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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달, 나의 4월

오소영 0 547 2017.05.23 19:43

4월 1일은 만우절(萬愚節)이다. 누군가 실없는 말로 내 웃음보를 자극해 올 것만 같은 기대로 첫날을 맞았다. 

 

고국은 지금 봄이 무르익는 좋은 계절이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의 향연으로 마음이 들뜬다. 향긋한 미나리 강회로 입맛을 돋우는 어머님 생신도 이 달이었다. 

 

연두색 새 순으로 들판이 온통 파랗다. 해마다 고국 나드리를 갈망하는 때도 이 때 쯤이다. 내게 4월은 마음 부푸는 희망의 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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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지난 4월은 그 꿈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어느날 너무나 건강했던 친구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노래도 부르고 밥도 함께 먹으며 가까이 지냈던 친구였다.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어떤 일에 엮여 소원해 지기도 하는게 인간관계인지. 근래는 안타깝게도 서먹한 사이로 만남이 뜸해 졌었다. 하지만 얼굴 마주치면 서로가 빙긋 웃어주는 아주 멀어질 수 없는 그런 친구였다. 

 

갑작스런 그의 부음을 접하고 충격이 너무나 컸다. 엉켰던 매듭 풀지도 못하고 영영 헤어졌음이 더욱 마음 아렸다. 또래의 죽음으로 연상되는 어떤 두려움도 한 몫을 단단히 했음이다.

 

엎친데 겹친다는 말이 있다. 

 

어느날 아침. 고국에서 헤비급 비보가 또 날아들었다. 나를 완전히 절벽 아래로 굴러내리게 했다. 아프다는 소식은 물론 그 어떤 불편함도 들은 적이 없었던 내 혈육. 사랑하는 언니의 부음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슬프다는 생각도 미처 들지않았다. 

 

무엇엔가 심하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듯한 띵한 느낌 뿐이었다. 생각이 정지된 순간이랄까? 가슴이 무겁게 답답해 왔다.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일어설 수가 없었다.

 

“엄마, 이모가 돌아가셨다지요.”

살만큼 살다 돌아가셨으니 호상(好喪)이란다. 담담하게 이 엄마를 위로해주는 내 자녀들. 그들이 내 마음을 어찌 이해 하겠는가. 

 

아이들에게 내 진한 슬픔을 안으로 깊숙이 포장하는 일이 참 힘들었다. 바로 며칠전에 조카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엎드려서 책을 읽으시는 쪼그라든 노인. 웅크린 자세가 너무나 작아서 놀랬다. 

 

당신을 제목으로 낸 이 동생의 책을 열심히 탐독하시던 내 언니의 늙은 모습이었다. 동생의 인터뷰 영상을 텔레비죤으로 보시는 뒷모습의 사진도 보내왔다. 

 

어머님의 근황을 알려주는 조카의 자상한 배려였다. 얼굴아닌 뒷모습. 그게 언니의 마지막 영상이 될줄 누가 알았으리. 

 

언니 마음속에 깊이 싸안고 가셨을 이 동생. 그 분께 드린 책이 마지막 선물같아 그나마 다행스럽다. 

 

언니가 그만큼만 사실줄 알고 내가 때맞춰 책을 냈을까? 언니가 내게 해 주신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금은 빚을 갚은것 같은 마음이 든다. 

 

만나지 못하고 지낸 세월이 오년이나 되었다. 그 동안에 밀린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해변의 모래알 만큼이나 쌓이고 쌓였는데... 

 

이제 그 말 누구에게 풀고 올까나. 선뜻 장례식에도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남동생이 보내주는 사진과 중계로 언니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사실 나는 언니의 부음을 듣던 다음 날. 또 한 분의 부음을 접했다. 중복되는 슬픔에 가슴이 짓눌렸다. 

 

아들같이 젊은 지인의 어머니시다. 언니와 동갑으로 얼마전 병을 얻어서 투병중이셨다. 어머님 마지막 임종을 보려고 시드니로 날아간 막내 아드님. 아들딸들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는 말씀을 전했다. 

 

생전에 가족과 함께한 마지막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애통해하는 자식의 아픔이 절절하게 묻어왔다. 키가 자그마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분이었다. 

 

단 한번 아드님을 통해서 처음 뵈었다. 평소에 어머니 살아오신 옛날 이야기를 많이 청해 들었다는 젊은이. 어머님 자랑거리가 참 많아서 부럽기도 했다. 

 

그 어머니와 동시대를 살아온 나. 소통하는 공감대로 우리는 세대의 벽을 허물었다. 말벗 잘해 주는 좋은 친구였다. 

 

내 마음도 아프지만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아들의 슬픔보다 더 할까? 우리는 서로서로가 위로를 하면서 같이 슬픔을 달랬다.

 

마음을 같이했던 또레친구. 지인과 더불어 사랑하는 가족까지. 회오리 바람처럼 한번에 몰아닥친 세 분의 죽음.

 

놀랜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내 체력이 그 고통에서 버텨내기엔 역부족 이었나보다. 

 

나는 급기야 쓰러졌다. 어떤 밤. 머리속은 혼란으로 어수선했다. 한쪽 얼굴근육이 마비가 온 것처럼 감각이 없어졌다. 뒷목이 뻣뻣해 왔다. 깊은 수렁으로 몸이 빠져드는 것처럼 나른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청심환을 찾아 씹어삼켰다 별로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 밤 나는 죽음으로 가는듯한 착각속에 빠져서 꼬박 날밤을 새웠다.

 

그러나 어김없이 밝아온 아침은 희망이었다. 주말의 병원을 외면하고 급한 김에 한약국으로 달려갔다. 잘 버텨내려고 지금까지 쓰디쓴 한약을 마시며 살아간다 나는 지금.....

 

각자의 몫이 다른 삶을. 다시 내 위치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득 언니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듣는다.

 

“힘내 이 바보같은 사람아, 누구나 때가 되면 그렇게 다 가는 걸 뭘 그러나”이제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가느냐가 목전에 다달은 싯점이다. 

 

그 분들은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셨다. 흔히 말하는 99881234는 못사셨지만 조금 앞당겨 88881234를 해 내셨다. 참으로 존경스럽다.

 

잔인한 달 4월이 그렇게 물러갔다. 

 

세상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다들 잘 먹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간다. 그렇게 얄미운게 세상 이치인가?

 

삼가 세 분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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