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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 어려서도, 커서도

한 얼 0 1,093 2016.09.15 16:50

결혼한 사촌네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제 곧 두 돌이 되는 조카의 어마어마한 장난감들 때문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책들은 물론이고, 산지사방이 장난감 투성이였다. 온갖 동물 인형, 모양에 맞게 끼워 맞추는 블럭, 심지어 버튼을 누르면 알파벳을 읊어주는 어설픈 모형 컴퓨터까지. 특히 마지막 장난감은 제법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확실히 기술이 발전하면 삶의 온갖 부분들이 소소하게 개선되는구나, 하고 놀랐다.

 

어렸을 적에는 지금의 내 조카처럼 가짓수가 많진 않아도 장난감을 꽤 가지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바비 인형에서부터 로봇, 그리고 레고까지. 그것들은 모두 내 방의 선반 혹은 상자 안에 자리가 있었고, 다 놀고 난 뒤엔 반드시 제자리에 순서대로 차곡차곡 들어가야 했다. 엄마나 다른 어른들이 가르친 게 아니었다. 아직 어린 나의 비좁은 세상 속에서 모든 만물에는 정해진 자리가 있었고, 그러니 모든 만물은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레고는 레고 박스 안에, 바비 인형은 선반 위에, 로봇은 그 옆에, 그리고 동물 인형들은 침대의 내 자리 옆에.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질서를 지키는 성향은 어릴 적부터 유별났다.

 

바비 인형은 처음엔 두 개였는데, 공주님 바비는 어쩌다가 내 실수로 참수시켜버려서(!) 곧 버려야 했다. 홀로 남은 바비는 가슴 길이의 금발에 코랄 핑크 입술로 환하게 웃는 낯이었다. 발레리나 옷을 입고 있었다. 하늘색의 투투(tutu)와 민소매 발레복을 입고 발은 항상 엉 포인트(en pointe) 자세로 고정된 채여서 목 잘린 바비가 남긴 하이힐 구두를 신겨 보려 해도 맞질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발레복과 발레 슈즈만을 신어야 했지만, 대신 로봇을 상대로 하는 격투 놀이에는 최적이었다. 액션 영화에서 본 발차기를 연출하기에 그만큼 고증 충실한 자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비 인형과의 결투에서 항상 숙적 역할을 하는 로봇은 고무와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당시 방영하던 만화영화 ‘영혼기병 라젠카’에 나왔던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 로봇이었는데, 바비보다 머리가 하나 정도 더 컸다. 원래는 남동생 것이었는데 내가 가져온 뒤로 찾지 않아 그대로 내 방에 머물게 된 객식구였다. 바비 인형과는 달리 얼굴이 없다 보니 내 마음대로 감정을 정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그래서 항상 용감한 발레 전사 바비가 무찌르게 되는 악역 역할의 단골이었다.

 

바비도, 라젠카 로봇도 뉴질랜드로 오면서는 다 잃어버렸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뉴질랜드로 이민 오고 나선 유독 테디 베어를 많이 선물 받았었다. 특히 12~13살 때가 절정이었는데, 한 번에 일곱 개를 선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주고 잘 때도 모조리 옆에 두어야 했다. 곰들에게 팔베개를 해주다 보니 정작 나는 고개만 돌리고 뒤척이질 못해 몸이 뻐근할 때도 왕왕 있었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돌봐주었단 생각에 뿌듯해 했다.

 

지금은, 그 테디 베어들 중 남은 건 하나도 없다. 모두 차차 잊혀지면서 주변의 나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거나 기증했기 때문이다. 또 어딘가에서 잘 사랑 받고 있으리라 믿는다.

 

어른이 된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은 물론 아이였을 때 갖고 노는 장난감보단 훨씬 비싸다. 가령 주문 제작된 조립식 PC라던지. 혹은 전세계에 500개만 한정 생산된 구체 관절 인형이라던지, 개당 5만원을 호가하는 네일 폴리쉬라던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노는 것’을 멈출 수 없으리란 것이다. 아, 물론 장난감을 모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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