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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단상

영산스님 0 1,096 2016.09.29 13:40

추석 이틀 전 한국에서의 볼 일로 오클랜드를 떠나 서울에 왔습니다. 6개월만의 한국은 생각만큼 달라진 것도 없고 한국 땅을 밟으면 땅바닥에 키스를 하고 싶어질 정도로 감동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하룻밤 자고 나자 계속 살아왔던 사람처럼 완전히 일상 생활이 되어 버려 멋쩍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추석 차례도 지내고 아침이면 인왕산에 가서 산책을 하고 북악산 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추석 연휴 기간이라 한산한 서울의 도로를 달리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결혼한지 얼마 안된 새댁이 출연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추석이 어떻게 다르냐고 DJ가 묻자 결혼 전엔 ‘공주’ 였고 결혼 후엔 ‘하녀’ 라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똑 같은 한 여자가 결혼 전엔 부모님께 공주 대접 받으며 손도 까딱하지 하지 않고 누군가 만든 것을 먹기만 하던 처녀가 결혼 후엔 다른 집안의 막내가 되어 명절 음식을 도맡아 하는 하녀가 되었다니….  

 

생각해 보니 내가 학생 시절,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너희 시절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시절인지 아느냐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업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며 빨리 대학에 가기를 바라던 시절 이였고, 사춘기의 열병 땜에 무슨 존재도 가벼움이 그리도 아팠었는지…

 

또 나중에 10여년이 흘러 출가 라는 경험을 하게 되고 예비승려로서 공부를 할 때에도 어른 스님들이 “공부 열심히 해라, 너희 시절이 중 생활 중에 최고로 좋을 때이다.”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 하루 종일 한자와 씨름하는 것, 고무신 바닥이 얇아 발바닥이 욱씬 하기도 하는 등, 생소한 환경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이 아름답기는 하나 너무 많은 생각과 열정이 나를 괴롭혔고 출가 초기의 생활이 불 같은 신심이 있었으나 거칠어 나 자신을 베기 일쑤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중년이 되어 좀 멍청해 지긴 했으나 편안하고, 불 같은 신심은 줄었으나 균형 잡힌 수도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청춘에 청춘의 아름다움이 있었고, 지금은 지금 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공주에서 하녀가 되었으나, 사랑하는 가족들이 새로이 생겨, 말하는 그 목소리엔 행복도 함께 머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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