 자(自)에 높을 존(尊)이란 자를 써서 만든 말이다. 그 뜻은 나를 높이 여기는 것이다. 나를 높이 여기는 것과 여기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 사람들이 자존을 … 더보기

공상이라는 심리 방어기제

댓글 0 | 조회 435 | 2018.05.10
■ 새움터 회원: 정인화(심리 상담사 / 심리 치료사)​심리 치료를 오랫동안 받으면서 방어기제로부터 매우 자유로워졌다고 자부한다.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방어기제를 이제는 … 더보기

투명인간

댓글 0 | 조회 495 | 2018.04.10
초등학교 때였나. 그때 한동안 투명인간에 열광했다. 많은 사람이 만화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봤을 그 투명인간 말이다. 기억 속의 투명인간은 거의 슈퍼 히로에 가깝다. 조국을… 더보기

굴욕

댓글 0 | 조회 417 | 2018.03.13
정인화매달 말이 다가오면 걱정이 인다. 여러 가지 약속을 해 놓고도 제대로 못 지켜서이다.그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안절부절못한다.늘어나는 걱… 더보기

행복을 위한 발버둥

댓글 0 | 조회 314 | 2018.02.14
♥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행복해지고 싶다.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행복하지 않다.무엇이 잘못되었나.꼬리를 물어가며 생각해도 이유가 없다.살을 빼야 하나.남들처럼 헬스클럽 회원이나 될… 더보기

감정 무죄 행동 유죄

댓글 0 | 조회 233 | 2018.01.31
“어머 지적이셔요”이런 말은 듣는 것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어머 감정적이셔요”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떨까? 기분이 묘하다. 지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 더보기

연말연시, 당긴다

댓글 0 | 조회 303 | 2018.01.17
‘올해는 누구랑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지.’뉴질랜드에서 벌써 스물일곱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크리스마스 저녁 파티에 초대할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얼굴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더보기

마징가 제트와 아수라 백작

댓글 0 | 조회 1,270 | 2017.12.19
“기운 센 천하장사 / 무쇠로 만든 사람 /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제트”어렸을 때 좋아하던 만화 영화 주제가이다. ‘마징가 제트.’모태 음치에다 한두 소절의 가사도 재대로 못 외… 더보기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감동이다

댓글 0 | 조회 986 | 2017.12.06
♥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아이 캔 스피크 봤어?”“아니. 왜?”“꼭 봐. 진짜 감동이야.”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 사람한테 영화‘아이 캔 스피크’을 봤다고 얘기했다. 위안부의 한 … 더보기

내 딸이 양치기가 된다면

댓글 0 | 조회 456 | 2017.11.22
“My son is a shepherd in South Island.”귀를 의심했다. 아들의 직업이 ‘양치기’(shepherd)라니. 뉴질랜드에는 사람보다 양이 훨씬 더 많다. 올… 더보기

잔물결 효과, 고맙다

댓글 0 | 조회 497 | 2017.11.07
♥ 정인화의 민낯 보이기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편해서 좋긴 한데 발전이 없다. 내용만 보면 같은 일의 반복이다. 언제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오늘도 공상이다. 그 놈의 은… 더보기

고슴도치의 고민

댓글 0 | 조회 747 | 2017.10.25
“전화 끊어. 나 바빠!”첫 마디가 날카롭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한 친구의 반응이다. 얼른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영 편안하지가 않다. 나도 바쁜 데 시간을 내서 전화했던… 더보기

여행, 희망이다

댓글 0 | 조회 477 | 2017.10.10
♥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나이 차이 때문일까. 형과 누나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 어릴 적 같이한 추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기껏해야 큰 누나가 두세 번 데리고 간 어린… 더보기

끊임없이 변하는 사람의 뇌

댓글 0 | 조회 341 | 2017.09.27
정신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게 이제 힘에 부친다. 무엇보다도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신경은 항상 예민하게 서있고 같은 일을 하는데도 갑절의 에너지… 더보기

수치심(Shame), 숨고 싶다

댓글 0 | 조회 608 | 2017.09.13
♥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고등학교 이 학년 때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순간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 다 빠진다’라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 더보기

휴식을 취하는 50가지 방법

댓글 0 | 조회 1,387 | 2017.08.22
열심히 참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이민 오기 전에는 나름 치열하게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했고 처음 뉴질랜드 와서는 영주권 한번 따 보려고 자신을 몰아붙였습니다. 영주권 따고 … 더보기

심리상담 전문가들, 긴장된다

댓글 0 | 조회 1,237 | 2017.08.08
♥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숫기가 없었나. 바쁘다는 핑계였을까. 오랫동안 심리상담사와 심리치료사를 위한 모임에 거리를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라는 생각에 종종 가슴이 아프면서 … 더보기

제 2회 완경기 그룹을 마치면서

댓글 0 | 조회 398 | 2017.07.25
지난 6월 21일이 뉴질랜드에서 낮이 가장 짧은 날이었습니다.한국으로 말하자면 동지 즉 겨울의 한 중앙이지요.“후유 절반은 지났구나”안도의 숨을 조심스럽게 내쉽니다.뉴질랜드의 겨울… 더보기
Now

현재 한국인, 외롭다

댓글 0 | 조회 1,409 | 2017.07.11
나는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한다. 상담은 술이나 마약등을 남용하는 유럽계 백인인 파케하(pakeha)가 주 대상이다. 스무 해 가까이 상담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부러워한다. … 더보기

어느 남자의 눈물

댓글 0 | 조회 558 | 2017.06.27
새움터 (임애자, 사회복지사)​늦은 가을이라서 일까? 축축한 길가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을 볼 때 마다 한국에서보다 계절의 감각이 무뎌짐을 느끼게 된다. 매 년 이맘때쯤이면 왠지 … 더보기

노을, 아프다

댓글 0 | 조회 778 | 2017.06.14
♥ 정인화의 민낯 보이기우리 집 데크(deck)에서 바라보는 서쪽 하늘은 장관이다. 내가 아는 모든 수식어를 송두리째 훔쳐간다. 난 그 정경에 한없이 왜소해진다. 움츠러드는 내 모… 더보기

완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가요?

댓글 0 | 조회 706 | 2017.05.23
날씨가 쌀쌀하니 무릎에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몸도 예전만큼 가볍지 않아 수영장에 자주 가게 되었다. 수영장 사우나에 있다 보면 한국 어머니들의 사우나 토크가 얼마나 재미 있는지 시… 더보기

신데렐라는 잘 살고 있을까?

댓글 0 | 조회 2,001 | 2014.10.30
어릴 때 누구나 즐겨 듣던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기억으로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나 자신도 뭔가 환상적이고 멋진 남성을 만나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 같아 어리… 더보기

자존감, 자존심 그리고 자신감

댓글 0 | 조회 5,128 | 2014.10.15
이 세 가지의 의미는 어떻게 다를까? 최근 사람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 이 세 단어들이 정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졌다. 평소에 자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