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백 학기
새벽에 안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팔십이 다 된 아버지와 평생을 뒷바라지해온 늙은 어머니가 일찍 일어났나 보다. 어제 그들은 온천에 다녀왔다. 골목 밖으로 이어진 세상은 아직 어슴푸레한 미명이다.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이부자리 속에 누워 나누는 그들의 말소리가 내 잠을 썰물처럼 밀어내고 있다. 아직도 젊은 처녀 총각 시절인가. 나직나직 들리는 말소리 사이로 아버지의 헛기침, 어머니의 아픈 신경통이 몸을 누르는 소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어린애처럼 나는 누워서 그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의 젊은 날과 내 어린 날이 한데 만나서 강물처럼 흘러가기도 하고 벌판처럼 끝 모를 지평으로 뻗어가기도 한다. 그때 어머니는 집 안 마당에서 키 큰 미루나무처럼 서서 신작로를 내다보기도 하고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며 신열을 앓기도 했던가. 아버지와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길들을 향하여 그리도 내달았는지. 사내들의 꿈이 가 닿는 지점에 산이 있었던지, 강이 있었는지, 아니면 어떤 환한 날들이 있었는지.
「언제 물었었지? 내 아래로 장가도 못 가고 일찍 죽은 동생이 있었느냐고.」아버지가 누워서 어머니에게 뜬금없이 되묻는 말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는 잠깐 새벽잠이 다시 들었는지 소리가 없고 아버지는 홀로 대답한다.「있긴 있었지. 잊고 살아왔는데 요즘 부쩍 생각이 나네. 갸가 아마 일곱 살 때 죽었을 거여.」어머니는 잠속으로 빨려들어가며 내 손위 누이와 나 사이에 낙태했던 아이를 떠올리는지. 아버지가 홀로 군시렁대다 선하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곧 새벽잠이 다시 들려는 기색이다.
내가 모르는 일곱 살 때 죽은 작은아버지가 골목을 걸어 밝아오는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오고 어쩌면 내 형이나 누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낙태 전의 아이가 이 세상 꽃 피는 그늘에 살아 있는 듯하다. 어린 영혼은 금세 세상 속에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된 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잊기도 한다. 서울 하왕십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들어 사는 연립주택에, 꽃 피고 지는 이 세상 그늘에. 살아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한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이 세상에.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021 1880 850 digdak@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