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0 개 2,460 박지원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화들짝 고개를 내저었던 일들도. 생각보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너무도 많아. 잘 지내고 있는지. 

 

옥상 위에서, 새가 되고 싶다며, 난간 위에 다리를 곧게 펴고 허리를 굽혀 지면을 보던 너의 모습을, 나는 햇살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새가 아니라, 그저 강렬한 추락의 감정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때 네가 그 위에서 떨어졌었더라면- 그 격렬한 추락 속에서, 아마도 너는 날개를 한없이 바랬겠지. 네 괴로움의 이유는, 세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으니까. 너는 날개를 갖지 못했을 것이고, 세상은 자주빛으로 물들었을거야. 너만큼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던 나는, 실망도 기대도 환희도 느끼지 못한 회색 얼굴로 떨어진 너를 내려다보았을 거야. 

 

날지 못하는 새도, 날아가는 새도 무서워했지만, 너는 새가 되고 싶어했어. 산이든 선이든, 그 무엇인가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실제로는 갖지 못했어. 그저 새가 되었다는 순간의 환상을 품었기에, 나와 손을 잡고 이 곳 저 곳 쏘다닐 수 있었던 것이었겠지. 

 

너는 그리고, 방 속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열려있던 새장의 문을 통해 날아갔어. 새장의 문은 사실 오래 전부터 열려있었던 것이 분명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못보았던 게지. 서로간 눈 속의 부산한 날개짓을 관찰하느라, 새장의 문 따윈 신경쓸겨를도 없었던 거야. 그저, 새가 되고 싶었던 거지. 어쩌면 새장 속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부산히도 움직였을 지도 몰라. 흔들리는 새장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우리는 세상이 진동하는 소리로 착각했었으니까. 

 

그렇게 조그만 방에서 너는 나갔고. 

 

아침 해가 박살나는 광경 속에서, 젖은 신문지 냄새가 울컥하고 피어날 것만 같던 그 무채색의 방에서, 더 이상 네 눈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어. 내 방에 고여있던 너의 흔적만이 내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어. 아마, 거울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내 눈 속은 불 꺼진 터널 같았을 거야. 길고 긴, 끝이 보이지 않는 불온한 공기의 터널같은. 그런 거 말이야.  

 

실은, 넌 몰랐겠지만, 그 터널 속엔 새가 들어있었어. 내가 새가 아니라, 새는 내 눈 속에 있었던 거야. 빛이 번뜩이며 눈 위에 아른거릴 때, 그게 내 날개짓처럼 보인다는 착시의 구조. 아무리 팔을 허우적거리고, 피상적인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한들 나는 중력을 거스를 수 없었어. 내가 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에 왜 그리 오래걸렸는지. 내 날개는 이미 달궈진 철판 위에 말라붙은 고기처럼 바싹, 재처럼 변해있었지. 너가 내 방을 나간 후에도 그 고깃덩어리를 직시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었어. 너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나는 날 바라보았었던 너의 눈이 네 흔적이었으면 했어. 그 흔적이 나를 볼세라,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고 몸을 숨기고 허세로 위장했어.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주제에 온갖 현란한 컬러감으로 스스로를 감추는 공작새처럼.    

 

시간은 흐르고. 

 

결국 나는- 인간은 새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 물론 우리가 새가 되고 싶어 그렇게 날개를 푸드득거렸던 것이 헛되었다는 말은 아니야. 우리가 방 안에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새장 문이 열린 지도 모른 채 아직도 방 안에 있을지도 몰라. 우리의 범위를 가늠치 못한 채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바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

 

딱 거기까지, 였던 거야. 우리가 추락할 수 있고, 비행할 수 있었던 범위말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것이 내 삶의 범례였었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넓었던 것인지 좁았던 것인지. 다만 내가 깨달은 것은, 끊임없이 날개짓을 해야한다는 것. 날개짓을 하는 동안은 그 공간의 크기를 가늠할 필요가 없다는 것.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잘 다듬어진 부리와 발톱으로 새장의 문을 스스로 여닫아야 한다는 것. 방 안에서도 이따금씩 높이 날아오를 때는, 추락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서로의 눈 속에 부서지지 않을 만큼만 상대를 담아두고, 그저 버티는 건 진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날개 속에 포근히 서로를 감싸는 그 시간이 설령 지나치게 길어도- 훗날의 비행에는 크게 상관없다는 것. 

 

이것저것 끄적여보았네. 그리고, 이 글 또한 너가 아닌 너의 흔적에서 따왔음을 고백할게. 이 고백에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아주 많이 혼재되어있어. 그러니까 오히려, 안심해도 좋아. 

 

다음에 또 보자.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76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치과 (Ⅰ)

댓글 0 | 조회 3,690 | 2016.04.29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 더보기

담배

댓글 0 | 조회 2,699 | 2014.03.26
담배를 피운지는 조금 되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기전부터 피웠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으레 그렇듯, 조금은 극단적으로 파고들었다. 담배가 신제품… 더보기

작업기 (Ⅰ) 작곡의 시작

댓글 0 | 조회 2,626 | 2014.05.13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해왔었다.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저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냥 소리가 각자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책상 구석의 똑같은 … 더보기

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댓글 0 | 조회 2,597 | 2014.05.27
내가 곡을 쓰는 방식은 사실 굉장히 간단했다. 가사를 주욱 써 놓고, 기타로 코드를 하나씩 잡다가 맘에 드는 코드 진행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흥얼흥얼거리며 가사…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2,554 | 2016.03.24
인식이 색깔을 바꾼다.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스물네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 중 몇 개의 색깔을 닳도록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가 … 더보기

현재

댓글 0 | 조회 2,461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2,403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2,362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 더보기

화이

댓글 0 | 조회 2,328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2,250 | 2015.08.13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이 된 두 개의 배럴. 배럴 사이로 흐르는 습기와 강의 물냄새. 아침 산바람에 뒤척거리는 노란 텐트. … 더보기

욕망

댓글 0 | 조회 2,243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2,231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보기

거미집(Ⅰ)

댓글 0 | 조회 2,220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 더보기

자녀들의 나이 값을 쳐주는 부모

댓글 0 | 조회 2,210 | 2015.01.14
너무 되바라진 아이들을 보면 사실 인상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특히 한국부모이기 때문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나 공공장소에…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2,206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 더보기

금연

댓글 0 | 조회 2,194 | 2014.10.15
큰 원이 있는 방 안에서, 남자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책상을 앞에 둔 채 검은 의자 위에 앉아 멍하니 촛불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 더보기

치과 (Ⅱ)

댓글 0 | 조회 2,185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 더보기

어떤증명

댓글 0 | 조회 2,174 | 2012.09.26
어느날 바닷가 주변을 친구와 걷고 있을 때, 지붕이 없는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바닷가 근처인데, 한국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2,169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45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더보기

작업기 (Ⅲ) 요괴의 기다림

댓글 0 | 조회 2,122 | 2014.06.25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무엇인가 보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구름을 입에 문 새들이 태양 근처로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 나뭇잎을 습관적…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04 | 2014.04.23
또 비가 온다. 일주일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시간 몇 가지가 있다. 아주 어렸던 16살에, 나는 독특한 패션으로 거리를 쏘다녔…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2,084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 더보기

도박

댓글 0 | 조회 2,062 | 2014.08.27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바다이야기”라는 곳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파닥파닥거리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더보기